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라이팅클럽(SWC) 1기
클라이밍을 시작하며 내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인간관계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날이면 큰 스트레스를 받아 집에 돌아가면 곧장 침대에 엎어지기 일쑤인 내가 암장에서는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 동작을 물어보고, 더 많은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클라이밍 모임까지 가입했다. 약 1년 정도 크루 활동을 하며 사람도 얻고 요령도 얻어 좋은 경험을 했지만, 내심 아쉬움이 있었다. 바로 ‘제발 내 홈짐 좀 와 주라!’ 하는 마음.
크루에 막 가입했을 무렵, 자주 받은 질문과 자주 들은 말이 있었다.
“시느 님은 홈짐이 어디세요?”
“아, 저 선유도역 근처 서울볼더스요!”
“헉, 매운 데 다니시는구나? 잘하시겠다~”
“......(제 실력은 처참한데용)”
나의 홈짐을 말하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른 문제를 풀러 갔다. 한번 서볼에서 같이 운동하시죠, 라고 말하면 ‘트레이닝 하러 가는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원정도 좋지만, 내가 주로 가는 곳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적극적으로 홈짐을 어필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 지면을 빌려 서울볼더스의 매력 포인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볼더링 맛집이다! 매운 암장이라고 소문난 것에는 짐작 가는 바가 있다. 나의 홈짐은 빨간색 테이프의 다소 쉬운 문제부터 보라색 테이프의 어려운 문제까지. 모든 문제를 ‘동작의 절묘함'에 초점을 두고 세팅한다는 특징이 있다. 클라이밍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삼지점부터 무게 중심 이동, 인사이드-아웃사이드, 힐 훅과 토 훅 기술을 모든 테이프의 문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암장이(그것도 계속 시도해도 다칠 것 같지 않게끔 노력하는) 수도권에서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만큼 종종 암장에서 부르짖곤 한다.
“초록색 테이프가 이 문제에 붙는 게 맞냐고요!”
둘째, 지구력과 트레이닝 맛집이다. 서울볼더스 선유도점은 크기가 큰 암장은 아니다. 하지만 지구력 벽 또한 볼더링 벽만큼 정말 알차게 채워져 있는 곳이다. 1층의 한구석에는 각도가 세지 않은 (세미) 스프레이 월이 있고, 2층에는 옆으로 긴 지구력 벽이 있다. 벽도 벽이지만, 문제가 특히나 재미있다. 여러 동작을 연습하게끔 출제된 문제를 한두 번 왕복했을 뿐인데 다음 날 근육통에 시달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고, 그 고통을 조금만 참아내면 나도 모르는 새에 힘이 길러져 있다. 실제로 하늘색 난이도의 문제를 풀었던 주에 그동안 힘이 되지 않아 낑낑거렸던 볼더링 문제를 해낸 적도 있다! 2층 지구력 벽 옆에는 다양한 모양의 행보드와 1kg부터 3kg까지의 덤벨, 5kg~15kg의 중량 원판도 구비돼 있다. 보기만 해도 괴롭지만, 친구와 함께 운동하면 여기가 바로 헬스장이다. 일일 이용료 2만 원에 볼더링과 지구력, 근력 운동까지.
이야, 헬스장 12개월권보다 더 싸다!
우리 같이 벌크업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셋째, 로컬 특유의 느낌이 낭낭한 정겨운 맛집과 카페가 암장 근처에 꽤 있다. 운동 후에는 뭘 해야 하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해야 하지 않나요. 여기에 맛있는 커피와 맥주, 막걸리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지 않은가. 서볼 바로 앞에는 쌀 호두과자와 카페라테 맛집인 카페와 멜론빵과 야키소바빵이 맛있는 일본식 베이커리, 소주를 부르는 수육 식당이 있고, 좀 더 나가면 막걸리와 더할 나위 없는 짝꿍 더덕순대국밥집, 여름의 맛 그 자체 콩국수 맛집이 있다. 따릉이를 타고 간다면 당산역의 족발 골목까지.
입맛대로 골라주신다면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넷째, 추억을 기꺼이 함께 쌓을 친절한 사람들, 강사님이 많다! 클라이머들은 다 상냥하고 좋은가? 싶을 정도로 나는 이곳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여기저기 여러 암장을 다니며 재밌고 다양한 문제를 맛봤지만, 결국에는 서울볼더스만을 ‘홈짐’으로 부르는 데는 이러한 연유에서인 것 같다. 남들과는 다른 특출한 점이 없어 안전한 길만 걷자, 튀지 말자며 그렇게 색깔 없이 살아가던 내게 때로는 도전하고 모험을 떠나도 된다고, 때로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모두가 응원해 준 장소여서. 그 결과가 또 퍽 나쁘지 않았기에. 그래서 이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누고 싶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여러분, 언젠가 나의 홈짐을 방문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