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GA PEOPLE Apr 17. 2018

금토일월화

미루고 밀리는 인생의 연속중에

한량에게는 꽤나 버거운 '금토일월'이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늙었고, 얼마나 많이 몸을 사리고 있는지,
이제 웬만한 것들을 감당하거나 거침없이 달려들기에 앞서 한없이 고뇌하며 주저하기를 반복하는,
노인이 된 듯한.. 아니 아직 아니라고 해도 곧 될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찼던, 시간들이었다.

금요일.
무엇이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요일부터 몸이 좋지 않아 가기로 마음먹었던 레드클래스를 뒤로 미뤄버렸다.
그리고 나는 무얼했나,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왜 지난 시간들은 이리도 빨리 기억에서 지워지는지, 이것도 노화현상이라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써본다. 금요일 저녁 수업이 끝나고는 요가원 친구들과 수련이를 불러내서 맥주 한잔을 하고, 돌아오는 길엔 심야영화를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올때 쯤이 4시였나.. 비가 내렸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집까지 걸어가기엔 추워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 할 것 같았다. 불금 홍대의 새벽 4시, 왜 연희동까지 가주는 택시는 그리도 없는지. 걷기엔 춥고, 기다리기엔 모두 나를 거부하는 힘겨운 상황속에서.. 택시 하나가 잡히긴 했다. 그렇게 늦은 새벽 다행히 난 집으로 귀가 할 수 있었다고.

토요일.
몇시간 뒤 맞이한 토요일 아침수업, 금요일 밤은 피곤해서 씻지도 않고 잠을 청했다. 그게 이유였는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토요일 아침이었고, 다시 나갈 채비를 준비하고 정신을 차려본다. 어젯밤 조금 내리던 비는 오전중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나의 희망을 뒤로 하고.. 집 밖을 나설때까지 추적추적 그칠 기미없이, 매섭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이게 내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서도, 하루중 반나절이 지나서도 말이다. 전부터 약속했던 친구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는 토요일. 비가 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내가 추우면 예민해지는 성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건만, 나는 왜 달랑 외투 한장 걸치고 밖으로 나왔나. 오락가락하는 이 4월의 날씨는 정말이지 화가 나지만, 마구 화가 나면서도 이 예상밖의 날씨의 변화들에 대해 이 쯤이면 되려 적응을 할 만도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날씨로 인해 울화가 치밀지 않는다면야 그게 어쩌면 더 이상한 일일지도.
어쨌든, 긴 시간을 새로 사귄 친구와 오래 같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나와 맞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같이 있으면 편한 사람, 같이 있으면 졸린 사람, 편했다가도 불편해지는 사람 등. 사람과 사람이 친밀해지는 과정등을 상상해보았다. 모두 흥미로운 주제들인데, 요즘은 나 자체도 흥미롭다.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많이 바뀌어서.. 나란 인간이 관계속에서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 퇴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내 인생도 나이를 먹고 새로운 계절이 오나, 싶기도 하지만 계절은 1년의 주기로 반복되어 돌아오는 것이고, 시기는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나의 유년기, 청년기는 이미 모두 고정되어 있는 시간들이고, 나는 이제 새로운 장년기의 문을 열었다.

일요일, 아쉬탕가 워크샵 4주차.
조금 한가로운 주말이었다면 오전에 센터로 나가서 보람이도 좀 보고.. 했어야 했겠지만, 충분한 휴식 없이 워크샵을 듣다가 집중력이 바닥을 칠 것 같아 2시에 딱 맞춰 서울숲으로 갔다. 다행히도 오전의 휴식이 도움이 됐는지 워크샵 중에는 예상보다 그리 많이 힘들진 않았다. 6시쯤 워크샵이 끝나고는 집으로 돌아가 꽃집일을 할 예정이었다. 쉬기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방청소도 하고.. 해야했겠지만.. 돌아가는 길에 선생님께 연락이 와서 밥한끼 하자는 부름을 받고, 다시 센터로 되돌아갔다. 나는 관계속에서 나름의 호불호가 분명한 편인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어찌되도 좋다 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날은 내게도 꽤 힘든 날이었지만 그 보다는 좋아하는 선생님과 오랜만에 밥 한끼 먹는게 더 중요한 일이니까. 밥한끼 하며 맥주 한두잔 하던게 이어져서 다른 선생님까지 부르게 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추억속에 사로잡혀 셋이서 참 많은 이야기들을 토로했다. 그 시간만큼은 셋이서 꽤나 공동체적인 연결을 갖았고, 결국 이야기는 차가 끊길 시간을 넘어서..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한시쯤 되었을까. 당연히 꽃집일은 못했고.. 씻지도 않고 침대에 드리 누웠지.

월요일.
평소대로라면 상쾌한 주말을 뒤로 하고, 말끔해야 하는 한 주의 시작인데. 이번주는 피로의 중첩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표현이 맞다. 정리정돈 안된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쉬지 않고서는(충전하지 않고서는) 방전된 에너지를 채울 길이 없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고, 밀려오는 졸음을 감당하지 못 한채 눈을 붙였다. 설잠도 아닌,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한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정말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움찔하며 깨어난 순간은 이게 지금 어디인지도, 다음 수업이 몇시인지도, 아침인지 저녁인지 파악이 안될 정도로 제 정신은 아니었다. 현재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족히 한 2분은 걸린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는 어버이날 상품으로 판매될 꽃 사진들을 정리했고, 다시 조금 한산한 정신상태로 되 돌아왔다. 지금 당장에 할일이 밀리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정신이 조금 온전해졌다.(곧 저녁수업이 시작되겠지만) 가까스로 저녁수업을 마무리 짓고 나니, 또 휴식이 필요한 시간들의 향연.

화요일 오전 7시 반 수업.
결국은 요가원에서 잤다! 정말 이런 일은 자주 만들고 싶지 않다. 일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를 생각하면 일보다 내가 먼저인데. 집 놔두고 요가원에서 쪽잠을 청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일이니ㅠㅜ 그렇게 밤바람 맞으며 연희동으로 이동하지 않고 왔다갔다 움직이는 시간을 모두다 잠으로 변환시키니 훨씬 살만한 화요일입니다.
지금부터가 한 주의 시작 같다고.

최종.
나의 이런 피로함을 토로하는 글들에 대하여, 회원들이나 나와 이 시간들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눈치를 아니 볼 수 없다. 하지만 실상은 그저 글은 글일 뿐이고, 객관적이건 주관적이건 내뱉으며 쏟아내며 정신차리지 못한 시간들을 이렇게나마 기록하고 정리하고 매듭지으며 간직하고 싶다. 피로함을 견뎌 낼 정도로 좋았던 순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좋아하는 나의 일에 대해.
바라지않고, 원망하지 않으며, 매 순간 감사한 것들이 쌓이면, 지금처럼 늘 모든게 곁에 있어줄까.
우리도 끈덕진 관계로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이 글을 쓰겠다고 오전 11시까지 가려던 수련을 오후 2시로 다시 뒤로 미룹니다, 미루고 밀리는 인생의 연속중에)

작가의 이전글 Pratyahara_프라티야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