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스레터 #57
여러분의 가방엔 키링이 몇 개쯤 달려 있나요? 요즘 가방에 키링을 달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만큼 키링의 인기가 뜨거운데요. 그 수많은 키링 중에서도 ‘이것’을 보면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죠. 바로 홀드 모양 키링! ‘저 사람도 클라이머네? 어느 암장 다닐까? 지금 암장 가는 길일까?’ 하며 내적 친밀감이 솟아납니다. 요즘엔 클라이머를 위한 키링 종류도 여러 가지라 고르는 재미가 쏠쏠한데요.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오직 나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클라이밍 키링은 없을까?’
이런 클라이머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걸까요? 작년 7월, 나만의 홀드 굿즈를 만들 수 있는 공방이 등장했습니다. 직접 홀드도 만들어보고 키링도 얻을 수 있는 ‘공방하울’이 그 주인공인데요. 이렇게 색다른 체험의 기회를 슬스팀이 놓칠 수 없죠! 클라이밍이 무척 좋아 공방까지 열어버린 김정욱 공방하울 대표님을 만나 함께 굿즈를 만들며 이야기를 나눠보았어요.
마음 빚기 Step. 1
클라이밍과 함께 살아가는 틀 잡기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클라이밍이 정말 좋아서 앞으로의 제 모든 삶에 클라이밍이 있길 바라고, 계속 클라이밍 관련 일을 하고 싶고, 나아가 홀드 제작자가 되고 싶은 김정욱입니다.
클라이밍 테마의 공방을 차리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역시 클라이밍이 가장 큰 계기죠! 2023년 10월에 친구를 따라서 클라이밍을 하러 갔어요. 사실 그 전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나 헬스 등 취미로 여러 가지를 하고 있었는데요. 클라이밍을 시작하고서는 다른 운동은 잘 안 하게 됐어요. 축구는 심지어 6년 동안 해왔는데도요. 일하면서도 막 클라이밍 생각이 나고요. 그럴 때 ‘내가 정말 이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느꼈고, 이 업계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호, 그런데 많고 많은 일 중에 공방이라니 특이해요.
스스로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나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클라이머에게 익숙한 건 뭘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다가 ‘아, 홀드구나!’ 번쩍 생각이 났어요. 클라이머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니까요. 홀드 제작자라는 꿈을 꾸게 됐고, 공방을 열어 이런저런 실험을 직접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보통은 홀드를 만들어서 암장 관계자에게 납품하는 방식을 먼저 떠올릴 텐데 ‘원데이클래스를 여는 공방’이 먼저 떠올랐나요?
아, 저 역시도 홀드 제작 회사에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먼저 클라이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요. 주변을 보니까 홀드와 관련된 키링이나 그립톡 등 굿즈를 좋아하시기도 해서 직접 만들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죠. 찾아보니 이런 형태의 공방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공방하울’이 탄생했습니다.
혹시 공방을 원래도 운영했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셨을까요?
하하. 아뇨, 제 전공은 건축학이에요. 전공을 살려 인테리어 회사도 다녔고, 주얼리 쇼핑몰에서 2년 정도 유통 관련 일도 하고 그랬죠. 공방은 다녀본 적도 없어요. 수업 방식도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며 겪은 시행착오, 방문해 주신 고객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차츰 개선해 나간 거예요.
마음 빚기 Step. 2
몰입과 열정을 틀에 붓고, 결과물을 위해 노력하기
창업 이전엔 직장인이었는데, 회사 다니면서 준비하시기 어려웠을 듯해요.
2023년 10월에 클라이밍 시작, 2024년 4월에 퇴사, 그리고 대망의 2024년 7월 오픈! 이렇게 되는데요. 재직 중에도 홀드 제작과 창업 등 관련 공부를 많이 했어요. 사실 자본금, 공방으로 꾸릴 공간이나 수업 구성은 제 기준으로는 빠르게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홀드를 만들기 위한 공방인데 제가 홀드를 자세히 모르면 곤란하잖아요? 공방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뒤로는, 회사 출퇴근하면서, 잠을 줄여가면서 해외 문헌도 찾아보고 해외 홀드 제작 기업 사이트도 열심히 찾아보고. 정말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공부했어요. 국내에는 관련 자료가 많이 없어서 제작 재료를 구하는 데 애를 먹긴 했죠.
