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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B Mar 20. 2024

파리의 식당에서 느낀 것

식당 직원은 바쁘다, 생각보다 꽤 많이

파리에 가기 전 교통 패스를 어떤 것으로 끊을까 고민하다가 파리에 오래 살았던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 나 나비고 위클리를 끊을까, 위켄드를 끊을까. 뭐가 더 절약이 될까?’ '내 생각엔 어차피 머무르는 일정이 목금토일/월화수니까 2주치 나비고 위클리를 끊는 게 좋을 것 같아. 위클리를 끊을 땐 비용 부담이 커보이는데 실질적으로 더 절약되는 부분이 있더라고. 1구를 벗어나더라도 부담이 없거든.'

교통 패스에 대한 상담을 한참 해주던 언니가 갑자기 궁서체로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단다.


파리에서 식당을 갔을 때,
네가 꼭 미리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언니는 파리의 식당에서 갖춰야 할 예절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번째, 식당 직원에게 안내를 받기 전에 먼저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 직원이 안내해 주기 전까지 식당 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면 서버가 와서 자리 안내를 도와줄 거라는 거였다. 오케이.


두번째,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면 충분히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면, 절대로 직원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 '응? 사장님~ 이모~ 저기요~ 를 하지 말고 어떻게 음식을 주문하라고?' 언니는 메뉴판을 덮고 직원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자, 우리는 주문할 준비가 되었어'라는 시그널을 보내면 된다고 했다.


파리에서의 첫 아침 식사 'Cafe Kleber'
**트로카데로역 근처에는 'cafe'로 시작하는 브런치집들이 정말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사를 하는 식당들인데, 아침시간대에 주문할 수 있는 브런치 메뉴가 있다. 우리는 'Cafe Kleber'에서 버터와 함께 제공되는 크루아상, 오믈렛, 버터를 바른 바게트, 음료로는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셋째, 대부분의 식당 아니 거의 모든 식당이 물을 주지 않고 판매하는데 네가 직접 싸간 물이 있더라도 테이블에 올려 마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외부 음식을 반입한 것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 가급적 그 식당에서 물을 시켜 먹거나 아니면 음료를 시켜 마시라고 했다. (오마이갓! 물을 주지 않는다니, 챙겨갔어도 또 사먹으라니...)


끝으로 식사가 끝나면 또다시 직원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라. 직원이 다가왔을 때 '라디씨옹 씰부쁠레'를 하라고 했다. 직원이 계산서를 가져오면 현금인지 카드인지 이야기하고, 또 다시 직원이 카드 단말기를 준비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산은 자리에서 하면 된다고.


이 식당 예절에 대해 교통권 상담보다도 3배 정도 긴 시간을 할애해 가며 설명해 줬다. 그들에겐 기본적인 예의인데 우리나라랑 차이가 크다 보니 거기서 (그들 입장에서의) 실례를 범하고, 존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한 직원이 잔돈을 던지는 등 기분 나쁜 티를 내고, 그러면 이를 인종차별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는 것.


파리에서 먹은 첫 점심 식사, 'Le Solferino'
**애피타이저로 입맛 돋우기에 좋다고 '엔젤'이 추천해 줘서 주문한 훈제연어. '와, 훈제를 한걸까 레몬에 담궜을까' 싶을 정도로 시고 짜서 못 다 먹었다 ㅎㅎ 프랑스에선 양파수프를 꼭 먹어보라는 추천에 맛본 어니언슾. 바게뜨와 먹기에 좋았다.


언니가 해준 얘기를 정말 명심 또 명심하고 갔다. 우리는 식당에 가면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누른 채 문 앞을 서성이며 기다렸고, 직원은 환한 얼굴로 나와 우리에게 몇 명인지, 야외석을 원하는지 실내석을 원하는지, 식사를 위해 왔는지 카페를 위해 왔는지 등을 물었다.


메뉴판을 받고 주문을 할 때도 손을 들고 부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열심히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오르세미술관 근처 'Le Solferino'라는 식당에서 만난, 본인 이름을 '엔젤'이라 소개한 담당직원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메뉴판이 얼마나 정성 가득한지를 설명하며, 이 음식은 ‘홍합’이라며 직접 홍합을 가져와 보여주거나 이 음식은 훈제연어인데 애피타이저로 제격이라는 등 불어로 쓰인 식재료들을 하나씩 주방에서 가져 나와 보여주며 설명해 줬다. 불어를 모르는 우리가 메뉴 선정에 실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Eggs&co.'라는 식당의 직원은 주문을 위해, 계산서를 위해 눈맞춤을 시도하면 무려 윙크를 날리며 다가왔는데(!!) 그 직원은 우리가 오렌지주스와 애피타이저를 다 먹으면 눈치를 보다가 에그베네딕트를 내어주고, 다 먹었는지 살피다 팬케이크와 과일 바스켓을 내어줬다. 우리 테이블의 식사 순서를 꼼꼼하게 살피며 'care' 해주고 있었다.


