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다이어트 하러 가요?"
파리에 간다고 했더니 '다이어트 하러 가냐'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식대가 너무 비싸서일까, 아님 음식 맛이 없어서일까. 다녀와보니 전자는 확실했고, 후자는 노코멘트 하겠다.
물가가 살인적이라 세 식구가 외식으로 한 끼 먹을 때면 50~80유로 정도 나왔다. 하루 한끼 내지 두끼 정도 외식을 했는데 매 끼니 정말 꼭꼭 씹어서 정성껏 먹었다. 그만큼 식대가 비싸기도 했고 음식이 진짜 천천히 나와서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있다. 파리에서 먹었던 것보다 오히려 노르망디 지역에서 먹었던 음식이 맛있고 재밌었다.
옹플뢰르(Honfleur)는 프랑스 여행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이다. 매력이 넘치는 작은 항구, 복작복작한 시장, 수더분한 성당이 맞이해주는 작은 동네. 옹플뢰르는 '갈레뜨'의 본고장이라고 한다. 갈레뜨는 크레페와 비슷한 음식인데 갈레뜨는 메밀로, 크레페는 밀가루로 만든다고 한다. 간식이나 후식으로 먹기도 하지만, 계란이나 베이컨 같은 재료를 넣어 충분히 한 끼 식사로도 먹을 수 있다. 우리가 간 이 식당은 가이드 선생님이 추천해준 곳인데 갈레뜨의 밀전병은 담백하고, 곁들인 햄치즈에그는 짭조롬한 것이 맛있었다. 조린 사과와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크레페는 일반적으로 생각한 갈레뜨만큼은 아니지만 맛있었다. 노르망디 지역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비가 많이와 과일 농사가 잘 되는데 특히 사과가 유명하다고 한다. 사과를 발효해 만든 노르망디 전통주 '시드르(cidre)'도 함께 마셨고, 아이를 위해 즉석 착즙한 사과주스도 마셨다. 가게 이름에도 '시드르'가 있듯 이 동네에 사과 발효주를 파는 바틀샵이 참 많았다. 사과를 증류해 만든 첫 술 시드르는 4~7도 정도가 되는데, 이 시드르를 한번 더 증류해 만든 것이 13~15도 정도의 '뽐므', 뽐므를 한번 더 증류하면 40도에 달하는 사과 위스키 '칼바도스'가 된다고 한다. 시간이 촉박해 시드르, 갈바도스, 뽐므 같은 전통주를 충분히 시음하지 못하고 온 게 아쉽다. (34.50 유로)
몽 생미쉘 섬에서 저녁을 먹으러 간 Saint Pirerr. 3성급의 관광호텔인 Auberge Saint Pierre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당일치기 노르망디 여행이다보니, 시간이 촉박해 가이드 선생님이 미리 잡아놓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몽 생미쉘 섬 자체가 작기도 하거니와 대체로 수도사들이 생활하는 곳이라 식당이나 카페가 많지 않다. 근데 이 식당, 생각보다 음식의 퀄리티가 좋다. 이 동네는 바닷가라 땅에 소금기가 많은데 그 땅에서 자란 풀을 먹고 자란 양들은 그 자체로도 육질에 소금기가 많다고 한다. 소금기 있는 풀을 먹고 자란 양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져서 시켜본 양고기. 부드럽고 잡내도 없다. 양이 적어서 아쉬웠을 뿐 맛은 최고였다. 그리고 옹플뢰르에서 먹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못 먹었던 크림 홍합을 몽 생미쉘의 식당에서 먹었다. 역시나 바닷가라 홍합이 많이 잡히는데, 옹플뢰르에 이 홍합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많았다. 베이스는 크림 또는 토마토를 선택할 수 있는데 크림을 선택했다. 느끼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청양고추랑 파, 다진마늘 조금 넣고 국물 좀 자작하게 해서 소주랑 먹으면 딱이겠다 싶었다... 아참, 수도사들이 빚었다는 맥주도 맛있었다. (76 유로)