이렇게 보니 계속 일만 한 셈이네요. 하하.
정말 대단하세요. 리얼 홀드 키링을 만져보니 얼마나 열심히 연구했는지 알 것 같아요. 진짜 홀드랑 비슷해요! 혹시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어떻게 구하나요?
공업용 재료를 판매하는 데서 구해요.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게… 실제로 홀드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키링을 만들거든요. 보통 홀드를 만드는 방법은 모양 틀에 용액을 붓고 굳혀서 떼어내는 식이에요. 근데 홀드마다 다른 모양, 다른 재질을 만들어야 하니 모양 틀, 그 틀에 들어가는 용액이 다 동일하지 않죠. 용액 또한 어떻게 조합하는지까지 다 달라져요. 회사에서 방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혼자 공부하며 직접 틀과 용액을 개발했어요. 지금도 제작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라 명확하게 딱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공방 주인인 만큼, ‘결과물’이요. 한 번 만드는 거 제대로 만들어 드려야지! 하며 매 수업에 임하고 있어요. 리얼 홀드나 클레이 홀드나 만드는 과정에서 손님의 표정이 뭔가 흡족한 것 같지가 않다? 또 색이 잘 안 나왔다? 참을 수 없죠. 그래서 원하는 결과물이 안 나왔다 하면 한 번 더 만들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하고 있어요.
공방 운영에 관한 부분도 궁금한데요. 경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자영업자로서 힘든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보다는 클라이밍 열기가 식을까 봐 걱정돼요. 저는 이 좋은 운동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데 주변에서 함께할 친구가 사라진다면 정말 슬플 것 같아요. 클라이밍 트렌드가 사라지면 제 일도 덩달아 줄어드는 건 당연하고요. 근데 자영업은 경기가 좋든 안 좋든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또 저는 밥만 먹고 살 정도면 정말 상관없기도 하고…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남아있으면 좋겠다, 더 많아지면 좋겠다 하는 마음뿐이에요.
얘기를 들을수록 정욱 님은 낙천적이면서 결단력 있고 실행이 빠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홀드 키링을 만드는 공방이라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데에 불안은 없었나요?
음, 아무것도 안 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일단 해보자. 적자만 안 난다면,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고, 또 클라이밍과 관련된 일을 한다 생각하니 어떤 일보다 더 몰입하게 된 것 같아요.
역시 공방을 열길 잘했다! 뿌듯하고 즐거운 순간이 있었다면요?
제가 개발한 홀드 키링을 좋아해 주는 분들의 표정을 볼 때나 대화를 나눌 때도 즐겁고요. 본인이 원하는 색이 나왔다거나 조금 마음에 안 든다거나 하면 바로바로 얼굴에 다 드러나잖아요? 그때 제가 슬쩍 가서 도와주면 재밌어해 주시고. 최근에는 암장에 운동하러 가면 직원분이나 운동하러 온 분들이 ‘공방 사장님’으로 알아봐 주시기도 하고요. 공방이 조금씩 알려지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힘이 나요.
마음 빚기 Step. 3
다양한 모양을 고민하며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기
이제 막바지 질문인데요. 정욱 님의 새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좀 많은데, 30대에 전국체전 출전하기, 더클라임 기준으로 보라색 난이도 문제 다 풀기, 회색 난이도 문제 하나라도 풀기, 밥 벌어먹고 살기 정도요…?
엇, 공방 확장 얘기를 내심 기대했는데 안 하시네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방향성은 무엇일까요?
사업 확장은 아직 생각하지 않아서요. 예약이 가득 차면 물론 수익은 더 나겠지만, 지향하는 방향은 아니에요. 키링 만들기를 안내하면서 동시에 클라이밍 얘기도 나누고 싶은데 많은 분을 받으면 소통이 어렵더라고요. 공방은 월세 내고 굶지 않을 정도로만 해보자! 하는 마음이고요.
