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시몬스
안녕하세요?
신사동 마케터입니다.
저는 뭐든지 빨리 질리고 어떤 것에 크게 열광한다거나 혐오하는 것이 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의 소나무 같은 여자 취향처럼 저에게도 개취라는 게 딱 하나 존재하는데 쌍꺼풀 없는 남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일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은 박재범이지만 박재범만큼 좋아하는 다른 가수는 김필이라는 가수예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고 봐도 봐도 계속 보게 되는 무대가 김필의 노래와 무대인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거의) 하루에 한 번씩 보는 김필의 무대를 보고 제가 생각하는 브랜딩과 비슷한 맥락을 발견해서 공유해볼게요.
처음엔 김필과 김필의 노래가 좋아서 이 무대를 많이 찾아봤습니다. 어떤 가수들은 노래를 부를 때 영혼이 묻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 김필이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정말 닿을 수 없는 연인을 기다리는 남자의 영혼이 노래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이 영상을 9,580번쯤 봤을 때 이 노래가 전개됨에 따라 달라지는 관객들의 리액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김필의 분위기에 압도된 동료 가수들의 얼굴을 잡아줍니다. 노래 중반부에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관객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몸을 좌우로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 리액션이 나옵니다. 그리고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후반부에는 몰입해서 눈물이 고인 아름다운 여성 관객과 박수를 치다가 ‘이 남자 뭐지?’ 놀라서 박수 치는 걸 잊어버리는 여성 관객이 시간차를 두고 나옵니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어떤 걸 느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사자후 급의 감성을 폭발시키고 나선 (저는 여기서 김필의 야심, 야망 같은 것을 느꼈어요. 내가 이 노래로 이 무대를 씹어먹겠다. 관객들의 마음을 다 빼앗겠다. 이런 느낌. 실제로 그는 가수로 성공하고 싶어 서울에 와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고 사기도 많이 당했다고.) 무대에 압도돼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년 관객들을 훑어주고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젊은 남성 관객의 멍한 표정을 클로즈업 한 뒤 다시 김필이 마지막 소절을 부르는 것으로 무대가 마무리됩니다.
제가 이 영상을 왜 이렇게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김필의 이 무대는 듣는 사람을 완벽하게 설득시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기승전결을 갖춘 논리보다는 돌풍에 가깝습니다. 김필의 노래는 잔잔하게 시작해서 주변을 맴돌다가 순식간에 다가와 심장을 움켜쥐고 피를 뚝뚝 흘리게 만듭니다. 짐작컨데 이 무대를 본 관객 중 그의 노래에 설득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김필이 기다려달라고 하면 할머니가 될 때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때론 논리가 필요한 설득이 있습니다.
한번 구매하면 몇 년을 써야 하는 가전제품, 자동차 같은 고관여 제품은 논리가 중요했습니다. 화장품처럼 모두가 전문가를 자처하는 카테고리는 스크롤 압박을 불러일으키는 상세페이지에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관여 제품에서 조차도 밑도 끝도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경우가 출연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시몬스입니다. 20년 동안 침대는 스프링을 외치더니 별안간 도대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트렌디한 음악과 외국인으로 범벅된 광고를 틀더라구요. 트는 정도가 아니라 도배한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고 팝업 스토어를 만들고 굿즈를 팝니다.
저는 이 광고를 비롯한 시몬스의 행보가 사실 불편했습니다.
어떤 캠페인 하자고 하면 그 타겟 유저를 어떻게 정의할 건데부터 시작해서 정의한 유저가 우리 앱에서 몇% 인데, 하루 레벨 액션 강도는 어떤데 등 숫자를 봐야 의사결정을 하는 저에게는 저 광고가 정말로 유입에 도움이 됐나? 어떻게 측정하지? 이 생각만 들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정말로 이 광고가 도움이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몬스의 광고가 마음에 들건 들지 않았건 시몬스는 사람들의 마음에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시몬스에 대한 분석글을 하루가 멀다 하고 쓰고 팝업스토어는 대박이 났습니다. 지금 이 씬에서 가장 핫한 광고, 브랜딩, 마케팅을 하는 회사는 단연 시몬스입니다.
그럼 시몬스는 어떻게 이런 감각적인 광고를 만들었을까요? 아니 그것보다 시몬스 광고는 왜 기억에 남을까요? 그냥 핫(Hot)한 걸 다 때려박으면 시몬스 같은 광고를 뽑아낼 수 있을까요? 저는 A부터 Z까지 다 계산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브랜딩은 감각이 중요하지만 감각만으로는 시몬스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한 번은 성공할 수 있어도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 성공했는지 모르니까요. 예를 들어 광고에 쓰이는 BGM을 고르는 과정은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요? 타깃 고객을 정하고 (MZ였겠죠?) 요즘 MZ 세대들이 트렌디하다고 느끼는 음악들을 list up 합니다. 공통점을 몇 가지 뽑아냅니다. 그리고 선정 기준을 세웠을 겁니다. 1)트렌디하면서(트렌디의 정의는 a,b,c) 2) 이제 막 떠오르는 가수여야 하고 (막 떠오르는 정의 필요. 데뷔년도? 소셜 언급량? 차트 순위?) 3) 광고에서 표현하는 비주얼과 잘 맞을 것 (잘 맞는다의 정의 필요). 각자 흩어져서 위 3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노래를 리스트업 해보고 몇 번의 회의를 거쳐서 최종 의사결정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반전은 그냥 광고 담당자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골랐다고 합니다ㅎㅎ)
(제가 생각하는) 브랜딩은 느낌적인 느낌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로 전환하는 과정입니다.
고객의 마음에 돌풍을 일으키려면 만드는 사람은 계산해야 합니다. 구조화시키고 개념을 정의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말이 되는 것 같다고 끄덕일 때 고객들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겁니다. 물론 이 과정을 생략하고서 느낌적인 느낌으로 일을 잘 해내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잘 훈련된 운동선수의 본능 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본능은 타고나지 않은 이상 해당 분야에서 10여 년 이상 일을 해서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아는 경우입니다.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고 사람에 의해 좌우됩니다.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대부분의 회사와 마케팅팀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처음엔 열심히 계산해도 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시스템을 갖추고 전략을 세웠다면 회차가 쌓일수록 점점 맞아 들어갈 겁니다. 쌓인 노하우는 물려줄 수 있습니다.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다시 김필의 무대로 돌아가 볼까요.
저는 김필의 무대도 철저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설득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들이 순위를 다투는 프로그램에서 김필의 무대처럼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무대는 #감성 #목소리 만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는 계산했을 겁니다. 언제 기타 솔로를 치고 언제 밴드 연주가 들어갈지. 언제 일어서고 언제 조명이 들어올지. 마이크를 잡아 쥐는 손가락 하나, 리듬을 타는 그의 몸짓마저도 계산 같습니다. (김필 무대는 대부분 이 공식을 따릅니다) 물론 어떤 부분은 계산하지 않았을 거예요. 김필은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 수년을 굴러본 베테랑이니까요. 그의 경력과 경험에서 나온 동물적인 감각들로 10% 정도는 채웠을 겁니다.
글이 길어졌는데 하고 싶었던 말은
김필 가수님, 사랑합니다.
음악 오래 해주세요.
그리고
돌풍을 일으켜라.
그러려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손흥민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면 따르자.
정도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김필 불후의명곡▶https://youtu.be/SfKWMZKzQp
시몬스 광고 분석영상▶https://youtu.be/RjwtKv4xacw
#신사동마케터
#그로스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