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8년차의 회상
팀장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이직한지 만으로 8년이 되었다. 경력도 어느덧 10년 차에 가까워지는데 내가 그리던 10년 차의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되었는가?
아니, 보잘것없다.
하지만 조금은 더 평온해졌고 조금은 더 시야가 넓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입사일이 다가오고 연차휴가를 정리하다 보면 지금 회사에서 면접을 봤던 장면들이 떠오르고 퇴사했던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홈페이지를 몰래 훔쳐보곤 한다. 후회가 많은 회사다. 입사부터 퇴사까지 모든 게 후회였다. 그래도 지금 도움 되는 점을 하나만 뽑으라면 첫 직장의 환경이 너무 안 좋았던 나머지 지금 회사의 동료들이 성토하는 불만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공감이 안 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회사 만족도에 대한 기준이 첫 직장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대체로 만족하며 지낼 수 있는 자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첫 회사는 재학 중에 방학 인턴십으로 2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개발팀은 3명, 나의 일은 도면대로 UI를 뽑아내는 그냥 단순한 일이었다. 그렇게 2개월을 근무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1년이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해보고 싶은데 같이하지 않겠냐라는 연락이었다.
마침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래저래 걱정이 많던 시기였다. 졸업까지 한학기 남았고 휴학을 하고 공부를 해야하나 하던 차에 온 연락이었고 불투명하고 기약없는 공채에 뛰어들 시간에 경력을 쌓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비겁한 생각이었다. 나는 치열한 공채 경쟁에서 살아남을 자신도 없었고 인적성, 토익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학교에 취업계를 내고 그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생활은 녹록치 않았지만 다른 동기들은 다들 스터디, 도서관에서 기약없는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앞서간다고 생각했다. 졸업을 앞두고 언제 될지도 모르는 목표를 위해 스펙업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 여기서 경력을 쌓고 있노라고 그렇게 자기 위로를 했었다. '여우의 신포도' 마냥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자 했으며 인내와 도전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6개월을 일했다. 자정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며 개발파트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했으니까. 출장을 가면 최소 3박이다. 고객의 사업장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자정까지 일한다. 담당자는 퇴근했는데 우리는 퇴근하지 못한다.
마감 기간이 다가오면 모두가 예민하다. 자정을 넘어서 새벽에 퇴근한다. 연차? 그런 게 어디 있나. 명절에도 마감이 임박한 프로젝트를 했다.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게 당연한지 몰랐다. 몸은 급격하게 망가져 이전에 입던 옷들이 하나둘씩 안 맞기 시작한다. 늘어나는 건 몸무게와 하루에 피는 담배 개수밖에 없다.
내가 하루하루 피폐해져가는 사이 동기들은 서서히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취업전선에서 하루하루 인내하고 노력하던 그 시간들을 보상받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성공담을 듣다 보면 꼭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넌 안될거야'하면서 초 치는 인간들...
내가 그 인간이다.
나보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고 수상경력도 없으면서 내가 이 모양인데 너라고 되겠어?
물론 내가 그들과 함께 취업전선에 섰다고 해도 성공했다고 장담하는 것은 아니다. 신포도라 생각하고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그저 나의 자책일 뿐이다.
그러던 중 사건이 하나 생겼다. 그 회사는 별다른 매뉴얼이 없었다. 주먹구구식의 일 처리였고 사고가 터지면 일회성으로 어떻게든 메웠다. 전 직책자가 거창하게 벌려놓은 일이 퇴사 후 아무도 인지 못한 채 2년이 지났고 마감 3달 전 발견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놀랍게도 여기선 가능했다. 그리고 그 사고를 수습할 담당자로 내가 선정되었다. 돌이켜보면 실소가 나올만한 팀장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수습해보겠다 했던 나는 순진했던 것인지 멍청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그 때 회사를 다니고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 사고는 예상대로 사고로 끝났다. 평가심사 중 부끄러워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대여섯번 일었다. 멍청한 신입사원이 심사를 받겠다고 입회하여 프로젝트를 설명하는데 심사위원들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나는 그 와중에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어떻게든 평가위원들을 눈속임하려는 아둔함까지 보여줬다. 평가는 정말 혹독했고 그 실패의 화살은 곧 나에게로 돌아왔다. 물론 1년 차 신입사원한테 대놓고 질책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말의 양심인 것인지 예상한 결과라고 생각한 것인지.
하지만 팀장의 말은 질책보다 조금 더 아팠다.
나한테 이 일을 맡긴 본인의 책임이라 했다. 본인이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거라 했다.
팀장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책임감 강한 팀장의 나름의 자조 정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아니다. 자신이 맡아서 진행했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나 업무가 과중한 나머지 할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팀장은 자기애 강하고 독단적이며 기분에 따라 팀 분위기를 좌우했으나 그럼에도 실력으로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날 팀장으로부터 '내가 했어야 했는데...' 라는 말만 수십 번 들었다. 내면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나는 항변할 용기는 없었다.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정시 퇴근을 했다.
저녁을 먹고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한숨만 쉬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다른 회사도 똑같을까. 지금 여기서 그만두면 더 패배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부러웠다. SNS에 신입사원 연수 사진들을 올리는 친구들이, 피드백을 마구 쏟아내고 정시 퇴근 하는 고객사 담당자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도 부러웠다.
지금 회사를 퇴사하고 다른 곳에 간다 한들 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벤치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 주에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 사유도 정말 겁쟁이였고 비겁했다. 집안에 말 못 할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그만두는 것으로 했다. 누구의 탓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건 너무 건방져 보여서 하지 못했다. 그 후 팀장과 3시간을 면담을 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 제일 저렴한 5일후 출발하는 경유 13시간짜리 체코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두 달 뒤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무한대니까. 5일 후 도망치듯 배낭 하나만 메고 떠났다. 계획은 없었다. 휴학을 하고 배낭여행 가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가봤다.
25살의 나는 참 비겁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정의한다. 나를 알아봐 준다는 망상에 빠져 블랙 기업에 들어가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다. 조금 더 목표를 크게 잡고 내 능력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그런 자신감이 필요했다. 부딪혀 보고 그 반동으로 인해 넘어질 각오를 했어야 했다. 뒤늦게 후회하지 않게 할 만큼은 해봤어야 했다. 대략 6개월 정도를 다시 공부하고 준비했다. 1년 6개월 동안 보고 배웠던 것들을 토대로 신중하게 회사를 추려내고 다시 신입사원으로 지원했다. 여러 회사 면접을 봤지만 빠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1년 6개월 근무 후 퇴사를 하셨나요?"
나는 준비한대로 대답했다.
어떻게 됐을까. 나는 지금 원했던 회사에 다니고 있을까?
입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찮게 괜찮은 회사에 지원할 기회가 있었고 지금까지 무탈하게 다니고 있다.
좋은 직장이냐라고 물어본다면 괜찮은 직장이다라고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타임머신을 준다면 여우의 신포도처럼 도전조차 하지 않은 그 때로 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