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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슬스레터

도전, 열정, 기술의 조화를 확인하는 현장

슬스레터 #63

by 시느

제45회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대회 관람기


지난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전북 군산시에 위치한 군산클라이밍센터에서 제45회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대회 첫날 28일(금)에는 남·여 스피드 경기가 진행됐으며, 29일(토)에는 남자 볼더 경기, 여자 리드가 치러졌다. 30일(일)은 전날과 반대로 진행하며(남자 리드 경기, 여자 볼더 경기) 대회의 막을 내렸다.


해마다 개최되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대회는 그해의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자리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여 열리는 대회인 만큼 선수에게는 그동안 쌓은 자신의 기량을 확인하는 한편, 국가대표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과 국제대회 출전권까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대회인 것. 개최 소식을 접한 나는 우리나라의 선수들을 한 자리에서 보고, 그들의 도전을 가까이서 응원할 수 있는 데다가 현장을 직접 느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29일과 30일 양일간 군산에 머무르며 선수들의 도전을 지켜봤다.


70739_2738739_1744036982782101271.png 경기가 열린 군산클라이밍센터. 오른쪽은 볼더 구역, 왼쪽은 스피드 및 리드 구역이다.



꽃샘추위도 녹여버린 선수들의 열정


대회 둘째 날,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약 3시간을 달려 군산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경기가 열리는 암장은 군산 시내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버스나 택시를 타고 더 가야 했다. 하지만 버스는 배차 간격이 무척 길어 결국 택시를 탔다.


15분 정도 지나, 한창 준결승전이 치러지고 있는 군산클라이밍센터에 도착했다. 드디어 선수들을 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볼더 경기가 진행 중인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추위가 들이닥쳤다. 봄 날씨가 이어져 따스했던 평일과는 달리 주말 내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예보가 있던 터였다.


게다가 암장 뒤로 낮은 산이 있어 산바람이 불어왔고, 이슬비가 내렸다가 그치고, 눈이 내렸다가 그치고, 칼바람이 몰아치다 그치는 요상한 날씨가 경기 내내 계속됐다. 야외에서 리드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의 얼굴과 귀는 높이 올라가 있는데도 눈으로 확인될 정도로 이미 빨갰다. 볼더 경기는 실내에서 진행됐지만, 한쪽 벽 전체가 전동셔터로 이뤄져 있었다. 방문객의 용이한 관람과 환기를 위해 모든 셔터의 반 이상이 올라가 있는 상태여서 바람이 계속 드나들었다. 패딩과 핫팩을 쥐고 있는데도 몸이 떨렸다.


70739_2738739_1744037882127649360.png 패딩을 입어야 하는 날씨지만 계속 나아가는 선수들


하지만 모두 아랑곳하지 않고 문제에 계속 도전했다. 칼바람에 얼굴과 귀가 점점 트고 빨갛게 되면서도 벽에 붙기를 멈추지 않았다. 목덜미에 손을 얹어 언 손을 녹여 가며 계속 위를 향해 올라갔다. 진지한 눈빛으로 오로지 벽에 붙은 홀드에만 시선을 고정하며 차근차근 해결해 가는 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나 또한 점차 감화되는 듯했다. 이토록 온 힘을 다해 도전해 본 적이 언제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면을 잘 간직해두었다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을 때 꺼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보는 사람도 초크 가루 필요할 만큼 쫄깃했던 결승전!


남·여 볼더 결승전에는 6명의 선수가, 남자 리드 결승전에는 9명, 여자 리드 결승전에는 8명의 선수가 진출했다. (준결승전을 치른 20명 중에서 상위 6명의 선수가 결승전에 진출하며, 동점자가 있다면 함께 진출하도록 규정돼 있다.)


볼더 경기와 리드 경기가 다른 구역에서 진행돼 나는 대회 둘째 날과 마지막 날 모두 볼더 경기를 보았다. 특히 남·여 볼더 결승전을 집중해 관람했다. 대회 현장을 많이 간 적이 없고 전문가가 아닌지라 어떤 유형의 문제입니다, 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다. 최선을 다해 결승전의 문제와 이를 대하는 선수의 모습을 최대한 표현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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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39_2738739_1744038553674155299.png 마냥 전부 다 어려워 보였던 남자 볼더 문제


남자 결승전의 문제를 보며 느낀 것은 ‘파워’였다. 순간적으로 몸을 힘껏 날리면서도 다음 동작에선 그 반동을 버텨야 했다. 잘 제압되지 않고 힘이 흐르는 홀드만으로 구성된 문제인데, 이들을 잡고, 누르고, 버티면서 동시에 위로 힘껏 뛰어올라야 완등 홀드에 다다를 수 있었다. 몸을 완벽하게 컨트롤해야 문제를 풀 수 있겠구나, 싶었다. 힘을 잔뜩 써서 근육에 펌핑이 와 그것을 풀려는 듯, 기합을 단단히 넣으려는 듯, 중간중간 하! 하고 외치는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끌었던 선수는 (유명해서 식상한 감이 있겠으나) 이도현 선수였다. 문제를 푸는 모습이 시선이 갔다기보다는 오히려 경기 전의 모습이었는데, 준결승 때부터 한 문제를 풀고 제자리로 돌아갈 때나 결승전에 임하기 전 밖에서 대기할 때 지켜본 그의 걸음걸이가 조금은 심상치 않았다. 한 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었던 것.


