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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진 Jan 18. 2023

피할 수 없는 것

불가피(1)

만남은 엉겁결에 이루어졌다. 내가 새해 인사차 전화하니 그 형은 다짜고짜 말했다. 

“왜, 말해!” 형은 무심했고, 목소리는 왠지 무뚝뚝했다. 

“아니요, 다름이 아니라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요…. 그거 말씀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나는 형의 말투에 다소 당황하고 서운했지만 준비한 인사를 했다. 그 말을 들은 형은 무안한 듯이 말했다. 

“아, 난 또 네가 뭐 부탁하는 줄 알았지.” 형의 어조가 조금 누그러지더니 이내 물었다. 

“그래서, 우리 언제 볼 거야?” 

그렇게 바로 약속을 정하고 우리가 만난 것이 오늘이었다. 만남을 피할 수 없었다     


꽤 오랜만에 만났다. 마지막으로 본 날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얼마 만에 만난 지 궁금했다. 시간을 따져보다가 서로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형은 쉰한 살(내 나이는… 비밀. 단서, 우리는 열한 살 차이). 세월은 유수보다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폭포수 같다고나 할까. 형은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다가, 그러나 너무도 차분하게 달관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뭐, 별 건 없어. 그냥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뒷바라지하는 거. 평범해 나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 같아. 그저 이대로 사는 거지.” 

‘진정 바라는 것이 없는 걸까.’ 형의 눈망울은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새롭지 못한 타협으로 ‘현재’에 고스란히 남기를 기대할 뿐이었다. 우리는, 평범함을 피할 수 없었다.     


고기를 다 먹고,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고서 인근 카페로 갔다. 그게 정해진 순서인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레 본인과 지인들 자녀의 대학 진학(계획) 이야기를 했다. 누구는 이래서 저런 데, 누구는 저래서 이런 데를 갔다는 소문…. 그러다가 또 우리는 너무 바라는 것이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너무 가진 것이 많아서 우리가 그렇게 되길 바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곳곳에 별장을 갖고 사는, 주말마다 해외여행을 가는 부자들. 진짜야? 사실이야?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는지 우리는 짐작도 못 할 이야기를 나눴다. 부럽지는 않았다. 그들이 부단한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일 테니까. 그렇지만 실로 믿기지 않았다. 그런 삶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그런 사람들은, 걱정이 없겠네요.” 내가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형은 그걸 부인하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보는 건 외적이고 경제적인 부분이니까, 다른 부분은 또 모르지. 그들도 나름대로 걱정이 있을지.”

“…….” 내가 잠자코 있자 형이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우린 잘될 거야.”

내가 웃었고, 형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걱정한다고 뾰족한 수가 없잖아. 달라질 건 없어.”

그렇게 형과 나는, 걱정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 삶이 전체의 반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테이블 위 음료수가 반쯤 남았을 때 형이 말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이제 나도 죽음이 멀지 않았다 싶어.”

“예? 형은 그래도 아직….” 내가 마저 반문하기도 전에 형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냥 가끔 여행이나 다니다가 말이야. 한 백 번쯤 될 때 비행기 안에서 소리소문 없이 죽는 거야. 그렇게 죽는 거야.”

“네? 추락으로요?”

“아니,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조용히 죽는 거지. 자연사 말이야. 자기가 비행기를 탄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야.”

내가 그 말을 조금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형이 말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해. 자다가 그냥 죽는다면. 아침에 깨어날 걸 생각하고 잠들었는데 죽는 것도 모르고 그냥 죽는 거지. 아무런 배웅 없이, 임종도 없이. 그러다가 혼자서 저승으로 가는 거야.” 

지천명에 이미 도달한 형은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말하는 형과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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