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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샘 Nov 11. 2023

15 박사 학위의 무게

바늘구멍

학위 과정을 마칠 때는 그것이 끝나면 모든 것이 다 정리가 되는 것 같았지만 실제 학위 과정을 마친 후 예상과는 다른 현실에 좌절하게 된다.


물론 장밋빛 세상이 아닌 것쯤은 나도 안다. 그래도 지금보다 한 단계 위로 레벨 업을 한다고 여겼는데 그건 더 치열한 곳으로의 점프였다.


말이 박사 학위 대단하다고 하지만 실제 박사 학위를 가진 이들은 넘쳤다. 다들 각자의 이유로 도전했고 쟁취했다. 그 후에는 자신의 노력과 상황에 따라 다른 자리에 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처음에는 그냥 쉬느라 여력이 없었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또 다른 도전이 있었다. 그리고 조건이 계속 까다로워지고 있다. 학위 논문 이외에 300% 주저자 논문 세 편, 그리고 영어는 기본 추가 외국어 하나쯤은 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스펙이 필요한 것인 줄 몰랐다. 이 정도 스펙을 가진 이들이 과연 한국어 강사를 할까? 급여도 적고 대우도 좋지 않은데 열정만으로 가능한가? 그리고 나이대도 더 젊어졌다.


게다가 베트남인들의 석사 학위 취득자도 많아져서 그들이 행정일과 베트남 학습자 관리가 되어 대학이 이들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지금은 나는 소강상태이다. 무언가를 도전하고 다시 에너지를 쏟기에 나는 고갈되었고 지쳤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다시 잘할 자신이 없다. 게다가 박사 학위를 어떤 곳에서는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게 아닌 부담 요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공부를 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의 미래는 어떻게 꿈꾸고 있는지 많은 질문을 던져본다. 하지만 답이 없다. 나이는 많고 경력이 짧은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외국뿐인 것 같다. 한국어 교육의 국내 거취는 이미 포화상태이다.


처음에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생각하자 그랬고 지금은 막막해졌다. 물론 지금도 학습자들을 가르치고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이건 석사만 있어도 가능한 직업이다. 박사까지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고생을 하면서 나의 학문적 욕구였다고 하기엔 내가 치른 경제적 신체적 비용이 너무 크다.


그것만 아니면 나는 지금 별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지원해 준 남편을 볼 면목이 없다. 남편은 무엇을 위해 학위를 땄냐고 되물었지만 당사자인 나는 그렇지 않다. 조금 결과를 내어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다시 학술지에 기고하고 수정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그 길을 또 가야 하나 겁이 난다.


지금 한국어 교육을 하고 계신 분들 모두 하는 고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이일을 할 수 있을까 일 것이다. 나 역시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야 하나 아님 계속 이렇게 지내다 일이 멈추면 나도 멈춰야 하나 싶다. 게다가 이런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눌 동료들이 없다. 다들 각자도생이다.


누군가 맘에 맞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 같이 할까요? 이런 제안을 건네고 싶다.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해 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 겨울에 마치려 한다. 그리고 다시 달려볼까 한다.


어떤 결론이 날지 잘 모르겠지만 내 자리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아가 보려 한다. 지금도 수업 후 자료를 보충하거나 수정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원래 가르치는 일은 이런 게 아니던가?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것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외엔 답이 없다.


요즘은 학기 종료를 몇 주 앞두고 있다. 부지런히 달려왔던 또 한 학기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부족했던 것도 있고 보람을 느끼게 한 순간도 있었다. 어제는 초급 학생들의 웃는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 한참을 깔깔 거리며 이야기했다. 이런 순간순간 때문에 나는 이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학생들의 대견함이 나를 그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게 한다. 내 나이 스물에 이 학생들처럼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에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존경스러워진다. 그리고 매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돕고 싶어 진다.


토픽 시험을 앞두고 모두 열심이고 입학 면접을 앞두고도 열심이다. 기특한 학생들이 꽤 많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요즘도 모두 부산하고 바쁘다. 어제는 BTS춤을 추는 학생들을 보고 뮤직비디오를 틀어 줬더니 따라 추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그 젊은 청춘의 모습이 얼마나 어여쁘던지!!! 그들은 알까 찬란한 젊음의 순간을


이 학기가 끝나면 이 주정도의 방학이 기다리고 있다. 보통 한국어 강사들은 이때 해외여행을 가거나 다음 수업 준비를 한다. 나 역시 별다른 계획은 없다. 잠시 재충전을 하고 다시 달릴 테지만 마무리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볼까 한다.


날이 많이 추워져 학생들이 힘들어한다. 모두 한국의 추운 날씨가 익숙지 않아 해서 앞으로가 더 고생일 것이다. 그래도 눈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다. "선생님~ 눈은 언제 와요?" 이렇게 물어보면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2023년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한국어 강사로 지내면서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하는 안도의 마음이 든다. 나는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라는 사실이 뿌듯하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아니한가!!!! 나는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벅찬 느낌이 드는 오늘이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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