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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 May 01. 2018

기업의 탄생 [06. 진 글라이더]

글라이더를 향한 열정이 낳은 기업

1978년 여름, 대학생이었던 송진석 대표는 글라이더를 타다가 불시착하는 사고를 겪고 말았다. 얼굴이 함몰되고 갈비뼈와 팔다리가 부러지는 큰 사고였다. 병상을 찾은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다시는 글라이더를 타지 말 것을 부탁 하였는데, 그는 자신 때문에 눈물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다시는 글라이더를 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결심은 곧 깨지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의 꿈을 응원해 주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부상에서 회복한 그에게 당시 돈으로는 거금이었던 15만원을 건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싸구려 글라이더를 타다가 사고가 난 모양이다. 이 돈으로 성능 좋은걸 하나 사서 안 다치도록 해라."


사고로 장애판정까지 받은 그였지만, 이러한 아버지의 응원은 그에게 다시금 글라이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 만들었다. 그는 아버지께서 주신 돈으로 해외잡지와 책을 읽으며 보다 개선된 글라이더를 만들었고, 덕분에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도 글라이더를 타는 취미생활을 이어가며 글라이더 전문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1985년 회사를 그만둔 그는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독일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글라이더 국제대회가 열렸던 것이다. 세계 45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곧바로 독일에 있는 글라이더 제조 공장에서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뛰어난 비행사가 되려면 글라이더 제작 기술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무심코 결정한 일이었지만, 이 결정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가 제작한 글라이더는 뛰어난 성능을 보였고, 곧 그가 제작한 글라이더는 남다르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글라이더 전문 비행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그가 어느새 글라이더 전문 제작자로 성장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국내의 글라이더 제작 업체에서 일하며 글라이더 제작을 지속해 나갔는데, 그가 디자인한 글라이더가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년 연속 국제대회를 석권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글라이더 제작자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승승장구 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외환위기로 인해 구조조정의 바람이 분 것이다. 개발팀에 있었던 그는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고, 결국 같이 근무하던 6명과 함께 거리로 쫓겨나는 아픔을 겼어야만 했다.

그러나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이러한 아픔은 곧 기회로 작용했다. 한 일본인이 그에게 경기용 글라이더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그 일본인이 제시한 계약금은 약 3억 원으로 외환위기에 빠졌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큰 금액이었다. 

1998년 일본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설립된 ‘진 글라이더’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라이더 개발에 성공했고, 이 글라이더를 사용한 일본팀이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최고의 글라이더 제조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명성에 힘입어 오늘날 진 글라이더는 세계 1위의 글라이더 제조 기업으로 성장하였는데,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송진석 대표의 꿈이 세계 최고의 글라이더 제조 기업을 탄생시킨 셈이다. 


[참고 기사] 진 글라이더(2007.06.04), 조영호 기자, 한국일보

[참고 도서] 한국의 작지만 강한기업(2008), 한국일보 경제산업부, 굿모닝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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