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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B Mar 23. 2024

오래 기억될 성당

파리의 작은 성당 ‘우리의 성모 기적의 메달 성당‘

어릴 적 교회를 다녔지만 무교에 가까운 상태로 삼십여년을 살았다. 그러다 작년 11월부터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권유한 것도 아니었고 순전히 자의였다. 아이 손을 잡고 둘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학교 생활에 힘들어하던 때였고 나 스스로도 그런 아이와 정신싸움 하는 것에 지쳐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추스리며 기도하고 싶었다. ‘우리 아이 조금만 단단해지게 해주세요’ 하고.


그렇게 나가게 된 동네 성당. 아이는 생각보다 성당을 좋아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놓치지 않고 보던 TV동물농장을 포기하고 성당엘 나갔다. 성당을 좋아한 이유가 여럿인데, 주일학교 선생님이 친절하고 다정하다는 것, 미사 중 제 이마에 안수기도를 해주시는 신부님의 손이 따뜻하다는 것.

“엄마,
학교에서 만난 어른은 차갑고 무서웠는데
성당에서 만난 어른은 따듯해”


이제 겨우 여덟 살 아이의 말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했다. 우리는 단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성당에 나갔다. 모태신앙으로 일찍이 세례를 받았으나 오랜 세월 냉담자로 살아온 베드로형제(남편)가 우리를 보며 성당에 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함께 성당을 다니고 있다.


화재 이후 복원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좌)이 곧은 직선의 고딕 양식을 대표한다면, 몽마르뜨 언덕 위 우아하게 서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둥근 비잔틴 양식을 대표한다

유럽 여행 일정을 짜며 가장 고민한 순간 중 하나가 미사 드릴 성당을 고르는 일이었다. 파리, 런던,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바티칸)… 지역마다 유명한 성당이 정말 많다보니 어디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고민이 됐다. (만약 내가 여행으로 서울을 방문했고, 딱 한번의 일요일이 있다면... 아마 나는 명동성당을 택했겠지)


파리에서 맞는 첫 일요일 어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까.

- 노트르담 대성당은 지난 2019년 화재로 인해 큰 공사를 몇 년째 하고 있어 갈 수 없다.

- 몽마르뜨 언덕 위 이슬람 궁전처럼 서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일정과 동선에 맞지 않는다.

- 영화 ‘레 미제라블‘, ‘디빈치코드’에도 등장하고 파리에서 두번째로 크고 오래된 성당이면서, 프랑스의 본초자오선이 있다는 생 쉴피스 성당은 어떨까? 엇 여기는 루브르로 이동하는데 동선까지 좋다! 안 갈 이유가 없다.


‘생 쉴피스 성당’. 빅토르 위고가 결혼식을 올린 성당이자 그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에도 등장하는 곳이다.


마음을 굳히고 동선에 맞춰 식당, 카페 정보까지 미리 안배했다. 근데 난데없이 처음 듣는 성당이 등장했다. 파리에 오래 산 적 있는 언니가 (파리 식당 예절을 가르쳐준 바로 그 언니가) 한 성당을 추천해준 것. ‘너 혹시 가톨릭 신자면 기적의 메달 성당에 가봐. 우리 엄마가 파리에 오면 꼭 거기서만 미사를 드리셨거든’.


우연의 일치인지 몽생미셸 수도원에서 만난 가이드 선생님도 파리에 유명한 성당들이 많지만 기적의 메달 성당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생각있으면 한번 가보라고 했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유명한 곳도 아닌 것 같은데? 심지어 규모도 무지 작은데 굳이 여기를…?


그렇게 여행 일정 중 첫 미사를 좁은 골목길에 있는 아주 작은 ‘우리의 성모,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 드렸다. 이 성당엔 성녀 카트리나의 애절한 기도를 들은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전설이 있다.


작은 성당이지만 제단 뒷편, 한 눈에 들어오는 웅장한 성모상이 자리잡고 있다. 측랑에도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들이 있다.

오전 8시 작은 예배당엔 미사 시작 전부터 사람이 가득했다. 자리가 여유롭지 않아 남편은 앞줄에, 나와 주원이는 바로 뒷줄에 떨어져 앉았다. 우리나라 성당에선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이곳에선 여전히 딱딱한 나무 발 받침대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미사를 집전하는 세 명의 신부님 중 한 분이 동양인이었고, 강론을 동양인 신부님이 불어로 하시길래 좀 신기했다.


성당에서 나눠준 주보는 불어로만 쓰여 있어 매일미사(성당에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를 켜두고 우리는 절차에 맞춰 기도문을 읽었다. 그런데 남편의 옆 자리에 앉은 여성분이 남편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주보를 해석해 주고, 독서(성경 낭독)를 영어로 번역해서 읽어주고, 성가 가사까지 읊어주고 있었다. 내향형인 남편은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하면서도 상대가 민망할까 떠듬떠듬 읽고 따라 불렀다.


