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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B Mar 25. 2024

흡연할 권리

담배 권장하는 사회, 죄악시하는 사회

베네치아에서 5시간동안 섬 곳곳 도보여행을 하고 나니 저녁 7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식당을 찾았다. 야외는 물론 실내석까지 현지인이 바글바글한 식당 Le Cafe가 눈에 띈다. 유럽 사람들은 야외 테라스석을 참 좋아한다. 특히 광장에 있거나 물가에 있는 식당은 실내석보다 야외석이 먼저 찬다.


식당 문 앞을 서성인지 한참이 지나 직원이 다가온다. 역시나 바쁜 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뒤 여기에 음식서빙, 저기선 카드결제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자리 안내를 받기까지 한참을 인내하고 기다려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베네치아의 아침, 오후, 저녁. 골목마다 개성 넘치고 시간마다 매력이 넘친다


온종일 돌바닥을 걸어다니느라 고생한 다리를 풀고 있는데 살랑거리는 바닷가 밤바람과 웬걸, 담배 냄새가 가득 몰려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테이블을 둘러싼 사방면의 모든 테이블에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커피에 티라미수를 먹으면서도 담배를 놓지 않는다. 


Le Cafe의 야외석. 날씨가 쌀쌀하지만, 담배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지만 야외석을 포기할 순 없다.
바다 위에서 식사하는 듯한 La Palanca의 야외석. 마찬가지로 아이 뒷자리에서도 흡연 중


유아차를 밀고 있는 엄마도, 유치원 앞에서 손주의 하원을 기다리는 할머니도, 학생들을 인솔해 답사 중인 선생님도 손에 담배를 쥐고 있다. 미술관이나 유적지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들어가야 하는데,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라이터와 담배를 꺼내 올린다. 그런데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대박.


식당이나 카페의 테라스석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재떨이를 준다. 아기나 어린아이가 있어도 그 누구도 개의치 않고 담배를 태운다. 입으로 밥을 먹고 코로 담배연기를 마시는 식사라니. 담배 때문에 탁 트인 전경을 놓칠 수는 없어 굳이 굳이 테라스석을 고집해 앉는다.


파리에서는 담배를 태우는 여성이 특히나 많이 눈에 띄었는데 지금 밤바람을 맞으며 식사 중인 베네치아의 이 식당도 우리를 둘러싼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모두 여성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OECD 가입 국가의 연간 성별 흡연율을 조사한 지표를 보니 느낌만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최신 데이터인 2021년 기준 프랑스의 여성 흡연율은 23.0% 남성은 27.8%다. 이탈리아는 여성이 15.5%, 남성이 23.1%, 영국은 이들보다는 조금 낮은 여성 11.7%, 남성 13.7%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남성 흡연율 26.3%, 여성 흡연율 4.5%다. 


유럽 국가도 남성 흡연율이 여성보다 높았지만, 우리나라의 남녀간 흡연율 격차만큼 다이나믹하지는 않다. 프랑스는 남녀 간 흡연율 차이가 4.8%포인트에 불과한데, 우리나라는 21.8%포인트에 달하니 말이다. 



예전에 어느 기사에서 봤는데 한 미국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방문기를 유튜브에 올렸다. 그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한국'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맨슨은 한국 사회의 우울증 원인을 유교와 자본주의에서 찾았다. 그는 “슬프게도 한국은 유교의 가장 나쁜 부분인 수치심과 남을 판단하는 부분을 극대화하는 반면, 가족이나 지역 사회와의 친밀감을 저버렸다”며 “한편 그들은 자본주의의 최악의 단면인 현란한 물질주의와 돈벌이에 대한 집착을 강조하는 반면 가장 좋은 부분인 자기 표현과 개인주의는 무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충되는 가치관이 엄청난 스트레스와 절망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 출처: 美작가 “세계서 가장 우울한 한국, 유교와 자본주의 단점만…희망은”


한국은 유교의 단점과 자본주의의 단점들만 흡수했다는 분석인데, 어느 정도 정곡을 찌른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내 주변만 보더라도 여전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저 여자 담배 피나봐" "여자는 운전을 하면 안돼" "여자가 무슨 술을 이리도 많이 마셔" 여성의 흡연, 음주, 운전에 대해 대놓고 비난하진 않더라도 흘깃, 시선을 돌리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술이야 이제 남녀 가리지 않고 즐기는 기호식품이 되었다고 하나, 특히나 흡연에 대해서는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한국 여성의 흡연율 4.5%는 현실이 얼마나 반영됐을까. 숨어서 담배를 태우는 여성이 여전히 있을테니. 그래서 내 눈에 유럽 여성들의 흡연이 더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 내내 매끼니 술과 함께라. 이 아름다운 바다와 스프릿츠의 조합이라니!




흡연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선 흡연자의 권리보다 비흡연자의 권리가 우선시된다. 학교나 병원 근처는 물론 큰 건물 근처는 지정된 장소 외 흡연이 금지된다. 담배꽁초 버리는 것도 감시하는 파파라치가 있을 정도고, 길을 걸으며 담배를 태우는 소위 ‘길빵’도 지탄 받는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더더욱 담배를 태울 곳이 줄어든다. 분리수거장 근처나 놀이터 구석에서 숨어 담배를 태운다. 


공익 광고로 숱하게 보는 것도 금연 광고다. 오죽하면 아이도 일곱 살 때부터 “나는 노담” "노담하세요"를 입에 달고 다녔다. (어찌보면 참으로 성공한 슬로건) 이 정도면 흡연이 죄악시되는 분위기 아닌지.


로마에서 만난 가이드 선생님에게 여기는 왜 이렇게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많냐고 물었다.


“개인의 흡연할 권리와 나라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의무가 충돌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흡연할 권리가 건강을 책임질 의무를 이긴 게 아닐까요”


건강은 개인 스스로 책임지라고, 국가가 개인의 흡연권까지 침해해 가며 건강을 책임질 수는 없다는 것. 정확한 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이 나라에 ‘흡연구역’이 지정되거나 ‘노담하세요’ 노래가 울려 퍼지면 군중들이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담배 연기마저도 미쟝센처럼 느껴지던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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