알고 보니 햄스트링을 다쳤다고 했다. 하지만 홀드에 붙어 있는 순간에는 그가 다쳤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침착하게 문제를 관찰하고 동작을 수행했다. 순간적으로 박차고 뛰거나 다리로만 지탱하고 일어서는 동작이 있는 문제도 고통을 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상이 성적에 아예 영향을 끼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결승전 막바지쯤 다리의 힘만을 이용해 풀어야 하는 슬랩 문제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는 2위로 경기를 마쳤다.


70739_2738739_1744038768290996322.jpg 다쳤어도 경기는 끝까지 임하는 이도현 선수


여자 결승전은 남자 부문보다는 좀 더 다채로운 동작을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시원한 다이노, 날렵하고 절묘한 발 코디네이션, 재밍(Jamming) 기술*까지. 여기에 어딘가 한 끗 차이로 판가름 나는 느낌이 들었다. 발 홀드 포인트에서 더 가거나 덜 가거나 하면 균형을 잡지 못해 떨어지고, 무게 중심을 완벽하게 이동하지 않으면 그다음 홀드까지 결코 닿을 수 없는 식으로. 선수도, 관중도 좀만 더 뛰면 되는데! 살짝만 발을 더 옮기면 다음 동작으로 진행되는데! 같은 마음으로 결승전을 보낸 것 같다.


*재밍(째밍·Jamming) : 바위의 갈라진 틈새 속에 손, 발, 다리 등 몸을 집어넣고 비트는 힘에 의해 지지력을 얻는 기술


70739_2738739_1744039001518926921.png 동작이 다양해 보는 내내 감탄한 여자 결승전 문제


6명의 선수 중에서 오가영 선수가 2개의 문제를 완등하며 1위를 차지하던 중, 마지막으로 등장한 서채현 선수 또한 2개의 문제를 완등했다. 다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여부에 따라 순위가 바뀌는 상황이 전개됐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선수가 움직이는 모든 순간순간을 지켜봤다.


마지막 문제는 크림프 홀드만이 주어진 상황을 지나고, 재밍 구간을 지나 또다시 크림프 홀드를 제압한 뒤, 완등 홀드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하는 형태였다. 서채현 선수는 아무도 잡지 못한, 1Zone을 획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저걸 어떻게 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극악인 홀드를 거치고 마침내 Zone에 다다른 순간, 박수갈채와 함성이 쏟아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라 나 또한 와! 하고 소리 지르며 손뼉을 쳤다.


70739_2738739_1744039116159449201.jpg 크림프 홀드와 재밍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극악의 마지막 문제


경기가 끝나고 자리가 정리된 후 시상식이 진행됐다. 입상한 선수도, 순위권에 들지 않은 선수도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고생했다 말하고 등을 두드려주는 모습이 보였다. 궂은 날씨에도 꿋꿋하게 도전을 이어 나갔고, 결과를 떠나 여정을 잘 마무리한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그 사이에 껴서 정말 잘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물론 부담스러워할 게 분명해 먼발치에서만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대회를 지켜보며 건네받은 이들의 열정과 도전을 잘 이어가자, 내 자리에 돌아와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내년에는 슬스팀원들과 다함께 가야지. 혼자서는 아무래도 조금⋯ 외로웠다. 선수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곧바로 감상을 나눌 친구가 없어서 쓸쓸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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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볼더 시상식의 순간



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팬심으로 만난 클라이머 이야기


제45회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대회를 이끈 몇몇 주역에게 경기를 마무리한 소감을 간단히 물었다.


“아침 일찍 집합해 준비하고 경기장에 종일 머무르는 게 조금은 고단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선수들이 도전하는 모습과 그들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이게 살아있는 거지’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요. 이번 대회에서도 심판을 보며 그 감정을 느꼈습니다”. (김인경 심판)


“작년보다 날이 추웠고, 루트도 전반적으로 어렵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기량이 이전보다 더욱 발전했다고 느낀 대회였어요. 이 느낌을 이어나가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겠습니다!” (서채현 선수, 리드·볼더 1위)


“추운 날씨에도 경기를 잘 마친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앞으로도 국가대표로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도현 선수, 리드 1위·볼더 2위)


“선수들이 그간 준비한 만큼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공정하면서도 다양한 스타일을 내려고 고민했어요. 문제 난이도 조정에 신경 쓰고, 모든 세터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부분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만족하고 결과 또한 잘 나온 것 같아 좋습니다.” (조성호 볼더 루트세터장)




제45회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대회 결과


볼더

남자: 1위 노현승(신정고), 2위 이도현(서울시청), 3위 천예준(충청남도체육회)

여자: 1위 서채현(서울시청), 2위 오가영(충청남도체육회), 3위 정예진(더쉴)


리드

남자: 1위 이도현(서울시청), 2위 노현승(신정고), 3위 권기범(중부경남클라이밍)

여자: 1위 서채현(서울시청), 2위 김채영(서울신정고), 3위 오가영(충청남도체육회)


스피드

남자: 1위 신은철(더쉴) 2위 이용수(대구시체육회) 3위 최종빈(더쉴)

여자: 1위 정지민(서울시청) 2위 성한아름(중부경남클라이밍) 3위 황지민(현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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