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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B Apr 12. 2024

[번외] 베네치아 미식

바다로 빠질 듯 말 듯 아찔한 미식기행

이탈리아 베네치아. 체류기간이 가장 짧았던 곳이자, 아이가 깊이 사랑에 빠진 곳, 그리고 훌륭한 레스토랑을 가장 많이 갔던 곳. 동선을 아무래도 잘 잡은 것 같다. 이탈리아에 온 순간부터 파리 음식도 잊었고 런던 음식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역순으로 여행했다면 프랑스, 영국 음식은 내내 이탈리아 음식과 비교당했겠지. 진정한 미식기행은 이탈리아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도처가 바다인지라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많고, 맛있다. 간이 잘 맞는다.


보통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베네치아 본섬 밖에 있는 ‘메스트레’ 지역에 숙소를 구한다고 한다. 메스트레 지역에서는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으로 들어와야 하지만, 숙소가 많고 가격대도 다양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치만 난 베네치아에 체류하는 기간이 2박으로 짧고, 숙소 밖으로도 베네치아의 풍경을 만끽하고 싶어 본섬 안에 있는 호텔 '카날 그란데'을 잡았다. 이번 여행에서 박 당 투숙비용이 가장 높은 곳이었고, 그만큼 기대도 컸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산타루치아 기차역에서 가깝고, 숙소 바로 앞에 바포레토 정류장이 있어 섬 깊숙한 곳까지 이동이 수월했다. 하지만 캐리어 3개를 끌고 베네치아 본섬에 들어선 순간, '아 이래서 다들 메스트레로 가는구나' 했다. 베네치아 섬 안에 수상버스가 있다고 한들, 수상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은 '수로'다. 바포레토로 굵직한 거리를 이동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뚜벅이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가 내린 역에서 숙소까지 다리를 두 번 건너야 했고, 다리는 모두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했다. 경사로가 없다. 내가 작은 캐리어를 들고 다리를 건너 아이와 함께 있으면, 남편은 30kg가 넘는 큰 캐리어 2개를 이고 지고 다리를 건너야 한다. 간신히 붙은 세 대의 갈비뼈가 언제 다시 부러질지 모를 일. 바다와 도로 사이에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으므로 아이나 캐리어가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베네치아 본섬에 도착한 밤. 캐리어를 끌고 다리를 건너고 좁은 골목을 지나 호텔을 찾아간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숙소. 하룻밤 숙박비가 34만원에 달하는 우리의 숙소는 대운하 옆에 있었고,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베네치아의 깊은 밤 노란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는 곳이었다. 로비에서 친절한 직원에게 체크인을 마치고 방 배정을 받는데, 어라? 친절한 직원이 우리를 바깥으로 안내한다. 우리 방은 대운하가 보이는 이 으리으리한 호텔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또 옆으로 몇 건물 정도 이동해야 나오는 건물에 있었다. 호텔이라는 표식도 없는 맨 건물. 양 옆에 건물이 있고, 앞쪽으로도 건물이 있어 삼방이 막힌 건물에 우리의 방이 있었다.   


본관과 별관이 따로 있다는 설명을 보고 가지 못해 나처럼 당황한 투숙객들이 많다


비싼 가격에 비해 방은 작고, 창문도 작고, 심지어 창문을 열어도 앞 건물이 나와 뷰라는 것이 전혀 없다. 나중에 구글과 아고다에 올라온 후기를 보니 비슷한 내용이 많았고, 호텔은 최상급 방에만 대운하뷰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럴수가. 베네치아를 즐기려고 잡은 숙소인데, 이렇게 감옥같을 수가 있나.


그림 양 옆의 커튼을 치면 작은 창문이 나오는데 앞이 또 다른 건물벽으로 막혀있다

많이 속상했다. 열심히 조사하고 예약한 숙소인데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치만, 나의 이 속상함을 달래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매일 제공해주던 조식이다. 조식에 대한 만족도가 투숙비 중 절반 어치는 한 것 같다. 다시 처음에 본 호텔 본관으로 돌아가서, 로비에 작은 식당이 붙어 있었는데 주방장은 할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무뚝뚝해 보이던 할아버지는 눈이 맞으면 싱긋 웃으면서 'Buon Giorno!' 하고 인사한다. 'Black coffee or Cappuccino?' 물어보고 직접 카푸치노를 만들어준다. 아직은 쌀쌀한 베네치아의 아침 공기에 이 카푸치노가 속으로 들어가면 마치 노천탕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커피잔이 비면 꼭 다시 와서 물어본다. ‘원 모어 카푸치노?’ 


