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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 Jan 23. 2024

아 맞다, 나 불행해야되는데 행복 할 뻔했네

경계성 성격 장애 가족입니다.



코 끝 시린 12월 추운 날씨에도

겨울이 기다려 지는 이유는 단연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흥얼거림을 불러 일으킬 만한 캐롤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만나면 너무나 반가운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

함께 모여 앉아 한 해에 감사함,

다가올 새해에 대한 바람들을 주고 받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선물을 열어보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생각할 수 도 있겠다.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크리스마스에 갈 곳이 없을까바

미리 발레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공연을 예매해 두었었다.

만날 가족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크리스마스는 감사하게도

아이 친구 가족의 초대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아이와 함께 친구들 선물을 고르고

서투른 글로 카드를 쓰고

남편이 좋아하는 와인과 함께

식사 후 함께 할 달콤한 아이스크림도 넉넉히 챙겨

아이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봄이 가족 HAPPY CHRISTMAS!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삐뚤빼뚤하게

손수 그리고 오린 가렌드가 감사하게 걸려있었고,

우리 가족과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반기는 것 같았다.


"언니 시키라니까 뭘 이렇게 했어요!!"


"요리한건 아무것도 없고 데우기만 했어요~

 밀키트가 잘되있어서 ㅎㅎ

 뱅쇼도 밀키트가 있더라고요

 분위기 좀 내봤어요 드세용 ~ 드세용~"


"언니, 원래 평소에도 이렇게 커트러리

  예쁜거 쓰시고 식탁매트도 이렇게 예쁜거 쓰시는거 맞죠?"


"ㅎㅎ 저 오늘 이 숟가락 처음 보는데요 ㅎㅎ"


아이 친구 아빠가 이야기 하셨다.

파티 준비를 하면서도 즐거웠다고

언제 오나 기다렸다고

한껏 친구 가족도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기대 하고 있었나 보다.  


웃음과 따스함으로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식사 후 조용히 방에 들어가더니

킥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짝이는 머리띠와 공주 장갑을 끼고

보석처럼 빛나는 스티커를

얼굴에 한껏 꾸미고 공연을 기대 하라고 했다.


' 흰 눈이 기쁨되는 날~

  흰 눈이 미소되는 날~

  흰 눈이 꽃잎처럼 내려와

  우리의 사랑 축복해~'

사랑스러운 노래와 흐느적거리는 율동으로

우리는 모두 그 공간을 웃음으로 채우고 있었다.


너무 감사한 행복이라

아이를 보는데 눈물이 울컥했다.

또 주책이네 또 주책이야,

마음 속으로 울컥임을 다스리고

다시 어른들과의 대화를 나누려던 참이였다.


엄마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어디니?, 할 것 없으면 놀러오렴.]


엄마는 식당에 계실 터였다.

연휴에도 쉬지 않고 식당을 여실 것이라 하여

매번 나는 연휴 보다 한 주 이른 연휴에 찾아 뵙곤 했다.


[엄마, 오늘 손님 없으면 일찍 들어가서 쉬어

 봄이 친구네 초대 받아서 식사하고 있어]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야하나 고민도 되었고

너만 놀고 있냐고

비난이 날아올까 두려웠다.


[봄이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엄마 카드로 사주렴]


[엄마, 이미 지난주에

 크리스마스 선물 받았잖아, 고마워]


엄마에게는 식당이 중요하기에

식당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기에

아이 선물은 엄마 카드로 사서 보내 놓았었다.  

미리 할머니가 아니 엄마가 준비한 선물을 받고

여섯살 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그건 약하지, 그리고 장난감 그만사]


[재미나게 시간 보내는데

 방해될가싶어 전화 안한다.

 즐겁고 건강하게 살으렴 ]


마지막 연락을 받고

한참 그 문장을 쳐다 봤다.


[재미나게 시간보내는데

 방해될가싶어 전화 안한다.

 즐겁고 건강하게 살으렴]


읽고 또 읽었다.

무슨 뜻일까?

읽고 또 읽었다.

무슨 뜻일까?


나는 이렇게 장사하느냐고

혼자 쓸쓸하게 식당에서 우두커니 있는데

너희들만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너희들만 행복해 보이는구나

너만 행복해 보이는구나

너 지금 행복하구나

아 나 지금 행복하구나

아 맞다. 나 행복하구나

울컥할정도로 행복했네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했네

나 불행해야 하는데 행복하네

잊고있었네 나 불행해야 하는데

아 맞다 나 불행해야하지

너무 행복했네 어떻하지

나 불행 해야 하는데


파티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전화 안한다' 는 문장에서

너와 연결되고 싶어,

너와 함께하고 싶어,

너와 통화하고 싶어,


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통화 후 엄마의 뾰족했던 마음은

둥글동글하게 안정된 것 같아 보였다.


크리스마스, 설날, 추석, 어버이날, 어린이날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연락은


[봄이 친구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구나

 맛있는 것 먹고 재밌게 놀고 조심히 들어가렴]


너 행복해 보이네,

그래 충분히 행복함 즐기고 들어가서 쉬렴

다른 이유 없이, 자격 없이

넌 충분히 행복해도 된다는

엄마의 표현이었을거라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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