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쪼가리(3)
휴직하니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일할 때는 더 복잡한 것을 맡고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집에만 있는 것이란 그런 일들과 거리가 멀었다. 아내와 우리 아이들, 그리고 집과 아이들의 학교.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생각이 미치는 범위가 짧아졌다. 가족에게 신경 쓰고 남는 시간은 자연스레 나 자신에게 향했다.
시간이 꽤 남아돌았다. 물론, 직장을 다닐 때도 퇴근하면 쉬는 시간은 충분했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큰 마음먹고 얻은 시간인데, 허비할 것 같아 불안해하기도 했다. 막연한 두려움도 생겼다. 나는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그런 구멍을 채울 만한 무언가를 찾기도 했다. ‘무얼 한 번 배워 볼까?’ 그런 생각이 날마다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구멍이 너무 큰 탓일까 쉽게 다음 일을 정할 수 없었다. 결국, 계획적인 생각은 무계획으로 변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오히려 편안함이 느껴졌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나무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아내까지도). 나는 그저 나로 남으면 될 일이었다. 일을 할 때 나는 수많은, 해야 할 일 속에 존재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성공해야만 하는 업무의 연속. 진정 나를 위해 해야 할 할 일을 내팽긴 채 남을 위해, 또는 사회와 국가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주어졌다.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지? 그런 물음 속에서 일의 진도와 성취도는 점점 쇠퇴하는 느낌이었다. 바야흐로, 스스로에 대한 ’ 보람‘이 희박해지고 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 나를 다시 놓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간섭이 없는 시간 속에서, 해야 할 일보다는 그냥 하게 되는 일에 집중했다. 그게 잠이든 게으름이든, 활동이든 부지런함이든지. 그저 ‘하게 되는 일’을 하니 불안감과 초조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그 일을 잘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내게 불호령을 낼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아무런 성취도와 목적 없는, 그저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니 시간에 쫓길 일도 없었다. 하게 되는 일을 충분히 하고, 그 일과 자신에 대해 한 번 심사숙고하는 시간이 생겼다.
그냥 하게 되는 일이란, 새로운 일은 아니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맞는 일, 책을 읽고 집 주변이나 동네, 공원을 걷는 일. 식사를 차리며 저녁을 맞는 일. 이전부터 계속해 온, 누구라도 한 번은 해 봤을 익숙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아무런 부담 없이 자유 의지로 하게 되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았다. 그 전의 상태에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소중하고 귀한 감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