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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PEOPLE Apr 28. 2018

돌아온 외장하드

과거 회상적 인간의 외장하드 탐험기

한달 전인가, 갑작스레 외장하드가 열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전에도 그런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사진일을 더 많이 하고 있던터라 당연하게 하드를 복구 할 수 밖에 없었고, 10만원도 안되던 외장하드의 복구비용이 40만원 정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그렇게 백업의 중요성을 돈을 주고 배웠다. 그래서 다음 하드를 바꿀 때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AS가 되는 녀석을 꼼꼼히 골라 구입하였는데.. 몇달 전 '또 일어날까 싶은 일'이 발생한거다. 그 다음 외장하드도 고장! 차분한 마음으로 AS센터에 연락해서 진행절차를 밟았다. 안내해주시는 분께서는 내 외장하드가 네덜란드 어딘가로 보내져서 복구가 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대략 한달이 좀 넘게 걸린다고 말씀해 주셨다. 시간이야 어찌되었든 복구만 된다면야, 돈만 안든다면야..!!

그렇게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외장하드가 어제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지나칠 정도의 과거 회상적 인간
이제 좀 인정할까, 내 외장하드엔 정확히 2003년부터 시작해서 현재 2018년까지- 자그마치 16년간의 모든 사진이 차곡차곡 빼곡하게 잘도 저장되어 있다. 사진정리를 잘해서 사진일을 하게 됐을까,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정리를 잘하게 됐을까. 몇차례 하드를 교체해야 할 일들도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자료는 복제가 되었지, 어딘가로 날라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진은 대략 2종류로 나뉜다. 일을 하기 전의 사진들과 일을 시작한 후의 사진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이 중요해서 늘 이렇게 데이터를 복구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남기고 싶은 이미지가 뭘까, 하드가 돌아오면 꼭 언젠가는 이 놈의 엄청나게 방대한 사진들을 정리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실 속의 일들이 많아지면 그런건 늘 안중에도 없이 뒤로 밀린다.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좋은 사진가가 되고 싶다.사진집을 내거나 전시같은 것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는 현재로서는 아직 먼 이야기 같지만.. 
돌아온 외장하드 안의 첫 이미지들을 살피며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처음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 외장하드에서 가장 어린 처음 시작의 나. 나의 과거는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고, 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또 누군가를 아프게 할 능력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나는 모든 것을 비워낼 의지가 없다.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아도 나는 그저 나일테고, 모든것이 변한다해도 내겐 늘 불변의 법칙처럼, 내가 가장 중요하겠지. 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시간들이 중요하겠지. 




2003년.
어릴때부터 그렇게 남자애 같았다. 이 때만해도 참 안쳐주던 생김새였는데.. 이렇게 생긴 얼굴은 다 쌍커풀 수술을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던 시절이었다. 우리언니도 했고, 우리엄마도 내게 해주겠다던 때였으니까. 아마 엄마가 돈을 쥐어주며 적극적이게 권장했다면 지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외커풀도 살만한 세상이다. 어릴때부터 한번도 스스로를 여성스럽게 여겨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지지 않기위해 남자애처럼 굴었나몰라, 뭐가 됐든 완성도는 중요하니까. 어릴 때는 어른이 되는게 무서웠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없을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은 것도 세상에 없을거고, 결혼도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지금까지 살아본 결과로- 생각보다 연애도 좀 해보고, 생각보다 돈도 조금 벌어봤다. 생각했던 것 처럼 결혼은 못했지만ㅎ



코도 뚫었다니.
코가 뚫린 몇개의 사진들이 더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것만 꺼내보려 한다. 외장하드의 사진들을 살펴보면 '도대체 왜 이런사진들이 아직도 여기에 남아 서식하고 있는거야' 하는 사진들이 보인다. 그럴때마다 종종 휴지통에 버리곤 하는데.. 이상하게 어디서 자꾸만 다시 나온다.. 이곳저곳에 복제 해 놓은 파일들인것 같다. 매번 사진을 지울 때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떠오르곤 한다. 기억의 연결고리인 사진을 지워버리면 내 기억도 다음해엔 새롭게 조작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사진을 지우는 행위가 현실을 왜곡시키는것 같아 선뜻 휴지통이 비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상한 믿음이 또 하나 있어서.. '버려야 새것이 온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총량이 변하지 않는 다는 믿음.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용량을 남겨둬야 할 것 같다. 저장공간이 부족하면 컴퓨터도 안돌아갈 판에 나라고 별 수 있나, 좋은기억이건 나쁜기억이건 비워낼 때가오면 비워둬야지. 내가 이 방대한 사진들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를 하게 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늘 매일 밤 이렇게 일기를 쓰고 싶을 뿐이다.

_과거 회상적 인간의 외장하드 탐험기, 16년이면 꽤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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