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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B Jul 16. 2024

미술관에서 유명한 작품을 볼 때는 말이죠

루브르 가이드 선생님이 알려준 팁

루브르박물관은 48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현재 3만 5,0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소장품을 모두 다 보려면 먹지 않고, 자지 않고 꼬박 24시간 4개월 동안 봐야 한다고 한다. 루브르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작품당 일정 관람시간을 곱했을 때 그런 셈이 나오는가 보다. 신기한 것은 영국박물관 가이드 선생님도 비슷한 셈을 통해 영국박물관의 모든 작품을 보려면 6개월 정도가 걸릴 거라고 했다. (가이드 선생님들 사이에서 커먼센스처럼 통용되는 세일즈 포인트일지도 모르겠다)


루브르에 왔다면, 이 유리 피라미드 안에서 사진을 남기세요


루브르는 마음먹고 간 것 보다도 규모가 거대했고, 작품들 또한 엄청났다. 적고 보니 ‘엄청나다’는 말은 조금 성의없게 느껴진다. 다시 한번 얼마나 대단한지 묘사해보자면, 인류에 ‘법’이라는 것을 만들고 규율을 세운 ‘함무라비 법전’이 루브르에 있다. 그리스신전에서 모시던 신화 속 신들의 조각상이 루브르에 있다. 화가로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외젠 들라크루아, 볼테르 등 르네상스 대표적 화가들 작품이 있고, ‘모나리자’ ‘나폴레옹의 대관식’ ‘암굴의 성모마리아’ 등 미술사와 종교사에서 유명한 명작이 있다. 


우리는 루브르에서 4시간에 걸쳐 12개의 작품을 감상했다. “뭐? 4시간동안 고작 12개라고?”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 나도 그랬다. 그치만 정말 최선을 다해 하나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걸 도와준 게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작품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주며 이 작품을 누가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어디서 발견했는지, 이 작품이 왜 루브르에 있게 됐는지 등을 이야기 해줬다. 


루브르에서 만난 도슨트 선생님. 빨간 원피스가 준 강렬함만큼이나 선생님의 ‘프로페셔널’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신기한 유물에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준 어린 친구들에게도 감명받았다


재밌게 들은 이야기는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에 대한 이야기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거짓말’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폴레옹은 황제 자리를 셀프로 차지하고, 셀프 대관식을 열었다. 보통 대관식에서 황제는 교황에게 왕관을 받아 머리에 쓰는데 나폴레옹은 스스로가 신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무릎 꿇는 것은 안 된다며 서 있었다고 한다. 또 교황이 들고 있던 왕관을 뺏어서 스스로 썼고, 교황은 계단 밑에 서있고 본인이 위에서서 왕비에게 왕관을 씌워줬다고 한다. 지금까지 저런 이상한 대관식은 없었다고. 나폴레옹은 이 대관식에 대해 자크 루이 다비드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는데, 다비드도 이런 대관식은 처음이다보니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다비드는 거짓과 진실을 적절히 섞어 그림을 그렸다. 다비드는 대관식에 참석하지도 않았지만 나폴레옹이 존경하던 로마의 카이사르 장군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평소 나폴레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어머니와 누이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대관식에 오지도 않았고 초대하지도 않았지만 대관식처럼 중요한 행사에 가족이 없으면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나고 자란 것이 들통날 수 있으니 어머니와 누이들을 그려 넣었다던지. 다비드는  그린 원 그림에는 스스로 왕관을 쓰는 나폴레옹의 모습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예의범절에 크게 어긋난 모습에 여론이 들 끓을 것을 고려해 나폴레옹이 크게 나무랐고, 결국 그 위를 다른 그림으로 덮어 씌웠다던지 하는 재밌는 이야기가 그림 곳곳에 숨어있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의뢰를 맡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을 보며 ‘을’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유명한 화가여도 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에 약간의 동질감도 느꼈다.


선생님에 듣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이날 필기하는데 작은 공책 한권을 다 썼다.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을 소중히 보다가 가장 끝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모나리자를 만나게 됐다. 미스터리한 그림으로 알려진 모나리자.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의 그림임에도 보안 장치가 수두룩하게 달렸을 뿐더러 삼엄한 경비 속에 관람해야 하는 모나리자. 관람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봐야 하는 바로 그 모나리자.


그림을 보기 위한 줄을 서기 전, 선생님이 당부했다. 


“이 모나리자라는 유명한 그림을 보기 위해
여기 루부르까지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다들 저렇게 긴 줄을 서서 모나리자의 사진을 찍죠.
그런데 있잖아요, 모나리자 사진은 사실 인터넷에 다 있어요.
저기 서서 촬영하는 사진보다 더 고퀄이고 잘 나왔을 거예요.
유명한 그림을 만났을 때는요, 그림을 찍지 마시고 셀카를 찍으세요.
내가 이 그림을 봤다는 것을 셀카로 내 얼굴과 함께 남기세요.
그게 더 오래 기억에 남아요.”


보이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한 이 인파가!


머리가 띵했다. 나름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한국에서도 유명 작가나 갤러리의 내한 전시가 열리면 한달음에 달려가서 봤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멋지다는 유명하다는 그림들을 봤지만, 단 한번도 그 그림 앞에서 내 셀카를 찍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전시들은 사진 촬영이 불가한 전시도 많거니와, 촬영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그림 사진을 찍지 내 얼굴을 찍을 생각은 못 했다. 선생님 말은 일리가 있다. 유명 작품에 대한 고화질 이미지는 인터넷을 찾으면 다 나온다. 근데 나랑 그림을 함께 찍은 사진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세 식구는 그날 처음으로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후로 이어지는 여행에서 멋진 그림을 만나면 무조건 그림과 함께하는 셀카를 찍었다. 그게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은 정답이었다. 여행이 끝난지 4개월이 지난 지금도 모나리자와 함께한 사진을 보면 루브르의 공기를, 그곳의 삼엄한 경비를, 명작 앞에서 설레어 하던 우리의 마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모나리자와 함께 남긴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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