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나는 이곳에 아무 연고도 없었으니까. 입사하고 반년이 지났던가. 친구도 없이 항상 혼자 있는 내가 측은했던 것인지 동기는 자신의 여자친구의 지인을 소개해줬다. 그 당시에도 별 감흥은 없었다. 회사 일은 충분히 바쁘고 낯설었으며 이 산업단지의 칙칙함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 그것도 이성과 저녁을 먹는다는 정도에 의의를 뒀었다.
연락을 주고받으며 뭘 먹어야 되나 고민하던 차에 아내가 자신이 쌀국수에 빠져있다고 쌀국수가 어떻냐고 했다. 난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분위기 괜찮은 곳 가서 먹겠지 싶었는데 신기했다. 그렇게 베트남 음식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처음 봤다. 첫인상은 매우 날카롭고 뾰족한 느낌이었다. 깐깐한 깍쟁이 같은 첫인상과는 별개로 털털하고 꾸밈없었다.
그리고 술을 못 한다고 했다. 초면이라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못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잘 통했던 우리는 새벽 2시까지 카페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아주 오랜만이었던 사적인 만남에 신났었다.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처음 만난 사람과 오래 이야기가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뒤에 만날 마음은 없었다. 나는 언젠가 떠날 사람이니까.
그 후에도 아내가 자주 연락을 해줬다. 선물도 주고 호감을 많이 표시했다. 싫지 않았다. 연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대학 축제도 같이 가고 밤늦게까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처음 만난 지 두 달이 좀 지났을까? 나는 고백을 했고 와이프는 꽃을 들고 오라는 미션을 주었고 그렇게 연애 1일 차가 되었다.
아내는 생각보다 세심했고 소심했다. 주변 환경에 예민했으며 터무니없는 속앓이도 많이 하는 여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성향이 잘 맞았고 꽤 오랜 시간 같이 지낼 수 있었다. 거창한 것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의 일상을 점차적으로 잠식해 나갔다. 평화로웠고 평온했다. 서로의 시간과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고 배려해 주었다.
입사 5년 차쯤 되었을까. 괜찮은 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받던 연봉보다 훨씬 높았고 고향에 있는 회사였으며 아내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혼자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결론이 쉽사리 나진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현재 나의 상황과 그녀의 거취에 대해 물어봤다. 고향에 있는 기업으로 이직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가는 게 좋다고 생각이 든다. 장거리 커플이 되어도 괜찮겠냐. 이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거리를 하면 우리의 결말은 너무 뻔할 거 같아."
이럴 때 보면 참 냉철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서 잘 맞는 것일 테지.
그 후 이틀정도 더 고민을 했지만 안 가는 것으로 했다. 단편적인 이유는 아니다. 현재 여기의 삶이 썩 나쁘지 않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지만 아내가 있다. 지금의 회사도 괜찮다. 급여가 내 바람보다 조금 적으면 어떤가. 적어도 나를 의도적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오늘 잠자리에 누워서 하는 생각이 '회사 가기가 두렵다.'가 아닌 게 어딘가.
이직을 포기하는 것에 제일 크게 작용했던 것은 이 고민에 대해 곱씹다가 나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해서였다.
"내가 만약 이 사람과 헤어진다면 나는 이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밥 먹던 와중에 이야기했다. 밥 먹다 말고 아내는 흔쾌히 알았다 해주었다. 프러포즈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언젠가 해야 되는 큰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비장하게 결혼을 준비했다.
예식도 제일 싼 날에 추가금 없이 치렀다. 내가 들었던 건 결혼식 준비할 때 엄청 다툰다는 건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순탄했고 지출도 합리적으로 잘했다. 아내는 추가 옵션 하나하나 신중히 고민을 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냉철하게 판단했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차적으로는 나는 팔불출이 되고 이차적으로는 낭만도 없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프러포즈도 안 해주냐고 야유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드라마틱한 것도 없으며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시절도 없었다. 그저 은은하게 조금씩 가까워졌고 일상에 스며들었다.
나는 혼자 살거라 생각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옛말이 틀린 게 없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나도 짝이 있더라. 종종 아내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너 믿고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으니까 나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나는 타지에 온 지 8년 차이지만 여전히 친구가 한 명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