미사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


미사 중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시간이 있는데, 앞뒤 양옆 주변에 앉은 분들께 두 손을 모으고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아이도 좋아하는 시간이다. 미사는 만국 공통의 절차로 진행되므로 파리의 성당에서도 똑같이 서로를 축복하며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주변분들께 불어로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몰라 'God Bless you'와 '평안을 빕니다' 하며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 남편 옆자리 여성분이 뒷자리에 있는 나와 아이를 보고 눈이 똥그래진다. 엄청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며 봉쥬르, 인사를 건낸다.


아이가 사크레쾨르 대성당 방명록에 남긴 글. 행복을 비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행운을 원한다고...?


미사가 끝나고 앞자리에 계셨던 여성분이 아이는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여행 중인지 등등을 물었다. 미사가 불어로 진행돼서 어려웠을텐데 괜찮았냐며 가족 모두 미사를 드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은 아이티 섬 옆에 있는 ‘마르티니크’라는 아주 작은 섬이 고향이고, 그 나라도 불어가 모국어고, 가족 모두 프랑스에 와서 살고 있다고 했다. 학생인 딸이 셋 있고 모두 음악을 하고 있는데, 각기 다른 나라 언어로 악기를 배우고 있다며 그 효과가 실로 좋다는 조언도 해줬다. 지금 여덟살 아이라면 적게는 3개국어에서 5개국어까지 배울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니 꼭 언어를 가르치라고 했다. (이 분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상냥하고 다정한 이 여성분은 '성당 성물방이 오전 9시에 여는데, 꼭 성모 메달을 사가라고, 이 곳이 아니면 구할 수 없으니 꼭 메달을 사가라'고 신신당부했다. 폭풍 같은 영어 대화 속에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노라, 반드시 메달을 사가겠노라 말하고 성당 구경을 이어갔다.


낯선 나라,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캡쳐해둔다


십자가 앞에 앉아 아이와 기도를 하고 있는데, 미사 때 강론을 하시던 동양인 신부님이 "한국분들 맞으셨군요!" 하며 다가온다. 세상에, 파리의 이 작은 성당에서 불어로 강론을 하던 분이 한국인이었다니! 신부님은 우리가 성당에 들어오는 걸 보면서 미사 마치고 꼭 인사를 나눠야지 하고 계셨단다. 본인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면서 파리에서 유학 중이고 근처 수도원에 있는데 얼마 전부터 좋은 기회로 보좌신부가 되어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고 하셨다.


"이 성당은 이름이 왜 '우리의 성모, 기적의 메달' 성당이에요? 우리는 동네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해서요"


“한국의 성당들은 지역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만의 특수성인 것 같아요. 보통은 성당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어요. 저희 성당은 성녀 카트리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던 적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어요. 노트르담 대성당의 노트르담도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에요"

"신부님은 어떻게 파리에 오게 되셨어요? 여기에서 쭉 수도 생활을 하실 계획이세요?"

"저는 3~4년 후면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요. 전주 교구로 갈 것 같은데, 들어가게 되면 꼭 한번 다시 미사에서 만나요"


성당 이름에 왜 '메달'이 들어가는지,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셨다면 어디에 나타나셨고 그 흔적이 남아 있는지 등 대문자 T 같은 궁금증이 샘솟았지만 더 묻지 못했다. 신부님이 아이 이마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여행기간 다치지 말라고, 안전하게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가라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란다고. 젊은 신부님은 자신의 한국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겠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한국에서도 다시 만나자고 했다. 타지에서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아이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시는 신부님


신부님과 헤어져 성당 밖으로 나왔는데 마르티니크 아주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포장지를 아이 손에 쥐어주며, 본인이 줄을 서서 성물방에서 메달을 샀다고, 아이가 여행 기간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앞으로 즐거운 인생을 살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놀랍고 고마워서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못 했다. 'Merci' 라는 단어 하나로 내 마음이 다 담기지 못하는 게 답답했다. 사진 한 장 함께 찍자는 말도 못 했고, 여행기간 중 소중한 인연을 만나면 주겠노라 싸온 조각보 복주머니도 챙겨오지 않은 것이 한탄스러웠다.


유럽 여행을 다니며 유명한 성당을 정말 많이 들렀다. 이탈리아에서는 성당의 가치를 판단할 때, 얼마나 유명한 그림, 조각상, 성유물을 보유, 보존하고 있는가, 어떤 이의 무덤이 있는가가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바티칸에서 들린 성 베드로 성당보다, 예수님이 태어난 말구유를 보존하고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보다, 파리의 이 작은 성당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유명한 그림이나 조각상 하나 없었던 이 소박한 성당에서 왠지 하느님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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