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 사용설명서 [공부 편]

[함께 살아가는 시간]

by 신지 온

평온한 저녁 시간,

두 달간의 휴식을 끝내고 학원에서 이제 막 돌아온 아들에게

햄과 양파를 섞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었다.

오빠 옆에서 작은 몸을 이리저리 놀리며 장난을 치는 딸아이를 보며

아들은 정신이 사납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리 가~ 정신 사나워"

난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몰라 살며시 딸아이를 안으며

“왜~귀여운데~” 하며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쟨 오늘따라 왜 이렇게 텐션이 좋아~안 하던 공부 하려니 힘들어 죽겠구먼"

피곤한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정말 살면서 손에 꼽을 만큼 크게 웃었다.


평소 아이의 교육열 따위는 1도 없는 엄마이기에

아이 입에서 '공부' 얘기가 나오니까 왜 이렇게 웃기는지...

아들은 요란하게 웃고 있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그래서 그 ‘공부’란 것을 하고 있는 거니?



오빠 왔다. 오빠 왔어~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딸아이와 나는 동시에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28시간 만에 본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 반가워서

“오늘도 학원에서 주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농담 한 마디 던졌더니 씩~하고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어제 오후 5시부터 잠자리에 든 아들은 오늘 아침까지 내리 잤고

(오늘 아침은 내가 늦잠을 자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학원까지 다녀오니 어느덧 9시가 훌쩍 넘었다.

잠이 많은 건 엄마를 닮아서일까, 아니면 사춘기의 영향일까,

아들은 요새 틈만 나면 잔다.

“어머님~성후가 잠이 많나요?” 학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얘가 집에서도 그리 자더니 학원에서도 자는구나 싶었다.


여하튼 아들은 지금 기분이 매~~ 우 좋다.


평소 잘 놀아주지 않던 동생과도 놀아주고

학교선생이 바뀐 이야기, PC방 간 이야기를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꺼낸다.


“잠을 많이 자니 발걸음이 경쾌하구나 아들~”

집 안에서 뛰어다니는 아들을 보고 한마디 하니 밝은 목소리로 “응~” 한다.


오랜만에 본 아들의 밝은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다행이다. 잠만 자는 사춘기 자식을 보고도 속 터지는 엄마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오히려 푹 자서 기분 좋은 아들 얼굴을 보고 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엄마라서....


15시간은 기본...신생아인줄...



중2다!!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중2!!

다행인지 아직인지 아들은 큰 말썽 없이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밤 10시가 다 되어서 소파에 앉더니 "엄마~" 하고 부른다.

“나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 학원 꼭 다녀야 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왜~ 공부 안 하면 뭐 하고 싶은데?”

요동치는 마음을 부여잡고 최대한 다정하게 물어보았다.

“생각해 봤는데 운동 쪽은 어떨까?”

달리기랑 힘이 남다르다 생각은 했지만 그것을 진로로 잡기엔 글쎄...

네가 그 정도는 아니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아이가 혹시 상처받을까 봐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이번 주부터 영어학원을 다닐 계획이었기에

이렇게 얘기하는 데는 영어 공부에 대한 압박이 꽤 컸나 보다 싶었다.

난 무조건 말을 아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다가는 여태껏 쌓아온 관계가 무너진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10분 남짓,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했다.

결국엔 영어학원에 이어 수학학원까지 그만 다니겠다는 소리와 함께

당분간은 자기주도학습을 해 보겠다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내가 졌다.

영어학원 보내려다 1년 동안 잘해 왔던 수학학원까지 관두게 생겼다.

사춘기와의 대화가 이리 어렵다. 자칫하면 말린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엄마~나 진짜 상처 안 받으니까 현실적인 답변을 줘~”

“그래? 너 이대로 가다간 그지 깡통 차~

공부 안 하면 뭐 먹고 살 건데~ 정신이 있어~없어~”

아~~ 속이 다 시원하다.



"아들~어디야?"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전화를 해 본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어" "뭐?? 도서관??"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커진다.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나의 마음이 무의식 중에

큰 소리로 튀어나온 것이다.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찍었다며 보내준 사진...뿌듯한 거니??


아이가 어려서는 우리 아이 천재 아니야~ 하다가

어느 정도 크면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을 깨닫고

학생이 되어서는 제발 중간만 하자~라고 한다더니...


타고난 재능이 시원찮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할 텐데.. 쩝..

그나마 수학 머리는 좀 있는 것 같은데 본인이 하려고 하질 않으니

썩히자니 아깝고 그저 내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아들~ 학원 전기세 내러 다니는 거 아니지?"

학원비 낼 돈으로 엄마 아빠 노후 준비나 할까?" 하니

“응~그게 나을지도 몰라~” 한다.


나도 진심이고 아들도 물론.... 진심이겠지....


인생이 성적순도 아니고 대학순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주위를 보면 확실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아침에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잘 일어나는 아이를 보면 그래 뭐 '성적'이 대수겠는가...

그 정도 '성실'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핸드폰만 보고 있는 아들을 보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각자도생!!

네 인생은 네 인생!! 내 인생은 내 인생!!

내 노후 준비나 더더욱 열심히 해야겠다.


덕분에 경제 책이 늘어가는 중..




그리하여 지금은 1년째 아무런 학원도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뒤에 2명 있다네요.

뭐 공부를 안 하니 당연한 결과겠지요.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덕분에 학원비는 차곡차곡 연금저축펀드에 들어가고 있고요.


공부 잔소리가 없으니 늘 평온한 우리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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