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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Jul 04. 2024

일기 쓰듯이 (4)

240704

밖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한여름이다. 한 몸을 불살라 자신의 존재를 한껏 자랑하던 태양의 기세가 꺾이고, 수평선 너머로 넘어갈 때, 하늘이 점점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걸 감상하며 한강 위의 다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와 같이 퇴근길의 여유를 즐기며 산책하는 이, 팔로 서로의 허리를 감고 나란히 걸어가는 연인,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더위에 지지 않으려는 듯이 힘차게 달려 나가는 러너, 그들 너머로 보이는 석양까지. 이것이야말로 아주 멋진 여름 저녁의 풍경이다. 생각하며 핸드폰 카메라 앱을 켰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본 장면을 담아냈다.


그러다 문득, 슬픈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에는 이 장면을 잊지 않기 위해 꼭 기록해야겠다, 다짐하며 돌아가자마자 문장을 써 내려갔던 것 같은데. 하다 못해 늘 소지하는 메모장에라도 몇몇 단어를 썼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이. 글을 쓰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편하다. 사람들에게 좋은 글, 메시지를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완벽한 문장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고민하지 않으니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일이 끝나면 그날의 일과도 거진 끝난다고 생각한 지 오래. 방의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듯이 나의 사고회로도 그러한 모양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사고방식, 가치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점차 납작해지는 것만 같다. 다각과 다선을 가져 어떠한 형체를 이루는 게 아니라, 납작해지고 납작해져 이러다가는 일직선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글쓰기에도 근육이 있어, 언니.”


시 쓰기를 멈추게 될까 두려워 퇴근하면 곧장 책상 앞에 앉아 잠들기 직전까지 시상을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나의 친구가 떠올랐다. 오늘은 산책 후 어떤 문장이라도 써볼까,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납작한 나의 선이 조금씩 켜켜이 쌓이면 어떠한 다면체라도 이루지 않을까.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짐이 집으로 향하는 동안 희석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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