에그 베네딕트가 환상적이었던 'Eggs&Co.'


직원들은 바쁘다. 식당에 방문한 손님들을 자리를 안내하고, 테이블을 세팅하며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손님이 주문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문을 받고, 프랑스식 식사 순서에 맞게 전식-본식-본식 2-디저트와 커피 순으로 서빙을 해준다. 손님이 식사를 마칠 때가 되면 영수증을 준비해 주고, 현금인지 카드인지 물으며, 카드라고 하면 단말기를 가져와 결제한다.


모든 식당에서 코스에 맞춰 음식을 시켜 먹을 수는 없어서 (그랬다면 끼니당 비용이 100유로씩은 나왔을 테니) 대체로 전식 한가지, 본식 두가지를 시켜 ‘모두 한 번에 올려주세요’ 또는 ‘share 할게요’라고 했는데, ‘퍼펙트!’라고 하며 완벽하게 수행해 줬다.


파리 식당에서 배운 에티켓이 직원과 나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을 보고, (아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 이 사람들 제법 정중한데?’라는 무언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런던과 이탈리아에서도 모두 이 예의를 갖췄다. 음식과 서비스에 대해 칭찬하면서 가급적 그 나라의 언어로 ‘Bill, please’ 라던지 ‘Il conto, per favore’라고 했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사랑한다는 파리 훠궈 전문점 'Auciel'. 따로 부탁을 드리지도 않았는데 직원분이 가족 사진을 찍어주셨다.


나중에 피렌체에서 만난 한 선생님이 이탈리아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팁도 주셨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인사하는 것,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눈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에티튜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눈 맞춤은 물론 ‘Grazie’와 ‘Prego’를 모든 말 끝에 붙였다. 그라찌에는 고맙다는 말이고, 쁘레고는 좋아, 괜찮아 라는 말인데 내가 그라찌에를 쓰면 상대는 나에게 쁘레고를, 상대가 나에게 그라찌에나 스쿠지(미안해)라고 하면 쁘레고로 응대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고맙든 미안하든 뭐라고 말을 건냈을 때 이에 대해 반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무례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전까지 손을 들고 '저기요' '사장님'하며 직원을 부르는 행동에 대해 실례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이 내 부름에 답할 준비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미리 살핀 적이 없었으니까. 주문이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에 ‘이모 소주 2병이요!’를 일단 외치고 본다던지, 식탁 옆구리 벨을 여러 번 누른다든지, 옆 테이블에서 그릇을 치우고 있는 직원에게 ‘저희 삼겹살 하나 더 추가해 주세요’하고 주문을 했던 것에 대해 이 주문을 받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파리 식당에서의 경험은 기다림에 답답한 순간도 많았지만, 식당에 입장한 순간부터 메뉴를 고르고 식사를 하는 모든 순간이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펍에서, 바에서 와인 한잔씩만 시키고 한두 시간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도 많았는데, 식당 주인이 그들에게 ‘안주를 왜 주문하지 않니’ ‘이제 좀 일어서주겠니’ 하고 눈치를 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수다를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사장님과 직원들이 손님들과 같이 대화를 나누고 요란스러운 손동작을 해가며 함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문화를 너무 아름답게만 칭송하는 것 같아 우리 문화에 대해서도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는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요즘 식당엔 음식을 주문하고 결제하는 포스기가 자리마다 비치되어 있거나 입구에 대형 키오스크를 두는 곳도 꽤 많이 생겼다. 빈자리가 생기면 빠르게 앉아야 하고 음식은 빠르게 서빙되어야 한다. 사장님은 테이블 회전율이 몇 회가 나왔느냐가 그날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이 테이블이 어느 정도 식사를 마쳤다 싶으면 ‘치워드릴까요’ 하고 식탁 위 빈접시들을 치운다. 요즘 식당들 중엔 식사 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정해 놓는 곳도 많다.


카페나 식당에 흔히 ‘1인 1메뉴’, ‘1인 1잔’이라는 문구를 보는데, 이건 반찬이 계속 리필되고 물이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인 것 같다. 유럽에선 반찬의 개념이 없고, 모든 음식에 값이 charge 되고, 물도 유료다. 또 유럽 식당들은 자릿세를 받거나, 서비스 차지를 10~20% 정도 받으며 음식값에 포함돼 있다.  


늘 시간에 쫓기고 마음이 급한 우리나라에서는 손님에게도 사장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특히나 오피스가의 점심시간은 직장인들로 가득해서 그런 여유가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부터 여유를 가지고 그들의 일을 존중한다면 식사 시간이 조금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파리에서의 음식은 그저 그랬다. 음식의 맛과 양은 한국 식당들이 정말 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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