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느 Nov 14. 2024

나의 첫 클라이밍

슬로우라이팅클럽(SWC) 1기


2021년 8월, 장마 기간의 한가운데에 있던 어느 토요일 아침.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비 예보가 있는 날이면 약속을 잡지 않거나 파투를 내기 일쑤인 나는 그날은 예외적으로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선유도로 향했다. 친구의 제안으로 클라이밍 일일 강습을 듣기로 약속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더위와 비가 만나 습하고 땀이 났지만, 어쩐 일인지 불쾌하지 않았다. 이제껏 해보지 않은 다른 유형의 모험을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무척 떨려 하면서 물웅덩이에 발이 젖어도 개의치 않고 길을 걸었다.


암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동안 했던 운동이라고는 헬스장이나 공원에서의 달리기, 집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며 따라 했던 홈트레이닝 정도였기에 길게 뻗은 벽, 그것도 한껏 기울어진 벽 또는 판판한 벽에 갖가지 모양과 형형색색의 홀드가 붙어 있는 모습을 보자 모든 것이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동시에 걱정 또한 앞서기 시작했다. 저 돌을 내가 잡고 꼭대기까지 오른다고? 내 손바닥만 한 돌이 과연 내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까? 오르다가 돌 뽀개지는 거 아닌가? 못 잡으면 곧장 떨어지는데 잘못 떨어져서 어딘가 부러지면 어떡하지? 먼저 일일 강습을 여러 번 수강해 클라이밍 경험이 있는 친구는 잘할 수 있다며 나를 다독여주었지만, 아주 잠깐 도망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강습 시간이 되어 체험을 진행해 줄 강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말 시작이구나, 여기까지 왔는데 해보자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떨리는 손으로 대여용 초크백을 받아 들었다.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낙법, 클라이밍 자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삼지점, 인사이드-아웃사이드 스텝, 루트 파인딩 하는 법을 배웠다. 40분가량의 강습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후 강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문제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그새 운동하러 온 사람이 많아져 암장 분위기가 더욱 활기차졌다. 많은 사람으로 인해 조금은 정신없었지만, 클라이밍 초보자인 내게는 오히려 좋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힘을 아끼며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고 완등해 나가는 클라이밍 표본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해도 내 몸은 머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홀드를 잡고 디디고 싶었지만, 몸 이곳저곳이 비명을 질렀다. 특히 팔뚝과 엉덩이, 허벅지가 매우 아팠다. 이 위치에도 근육이 있음을 깨달았던 날. 전완근이라고 하는 부분이 딱딱해지고 조금 부푼 것처럼 느껴질 때쯤, 친구가 이제 그만 점심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그 순간만큼은 친구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느껴졌다.


처음 접하는 운동이어서 몸이 정말 힘든데 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계속 굴렸던지라, 다음날까지도 근육통으로 꽤 고생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낀 기억에 어느새 나는 암장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기초 강습을 듣고 싶다고, 몇 시 타임으로 등록할 수 있느냐고. 그렇게 클라이밍을 향한 지독한 짝사랑이 시작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친구의 목숨을 부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