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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B Jul 16. 2024

저도 컬렉터가 될 수 있을까요?

컬렉팅에 있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림이 좋다. 내한하는 유명 화가의 전시라면 얼리버드로 티켓을 끊어 갈 정도다. 국내 유명 화가의 전시도 찾아다닌다. 직장이 종각역에 있던 한 때는 워준위(워크샵준비위원회) 위원이 되어 회사 동료들과 갤러리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 5~6군데를 다니며 화가에 대해 배우고 그림을 함께 보는 것이 참 즐거웠다. 그림이란 것을 넘어 전시회라는 것 자체가 참 설레는 일이다. 


유럽 여행에서도 유명 미술관을 꼭꼭 챙겨 다녔다. 파리에서 루브르박물관과 오랑쥬리, 오르세, 베르사유를 갔고, 런던에서 내셔널갤러리와 테이트모던을 갔다. 베네치아에서는 일정이 짧아 가고 싶었던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를 가지 못했지만, 그 한을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에서 풀었다. 심지어 프랑스의 시골 마을 옹플뢰르에서도 작은 갤러리를 다니며 그림을 봤다. 


한국에선 바글바글한 공간에 줄을 서듯이 움직이며 보던 피카소, 모네, 반 고흐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이 이곳에는, “널려있다”. 고개를 돌리면 피카소가 있고 반 고흐가 있다. 내가 원하는 그림 앞에 앉아 한참을 멍 때리며 볼 수 있게 간이 의자가 이곳저곳 비치되어 있고, 테이트모던에서 만난 어떤 관람객은 작은 접이식 의자를 들고 다니며 그림 앞에 의자를 펴고 앉아 감상하기도 했다. 천국이다.



청자켓을 방석 삼아 깔고 앉아 전시된 조각 작품을 보며 즉석에서  뎃셍을 한다던지, 간이의자를 챙겨와 좋아하는 그림 앞에 앉아 아무런 방해없이 온전히 작품을 감상한다던지. 멋있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갤러리에 전시실 마다 벤치가 있었다. 쫓기듯이 줄 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유있게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그림들(파리 오르세)

 

근데 이상하게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보며 ‘이 작품 가지고 싶다’던지, ‘우리 집에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은 의외로 들지 않았다. 판매를 하는 작품들도 아니거니와 비싸서 유명 갤러리에서나 사는 그림이라 엄두가 안 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상상이라도 해 볼법 한데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니 애초 욕망조차 품지 않는 나는야 ESTJ... 그저 이 곳에 내가 왔다는 걸, 내가 이 그림을 내 두 눈으로 봤단걸 기억하고 싶어 셀카를 남기고 포스터 몇 장을 사왔다. 그게 다였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아쉬웠다. 지레 겁이 나서 시도조차 못 해봤다는 것이.  


한국에 들어와 한달 정도 지나 4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브리즈 아트페어에 다녀왔다. 브리즈는 신진 화가들의 그림을 소개하는 페어다. 신진 화가의 작품이라면 나도 좀 컬렉팅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평일 휴가까지 내고 VIP 티켓을 끊어갔다. 보통 VIP 티켓은 페어가 공식 시작하기 전, 또는 페어 첫 날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사가기 전에 우선적으로 그림을 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이 좀 저렴하니 한 점이라도 사올 수 있겠지?’


한없이 가벼운 생각이었다. 그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신진 화가의 그림이라면 ‘저렴할 테니’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아주 큰 착각이었다. 신진 화가들의 그림은 유명세를 탄 화가들의 그림보다 저렴하다. 예전에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유영국 전시회에서 겁도 없이 도슨트에게 “저 이 그림 사고 싶은데요” 하면서 가장 작은 그림을 골라 가격을 물었던 적이 있다. 그 때 손바닥만 했던(아마도 1호 정도) 그 그림의 가격이 4억이었다. 브리즈 아트페어에서 만난 신예 화가들의 경우 20호 정도로 한아름 하는 큰 그림도 100~200만원 사이에서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단 한 점의 그림을 구매 하지 못했다.



