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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B Jul 16. 2024

“엄마, 나 새로운 꿈이 생겼어!”

장래희망 부자, 런던에서 새 꿈을 만나다

지금껏 아이를 키우며 크고 작은 욕심이 있었지만, 내가 가진 가장 큰 욕심은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부모에게 휘둘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거나, 성인이 되어서도 뭘 해야할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래서 아이가 꼭 꿈을 꾸는 사람으로, 좋아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게 내가 가진 가장 큰 욕심이다.


내가 부린 욕심 덕일까, 아이는 꿈을 꾼다. 그것도 엄청 많이. 학교에 입학해 아이가 처음으로 말한 장래희망은 요리사였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게 좋으니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거였다. 그래서 한 학기동안 요리 수업을 들었다. 샌드위치부터 떡볶이, 타코, 피자까지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본 아이는 이 정도면 됐다고 했다. 아직은 불이 좀 무서우니 요리사의 꿈은 뒤로 미루겠다며. 곧 아이의 꿈이 바뀌었다.   


두번째 꿈은 바리스타였다. 엄마와 아빠가 늘상 커피를 입에 달고 사니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고소한 라떼,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엄마 아빠가 행복해 보였다나. 아이의 다정한 마음에 감동받았는데, 이 꿈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집에서 커피도 내려보고 핫초코와 오미자차 등 다양한 음료도 만들어봤지만, 커피는 캡슐머신이 내려주고 핫초코도 휘휘 젓기만 하면 되다보니 본인의 역할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리고 세번째 꿈이 생겼다. 


런던은 문화의 도시다. 영국박물관과 테이트모던, 내셔널갤러리와 같은 미술적 자산만 풍성한 게 아니라 음악적 자산도 풍요롭다. 50~60년대 영국을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고 부를 정도로 영국 팝과 로큰롤, 재즈가 전세계를 사로잡았다. 지금도 비틀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애비로드를 가고 비틀즈 워킹 투어를 한다. 그리고 런던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 ‘뮤지컬’이 있다. 


오페라나 연극, 발레 등 공연은 자주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외국의 유명 극단이 내한한다는 뮤지컬은 챙겨보던 때가 있었다. 20대 사회초년생,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레 미제라블, 캣츠, 오페라의 유령, 엘리자벳, 지킬박사와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등 1년에 못해도 서너번의 공연을 봤다. 한국에서의 뮤지컬 공연은 높은 층, 가려진 벽 등 최악의 조건에서도 10만원은 했기 때문에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책을 한 권씩 정독하듯 한 작품 한 작품, 한 씬 한 씬을 소중히 봤다. 그런 내가 런던에 왔다. 한 블럭 건너면 오페라의 유령 극장이 있고, 한 블럭 뒤엔 위키드 극장이, 바로 옆엔 백 투더 퓨처 극장이 있는 뮤지컬 천국에 말이다! 


뮤지컬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가 뮤지컬을 다같이 보는 게 처음인데, 뮤지컬은 시끄러울 수도 있고 어둡거나 깜짝 깜짝 놀랄 수가 있어. 괜찮겠어?” “여기서 볼 뮤지컬은 자막도 번역도 없이 영어로만 진행되는 데 괜찮겠어?” 아이는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엄마, 재밌게 보면 되지 뭐가 문제야~ 우리 볼 수 있으면 다 보자. 나 너무 설레!”. 아이의 그 한 마디가 나에게 어찌나 큰 응원이고 사랑의 힘이 되었는지..


