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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진 Feb 10. 2023

절교 선언

꼬마와 친구들이 울음을 터트린 날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말총머리를 한 소녀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초롱초롱 눈이 그 안에서 반짝였다. 선홍색의 입술은 항상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그런 모습의 아이가 마냥 좋았다.      


  학교 화장실 청소 당번, 대부분은 그것을 더럽고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날은 청소 구역을 정하는 날이었다. 나는 마음을 졸이며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내가 좋아하는 소녀는 이미 여자 화장실 당번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고, 마지막 남자 화장실의 주인공이 가려질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아무런 종교도 믿지 않았지만, 믿을 수 있는 신이란 모든 신에게 빌었다. 제발… 화장실! 청소를 시켜 주세요, 라며. 어떤 신이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이었을까 기적이 일어났다. 그 더럽고 귀찮을 일을 내가 하게 된 것이다. 매일 청소 시간이 기다려졌다. 화장실 청소를 하며 그 아이를 더욱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고, 이따금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니까. 소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설레는 순간이었다. 지금껏 내 삶에서 화장실 청소를 가장 재밌게 한 나날이었다.     


  그런 내 짝사랑이 전학을 간다고 했다. 한 학년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그날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때는 그 아이에게 어디로 가는지, 집 연락처를 물어볼 생각을 못 했다. 지금 그런 일이 생기면 없는 전화기를 만들어서라도 연락처를 받았을 텐데. 그날은 내 세상이 한 번 크게 무너진 날이었다.    

    

  며칠 전, 돌봄 교실로 꼬마를 데리러 가니 담당 선생님이 말했다.      


   “아버님, 오늘 ○○가 △△이란 친구와 크게 다퉜어요.”     


  꼬마는 다른 여자아이와 소꿉놀이를 하고 있던 △△에게 다가가 “나도 같이 놀아.”라고 말했다. 친구는 싫다고 했고 그 순간 꼬마는 친구가 미웠는지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을 집어던졌다. 그렇게 하면 자기 뜻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이윽고 더 많은 장난감이 꼬마에게 날아들었다. △△가 참지 못하고 장난감을 마구 집어던진 것. 그러면서 그 친구가 한 말.      


  “너랑 절교야!”     


  꼬마는 울음을 터트리며, 쪼르르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자기의 눈에 비친 모습을 그대로 일러바쳤다. 그때만 해도 꼬마는 피해자였을 것이다. 잠시 후 선생님의 중재 재판이 열렸다. 선생님은 먼저 장난감을 집어던진 꼬마를 나무라고 맞대응한 △△에게 물었다.      


  “○○야, △△가 싫어?”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마찬가지로 울음을 쏟았다. 금세 교실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꼬마와 그 친구, 주위에 같이 있던 아이들도 울어버린 것. 선생님은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아이들을 달래느라 혼쭐이 났다. 그 후 네 명은 계속 울면서 체육관으로 다음 수업을 받으러 갔다. 내가 갔을 때 여전히 체육 시간 중이었고, 예정 시간보다 일찍 갔기에 다른 선생님이 꼬마를 데리고 돌봄 교실로 와야만 했다. 그 틈에 담임 선생님은 나머지 이야기를 덧붙였다. 제가 나중에 ○○에게 물어봤어요.      


  “○○, 너 △△한 테 왜 그래?”     


  꼬마는 그 친구가 얄밉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친구가 한 말을 전했다. 꼬마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 다툰 친구와 따로 대화했던 것. “△△야, 너는 ○○가 싫니?” 그 친구는 선생님의 물음과 달리 “아니요, 좋아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풀어주었다. 꼬마가 생각하는 ‘얄미운’ 친구는, 사실 꼬마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말해 주었다. 철없는 꼬마는 금방 마음이 풀려 친구에게 사과했고, 친구는 한참 후에 꼬마에게 사과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꼬마는, 아니나 다를까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자기 입맛에 맞게 편집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꼬마는 맨 나중에 “아빠, 이건 진짜 중요한 얘기인데요.”라며 말했다.     

 

  “△△가, 저한테 절교하자고 했어요.”         


  꼬마는 어쩌면 가장 아팠을 말을 가장 나중에 꺼냈다. 꼬마의 눈을 바라보니 또다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꼬마의 두 손을 잡고 말해 주었다.      


  “그래? 그건 그냥 해 본 말일걸.”     


  나는 꼬마에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지만, 그 사건이 있던 그 순간 꼬마는 아마도 세상이 무너진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가까워지고 싶어 친구에게 다가갔는데 사소한 행동으로 오히려 멀어졌던, 무언가 뒤틀린 상황을 말이다. 꼬마는 알게 되었을까. 아무리 친한 사이의 행동일지라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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