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GA PEOPLE May 13. 2018

Call me by your name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정은 그저 '비현실'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영화는 132분으로 생각보다 길었고,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예측되지 않던 상태에서 봤을때 즉각적인 불편함을 주는 요소들도 많았다. 절반정도 봤을 때 쯤엔 '아 그러니까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지는 알겠고.. 정말 꿈같은 상황속에서 꿈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턴 약간은 무성의한 태도로 영화를 관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첫번째 관람평을 마무리하고도 이 영화의 여운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다. 계속 머릿속에 맴돌게 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내게 꽤나 인상적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참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한번 더 보러감)

여름, 이탈리아, 자전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이탈리아에 대한 로망을 품게 한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가 그랬다. 이탈리아라는 나라 자체를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 느껴지는 것은 고전이다. 지켜져야 하는 것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엘리오의 고백장면이다. 동상을 보호하는 원형의 울타리를 역방향으로 돌며 다시 만나는 순간이 영화가 가장 느릿느릿 움직이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 장면에선 나의 이탈리아 여행이 떠올랐는데, 이탈리아는 발길 닫는 어느 곳이든 미술관 같았다. 오래된 건축양식들.. 거리의 동상들... 걷다가 몇번이나 걸음을 멈추었는지 모른다. 정말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메울때쯤 이 영화는 정말 우월한 환경속의 로맨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쯤은 되야 좀 감정이 잡히나.. 

영화에선 시종일관 보기만 해도 더워보이는 공간에서 건장한 남자 둘이 짧은 반바지에 자전거를 그렇게나 타고 다닌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는 남자주인공이 그림을 복원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그 영화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좁은 골목과 오르막길들을 열심히 지나다니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 영화를 보고난 후부터 나는 자전거를 좋아하게 됐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멋있다. 비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말고, 정확히 말하자면 고물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실용적이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멋있다. 

조각상
고등학교때 입시미술을 준비하며 난 정말 아주 많은 석고상들을 다양한 각도로 그렸다. 그 땐 그게 일상이었다. 매일 똑같은 석고상들을 그리다보면 어쩔땐 다른 석고상들이 그리고 싶어진다, 그러다 급기야 그 석고상의 삶을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내가 그리고 있는 역사적인지 신화적인지 뭔지에 대한 인물의 이야기를 좀 알고 그려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여튼 그렇게 열심히 입시미술을 하고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시절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영화를 볼때 떠오르니까,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좋은 추억이다. 영화 첫부분부터 조각상들의 이미지들이 촤라라 계속 나오는데 나만 아는 이 익숙하고 친밀한 이미지가 나를 설레게 한다. '내가 비너스의 뱃살 좀 알지.., 신들의 미간과 콧등사이의 옆라인을 알지..'라며. 과거 미대입시 경험이 이럴 때 조금 쓸모있고, 남들이 알아주지도 못할 간사한 우월감을 느끼게 한다.ㅎ

책(글)
나 어릴때부터 확실히 이상한 미친 감성이 짙던 사람이 맞다. 그림을 그려서 그런가 만화책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이런 내 감성을 아무도 몰라줄거라며 학창시절을 보내왔는데 막상 먹고살아야 하는 일에 부딪치다보니 그런 미친 감성들은 많이 내려놨다. 

영화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동물 다음에 식물, 식물 다음에는 광물로 넘어갈 거냐고.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그림 다음에 사진, 사진 다음에는 책(글)으로 넘어갈거냐고. 
이 세가지 모두의 공통점은 나의 미친감성적 표현수단 방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찾았던 일이 사진이었다. 셔터 한번 누름으로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진의 이미지는 빠른 현대를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수단이 됐다. 하지만 혼자 하는걸 좋아하는 나에게 사진은 너무 여러가지 장애 요소가 많다. 사진은 나 한사람 말고도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러다보니 개인의 주관적 느낌보다 그 날의 온도, 빛, 상황에 따라 더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하나의 피사체를 놓고 누구나 비슷한 이미지를 찍을 수 있고, 그 결과물도 그렇게 큰 차이가 난다고 보기 어렵다.(개인적 생각이지만) 그렇기에 문턱은 너무나 쉽고, 즉각적이라는 점이 실용적이긴 하나 그 점이 되려 어떤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편리함은 있지만 진득함이 없다. 내가 사진보다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이 즉각적이지 않아서이다. 그림은 본연히 작가의 느낌이 더 극대화되어 분명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림은 사진보다 더 많이 작가의 은밀하고도 주관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하지만 그림은 단편적이다. 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은 매우 자극적이며, 다른 매체들에 비해 추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추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움직이는 여러장수의 애니메이션 보다는 기교없는 정성스러운 터치들이 모여있는 한장의 이미지를 선호하는 것과, 잘 그려진 한장의 이미지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만화책을 좋아했던 뚜렷한 취향을 지니고 있는 지금의 내가- 그 다음으로 좋아하게 된 것이 책이다. 어릴땐 책에 잘 집중하지 못했다. 워낙 상식이 없는 나에게 일상적인 문체들이 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쉽사리 한줄한줄 읽어내려가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허나 지금은 예전보단 낫다, 어쩌면 책을 쓰는 작가들과 연배가 비슷해지다보니 어릴때에 비해 훨씬 더 금방금방 책장을 넘길수 있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종 글을 이미지화 해본다. 활자가 아닌 이미지로서의 글. 매력적인 것은 책 한페이지를 한장의 이미지로 보았을 때 이것의 감정이 들춰지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글은 천천히 살펴봐야 느낄수 있다. 읽다보면 글쓴이가 어떤 말을 주로 습관처럼 하는지, 가치관이 어떤지가 고스란히 발가벗겨진 채로 드러난다. 하나하나에 실린 철학을 느끼게 된다. 누구나 말을 하고 글씨를 쓸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정신세계를 객관화된 표현수단의 방법, 글을 이용 할 수 있다. 그림과 사진처럼 환경적인 제약이 따르지 않는.. 좀 더 가볍고, 유니크한 감정표현의 도구인 것 같아 글을 좋아하고 책 읽는걸 좋아하게 됐다. 글은 일상에 늘 존재하고 아무나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공평함을 지녔지만 아무나 그것을 잘 사용하진 못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책읽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글을 쓰고 고치는 장면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선글라스
올 여름엔 완벽하게 맘에 드는 선글라스 2개를 더 사고야 말겠다는 계획이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문제다.

Timothee Chalamet_티모시 샬라메
굳이 말하자면 옆모습은 확실히 그림처럼 아름답다. 어눌한 말투와 눈풀림, 
웃을 때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좀 재수없는 표정은 좋다고 말하기 뭐한데 계속 생각이 난대나 뭐래나.
영화에서 보면 진짜 170도 안될것 같은 이미지인데 상대역이 너무 커서 더 그래보였던 것 같다.
182라 일단 합격. (내가 뭔데ㅋㅋㅋ 티모시 샬라메 팬님들 죄송합니다..)

담배
영화<콜롬버스>만큼 담배가 많은 역할을 차지한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나오긴 한다. 담배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속에 나오는 담배들은 왠지 좀 다 멋있다. 역시 담배도 잘생긴 사람이 피면 괜찮은 건지.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니까, 나도 그저 격없이 솔직하게 있어보이는 것들만을 생각하며 영화의 평을 마무리 짓는다...ㄷㄷㄷ

OST 
너무 좋아여!

내용도 적당히 좋았지만 그보다는 1차원적인 매력이 넘치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컴퓨터를 켜는게 그렇게 싫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