숙소 자체는 참 아쉬웠지만 바삭하고 부드러운 크로와상과 카푸치노를 내어주는 조식만으로도 행복했다. 유리창 뒷편에 수로를 오가는 곤돌라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La Palanca

세계테마기행 이탈리편을 보며 저장해놨던 식당. 베네치아 내에서도 작은 섬에 있는 곳인데 사장님이 진짜 너무 친절하고 상냥하다. 심지어 영업도 엄청 잘 한다. 야외 테이블에 앉았는데, 베네치아에서 야외라고 하면 바다다. 정말 테이블이 빠질랑말랑할 정도로 바다와 가까이 있다. 그 아찔함에 발꼬락에 힘이 들어가고, 술이 빠르게 취하는 기분이 든다. 사장님 추천에 따라 3가지 음식을 시켰다. 베네치아 앞바다에서 잡았다는 해산물 플래터. 정어리, 참치타르트, 오징어 등 6가지 음식을 조금씩 덜어준다. 짭조롬한 맛이 애피타이저로 제격이다. 아이는 오징어먹물파스타를 선택. 입이 시커매질 정도로 맛있게 먹는다. 사장님 추천으로 고른 생선구이는 작은 사이즈의 삼치? 같았는데 부드러웠다. 붉은양파 샐러드가 느끼함을 잡아준다. 이탈리아 식전주 Sprits 아페롤을 원없이 마신다. 아페롤의 핑크빛과 바다색이 환상적이다.


Le Cafe

현지인이 바글바글한 식당. 비발디 사계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저녁을 먹으러 들린 이 식당에서도 해산물 플래터를 주문했다. 베네치아는 해산물의 천국이니까!. 낮에 먹은 해산물 플래터가 짭쪼롬한 형태의 반찬 느낌이었다면 이 곳의 플래터는 튀김으로 구성돼있다. 오징어, prawn, shrimp가 감자 양파 같은 것들과 함께 튀겨져서 나온다. (프라운이랑 쉬림프는 여전히 무슨 차인지 모르겠다...) 새우와 오징어, 홍합이 들어간 해산물 파스타는 살짝 매콤한 것이 입맛에 딱 맞다. 새우에서 랍스터 맛이 난다. 면치기 선수인 아이가 매끼니 파스타를 주문해주시는 덕분에 다양한 파스타를 즐겨본다. 파리에 이어 두번째로 도전한 훈제연어와 토스트는 너무 짜서 많이 못 먹었다. 왜 이리 짜고 신 것이냐... 


2월의 베네치아 저녁무렵은 아직 조금 쌀쌀하다. 야외 테라스를 포기할 순 없다보니 담요를 뒤집어 쓰고서라도 앉아있어본다.


Vecio Pozzo

베네치아에 도착한 첫 날, 시간은 밤 9시가 다 되어가고 가게마다 불이 꺼져있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호텔 직원에게 추천을 받아 찾아간 곳. 베네치아에선 'pozzo'라는 것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포쪼는 '우물'인데, 베네치아가 바다 위에 인공적으로 지은 섬인지라 물을 끌어와 쓰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마다 광장과 성당이 있고 그 한가운데 우물이 있다. 우리가 찾아간 이 식당 앞에는 큰 우물이 있다. 베끼오 포조에서 '베끼오'는 셰프 이름이다. 밤 10시까지 하는 곳이라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이미 호텔 직원이 식당 사장님께 전화를 해두었다. '배가 많이 고픈 동양인 가족이 갈 터이니 문을 닫지 말라'고 메시지를 전해두었다고.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곳. 식당에 있는 이탈리안들은 1인 1판을 하던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우리는 해산물 파스타, 페퍼로니가 올라간 치즈 피자를 시켰다. 피자가 너무 맛있어서 감겨가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갓벽했던 맥주 한잔. 런던을 떠나 이탈리아로, 베네치아의 돌바닥에서 캐리어 3개를 덜덜덜 끌고 온 피로가 보상되는 기분이었다.

피자가 너무 맛있어서 눈 튀어나올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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