겁도 없이 얼마냐고 물어보았던 유영국 작가의 그림


허무했다. 3시간동안 열심히 그림을 봤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지 못하다니. 집에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나는 내 안목에 대한 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유명 화가라면 ‘아 이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구나. 그럼 이 사람 그림은 믿고 사면 되겠다’ 라는 게 있었을 거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진 화가의 그림을, 100만원을 내고 덜컥 살 수가 없었다. 온전히 나의 안목을 믿고 화가와 그림을 골라야 하는데, 맘에 드는 작품이 나타날 때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게 과연 맞는 선택일까?’, ‘다른 사람도 이 그림을 좋다고 생각할까?’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거다. 내 안목을 믿지 못하니까.


컬렉터가 되려면 경제력만큼이나 중요한 게 자신의 안목에 대한 확신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거라는 걸, 숱한 전시회를 다니면서도 몰랐던 그 것을 이 작은 신진 화가 아트페어에서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어떤 풍의 그림인지, 어떤 그림을 컬렉팅하고 싶은지,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만한 그림을 사고 싶은건지 아니면 나만의 기준으로 그림을 고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유럽에서 그림을 보며 알게된 것 중 하나는 이 갤러리가, 아니 이 화가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단한 컬렉터들이 있었다는 거다. 르네상스 회화로 세계 최대 규모인 우피치 갤러리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통해 존재할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을 하는 귀족이었는데,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아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산치오, 산드로 보티첼리, 미켈란젤로가 작품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다.


반 고흐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그의 주치의였던 폴 가셰 박사는 반 고흐를 격려하며 그의 후원자가 됐다. 많은 그림을 사줬고 반 고흐가 붓을 놓지 않도록 곁에서 도왔다. 폴 가셰 박사는 반 고흐 뿐만 아니라 르누아르, 세잔, 카미유와 같은 화가를 돕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반 고흐가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 폴 가셰는 반 고흐의 주치의 이상인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위대한 작가를 알아보는 안목도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나는 과연 그림에 대해 화가에 대해 확신을 가져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유명하다고 하니까 휩쓸려 다녔던 것은 아닐까.  


5월 초, 아이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아이가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은 전국에 가맹이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고 본사에서 인사동의 한 갤러리를 전체 대관해 기부 전시회를 연 것이었다. 주원이에겐 첫 전시였고, 나름 정성을 들여 3주에 걸쳐 아주 작은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 


아이의 첫 전시인만큼 ‘앞으로도 너의 꿈을 이렇게 펼치거라’ 하는 어른스러운 훈화 말씀 한마디 해주고 와야지 생각했는데, 왠걸… 전국의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과 스토리를 읽으며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주원이는 친구와 서로 무릎을 꿇고 앉아 하트를 건네주는 그림을 그렸다. 친구들과의 갈등 때문에 학교에서 도망치기만 했던 아이를 잡아준 친구가 그림 속에 있었다. ‘학교에서 외로웠을 때 내게 다가와 준 고마운 친구’. 



아이가 그린 그림(왼쪽)과 할머니를 생각하며 밥을 지은 어린 화가의 작품(오른쪽)


열한살 아이가 밥을 그린 그림이 있었는데, 그림 설명에 ‘매일 제게 밥을 해주시는 할머니께 이젠 제가 밥을 해드리고 싶어요’ 라고 써있었다. 그림 제목은 ‘할머니는 나의 보물’. 여기서 나는 어떤 그림을 사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내가 컬렉팅 해야 하는 것은 비싼 그림이 아니라 마음이었구나. 이 작은 마음들이 내게 주는 감동을 수집해야 하는 거였구나.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색채와 수려한 붓칠보다 이런 스토리였구나. 집에 돌아와 벽 한켠을 보니 아이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서툰 그림들, 눈에 별이 빛나는 공주들, 아이는 용이라고 했는데 아무리봐도 사슴같은 그림. 


‘그래, 나도 이미 컬렉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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