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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 Apr 28. 2018

기업의 탄생 [03. 동화약품]

독립을 위해 노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회사

1897년 궁중 선전관으로 궁궐을 출입이 가능했던 민병호 선생은 궁궐 안에서 사용되던 생약의 비방을 국민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했다. 그는 그 중에서도 소화제를 널리 보급하고 싶어 하였는데, 당시만 해도 급체한 환자들이 약을 구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소화제를 널리 보급하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약 제조법에 서양의학을 접목시켜 마침내 마시기만 해도 소화에 효과가 있는 약을 개발해 냈다.

소화제 개발에 성공한 그는 아들 민경과 함께 서울 중구 순화동에 동화약방이란 제약사를 설립하여 자신이 개발한 약에 ‘활명수’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활명수란, 생명을 구하는 물이라는 뜻으로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은 그의 뜻이 담겨진 이름이었다. 그의 뜻대로 그가 개발한 활명수는 널리 보급되어 소화불량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이러한 활명수의 인기에 힘입어 그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회사인 동화약방은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동화약방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동화약방은 경영난을 겪어야만 했는데, 이러한 경영난의 원인은 바로 동화약방의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의 독립운동 때문이었다. 민강 선생이 회사 내에 임시정부와 연락할 수 있는 연락소를 구축하는 한편, 활명수를 팔아 얻은 수익금 중 일부를 우리나라 임시정부에 제공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민강 선생이 독립운동에 헌신할수록 동화약방의 경영난은 점점 더 심화되었고, 결국 이 사실이 일제에 의해 밝혀지면서 회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독립 운동 혐의로 체포된 민강 선생이 감옥생활에 따른 후유증으로 사망함에 따라 동화약방은 곧 사라질 운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화약방은 살아남았다. 생전에 독립운동에 참여 하느라 회사 경영에 집중하지 못했던 민강 선생이 자신이 없어도 회사가 운영될 수 있도록 동화약방을 주식회사로 전환해 놓았던 것이다. 미리 대비책을 마련한 민강 선생의 노력으로 동화약방은 여러 위기 상황에서도 경영활동을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1995년 서울시는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동화약방이 설립된 서울 중구 순화동에 서울연통부 기념비를 세웠다. 독립을 위해 노력한 동화약방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였다. 오늘날 동화약방은 동화약품으로 사명을 변경하였지만,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동화약방의 이야기는 동화약품의 이야기 자산이 되어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 도서]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2009), 예종석, 리더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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