가장 큰 목표는 초반에 말했듯이 클라이밍 홀드 제작자가 되는 것! 한국에서 시작해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싶어요. 공방에서 작은 홀드부터 만드는 걸 시작으로, 나아가 암장에서도 활용하는 홀드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죠. 더 배워서 지금도 볼 수 있는 모양의 홀드를 만들기보다 한국적인 미가 담긴 홀드를 개발하고 싶어요. 우리나라만의 특징을 살린 홀드가 국내외 암장 벽에 붙어있다면 얼마나 벅찰까요? 그런 꿈을 갖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슬스레터의 공식 질문입니다. 정욱 님에게 ‘클라이밍’이란!
내 인생의 전부다! 취미도 클라이밍, 일도 클라이밍과 관련한 것이고, 사담이지만, 운동하며 사랑도 찾았거든요. 휴일도 암장에서 보내고요. 앞으로도 삶에 클라이밍이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데이트코스 #우정키링 추천!
평일 저녁, 퇴근한 노새와 더클라임 연남 앞에서 만났다. 왜 곧장 공방으로 향하지 않고 클라이밍장에서 봤느냐면, 공방 소개에 쓰여있는 문구가 사실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비록 센터 아래에 있는 햄버거집을 지나치지 못하고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지만)
‘연남 더클라임 뒷골목’, ‘더클라임 연남 1분 거리’
이토록 접근성이 좋다면 클라이머들이 운동 전후로 공방을 들러도 좋겠다는 생각에 실험 정신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클라이밍장에서 공방까지는 도보로 3~4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확실히 암장과 가까운 곳에 있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에 있어 계단을 오르는 일이 다소 힘겨웠지만, 공방 문을 여니 ‘아지트’ 같은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이 나왔다. 정욱 님과 인사를 나누며 동시에 공방 이곳저곳을 가볍게 둘러보며 작업대로 향했다. 우리는 소파와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포토존, 각종 샘플 홀드가 놓인 선반을 지나쳐 작업대에 앉았고, 안내에 따라 용액이 옷에 묻지 않도록 앞치마와 토시, 장갑을 착용했다.
네이버 예약을 통해 미리 ‘REAL 홀드 굿즈 + 미니 클레이 굿즈’ 클래스를 신청했는데, 용액이 굳는 시간이 다소 소요되어 REAL 홀드 굿즈를 먼저 만든다. 제작 순서는 정말 간단했다. 원하는 틀을 고르고, 1번 용액과 2번 용액을 계량컵에 부은 다음, 잘 섞는다. 용액을 틀에 붓고 기다린다. 굳으면 꺼내어 사포에 마무리 작업을 해준다.
굳는 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틀을 정하고 용액을 섞는 건 10분도 채 안 되어 진행했다. 노새는 원하던 색이 잘 나오지 않아 한 번 더 진행했다. 그런데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미니 클레이 굿즈는 단단한 점토를 반죽해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라 앞선 작업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다. 하지만 역시 간단한 방법으로 진행됐다. 원하는 점토 색을 고르고 말랑말랑해지도록 반죽한다, 원하는 모양으로 빚는다, 한 번 구워내면 완성. 모양을 예쁘게 만들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정욱 님이 엉성한 나의 손과 곤란해하는 표정을 보고 내가 뭘 만드는 데 소질이 없단 걸 재빠르게 캐치해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옆에서 하나하나 도와주었다.
빵을 좋아하는 나는 홀드와 미니 클레이 굿즈 모두 크루아상 모양으로 만들었다. 노새는 에메랄드색의 크림프 모양 홀드와 한 입 베어 문 치즈 클레이 굿즈를 완성했다. 한 사람당 두 개의 키링을 만드는 데 1시간이 안 걸린다니. 여기에 원하는 색과 모양인 데다 직접 참여해 만들었다는 뿌듯함까지. 경제성과 성취감, 재미까지 챙긴 원데이클래스가 아닌가. 여러모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광고처럼 썼지만, 슬스팀 돈으로 직접 체험한 것임을 밝히며. 클라이머라면 반드시 즐거워할 경험. 추천합니다!)
협업 문의 : slowstarter@slowstar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