트로카데로 광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었다. 보통 아침셋트는 커피(또는 핫티)와 착즙한 오렌지주스, 빵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우린 두 셋트를 시켰다. 하나는 크로와상, 버터가 발라진 바게뜨를 오렌지주스&커피와 함께 주문했고, 하나는 오믈렛과 바게뜨를 마찬가지로 주스&커피 조합으로 시켰다. 오믈렛은 (요리를 정말 못하는) 내가 만들어도 이보다 나을 것 같아서 실망했지만, 빵들은 그럭저럭 맛있었다. (28유로)
베르사유로 출발하기 전 오르세 미술관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곳. 미리 찾아보고 간 곳은 아니고 식당 분위기가 좋고 동선상 맞아서 들어갔다. 친절하고 다정한 엔젤이라는 직원을 만났던 곳. 앙트레로 시큼하고 짠 훈제연어, 프랑스에 오면 꼭 먹어보라던 어니언스프, 그리고 메인으로 소고기 스테이크와 후렌치후라이를 주문했다. 음식은 딱히 맛있지 않았는데, 서버가 인상적이었던 곳. 불어를 모르는 외지인을 위해 홍합부터 식재료를 보여주며 메뉴를 설명해준 친절하고 다정한 엔젤에게 "Keep the change!" 하며 팁을 남기고 온 곳. (80유로)
식당 이름에 egg가 있듯 에그베네딕트 전문점이다. 기본 에그베네딕트를 고르고 다양한 종류의 옵션을 추가해서 먹는 식이다. 지금껏 먹어본 에그베네딕트 중 가장 맛있었다. 반숙 계란의 간은 적당히 담백했고 노른자가 츄르릅 하고 흘러내린다. 여기에 베이컨, 연어, 아보카도 옵션이 있다보니 짭조롬하게 간이 맞는다. 셋트는 에그베네딕트(한 종류의 옵션), 팬케이크, 과일바스켓, 오렌지주스, 커피가 포함되어 있다. 아이가 함께 하는 여행이라 음식을 3개씩 시키기엔 부담이고 2개는 또 부족할 수 있는데, 셋트 구성이 꽤 풍성해서 부족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음료를 주스 or 커피가 아닌, 주스&커피로 주는 점이 참 좋았다. (56 유로)
Auciel
파리에서 최고로 배불리 기분 좋게 먹은 음식. 훠궈다. 파리에서 꽤 오랜 시간 유학생활을 했던 친구에게 추천받은 식당. 여행의 마지막 날,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그리웠던 동양인들을 실컷 보며 배터지게 훠궈를 먹었다. 1인용 냄비 형태로 나오고 인당 가격이 책정되는 시스템이다. 탕을 고르고 난 후에는 모든 종류의 야채, 고기, 해산물, 완자, 면을 5번까지 시킬 수 있다. 텐션 조절을 잘 해서 먹어야 하는데 우리는 두번만에 배가 터질 것 같아서 스톱했다. (79.50 유로)
집밥 정말 많이 해먹었다. 계란간장밥, 된장시래기국, 씨리얼, 과일, 연어덮밥, 바게뜨, 그리고 라면까지. 숙소를 아파트호텔로 잡은 덕에 취사도구가 모두 있었고, 아침과 이따금 저녁도 숙소에서 해결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숙소 근처에 Monoprix라는 꽤 큰 마트가 있는데, 거의 매일 갔다. 트러플 오일, 바다소금 등 기본 양념을 이 마트에서 구비한 덕에 유럽여행 내내 잘 사용했다. 트러플 오일은 캐리어 여유 공간이 된다면 더 사올걸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와인을 더 마시고 왔어야 하는데, 크레페를 더 먹었어야 하는데, 꼬린내 나는 치즈도 한번 시도해봤어야 하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달팽이도 한번 뽑아주고 왔어야 하는데.
그 아쉬움 달랠 수 있는 기회가 또 올 것 같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