뮤지컬 FROZEN을 선보이는 ‘DURY LANE’ 극장의 실내는 오페라 하우스 만큼이나 화려하다


런던은 각 작품마다 전용 극장이 있는 만큼 매일 공연이 열렸고, 좋은 공연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다만 좋은 좌석을 선점하려면 좌석당 80~100파운드 정도를 지불해야 했는데 셋이 좋은 좌석을 구하기엔 경제적인 부담이 컸다. 그래서 우리는 데이시트를 노렸다. 매일 오전 9시30분에서 10시 사이 각 극장들이 티켓부스를 연다. 그리고 그날의 당일 티켓을 판매하는데, 할인율이 생각보다 크다. 짠순이 엄마 덕에 런던에 머문 일주일 중 사나흘을 매일 아침 뮤지컬 극장들이 모여있는 코벤트 가든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가 처음 본 뮤지컬은 ‘FROZEN’.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아이도 우리도 모두 스토리와 음악을 알고 있으니 익숙하게 즐길 수 있겠지 기대했고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노래 가사까지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꽤나 깊이 있는 겨울왕국 팬이었고, 객석에 있는 크고 작은 엘사, 안나 공주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공연을 즐겼다. 런던의 뮤지컬 무대 장치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최첨단이었고 엘사가 손바닥을 들어 올릴 때마다 얼음이 발사된다던지, 손동작 하나로 드레스를 촤르륵 갈아입는다든지 눈 앞에 마술이 펼쳐졌다. 안나가 언니 엘사를 구하고 얼어붙는 장면은 상상도 못한 굉장한 연출로 눈물이 절로 맺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뮤지컬 극 중에서도 FROZEN은 최신에 속하는 극이다보니 여러가지 무대 장치, 조명 기술을 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엄마, 너무 멋져. 너무 아름답고 예뻐. 나는 겨울왕국이 진짜 얘긴 줄 몰랐잖아?” (아마도 아이는 만화로 보던 것은 허구인데, 뮤지컬은 실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FROZEN 배우들의 커튼콜 모습

FROZEN 배우들의 커튼콜 모습. 실사판 스벤과 올라프는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하다. 데이시트로 구한 좌석은 1층 D열(앞에서 네번째 줄) 왼쪽 사이드석. 무대 위 배우들의 숨소리를 듣고 뺨에 흘러내리는 땀도 볼 수 있는 자리다.


아이가 숙소에 돌아와 일기장에 그린 ‘FROZEN’ 그림


이튿날에도 우린 오전 9시 코벤트가든으로 갔다. 오늘의 목표는 ‘LION KING’. 아이는 아직 본 적이 없는 영화인데다, 나와 남편도 30년도 전에 영화를 본지라 스토리가 희미했지만 런던이 아니면 라이온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티켓부스가 열리자마자 판매원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너희 셋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어. 하지만 둘, 하나 따로 앉을 수 있는데 어때?” 묻는다. 정가가 100 파운드에 달하는 자리를 25파운드에 구하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다. 


라이온킹에 등장하는 동물을 과연 극적으로 어떻게 표현했을까, 심바와 티몬, 품바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자리가 1층과 2층으로 나뉜 우리는 이산가족이 됐고, 막이 올랐다. 어두컴컴한 1층 객석의 좁은 복도로 기린이 지나간다. 원숭이들이 겅중겅중 뛴다. 가젤이 떼지어 우르르 달려간다. 2층 객석에서도 새가 날아가고 홍학이 날개를 펼친다. 뮤지컬로 이런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고? 어떻게 이런 무대 의상을, 이런 동작을 생각해낸거지? ‘나~~즈베냐, 발바리 치와와~’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뮤지컬에 흠뻑 빠져든다.


데이시트로 구한 1층 자리에서 본 무대 커튼콜

티몬과 품바며, 하이에나 삼총사며, 심바와 무파사 그리고 스카까지. 애니메이션 속 모습, 목소리 그대로 구현했다.


뮤지컬 LION KING은 LYCEUM 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아이가 그린 포스터


그 후로도 우리는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뮤지컬의 데이시트를 구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달렸다. 하지만 오랜 명성과 인기 덕분인지 쉽사리 좌석을 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런던에 오기로 약속했다. 이번에 못 본 작품들은 이 다음에 반드시 같이 보자고.


아이가 숙소에 돌아와 매일 그림을 그렸다. 본 작품에 대해, 보고 싶은 작품에 대해.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뮤지컬 배우가 되려고.
뮤지컬을 보는 데 가슴이 두근두근 하고 너무너무 멋진 거 있지? 
나도 해볼래, 뮤지컬 배우”


그렇게 런던에서, 장래희망 부자인 아이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런던 여행 기간 아이가 일기장에 그린 뮤지컬 포스터
신기하게 런던에는 일본서도 볼 수 없는 ‘이웃집 토토로’ 뮤지컬이 있다

영어공부라면 끔찍하게 싫어하는 아이가 ‘오페라의 유령’, ‘위대한 쇼맨’ 주제가의 가사를 영어로 적고 번역했다. 아이는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고 가사지를 보며 노래를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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