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가 끝났다.
한국어 과정은 200시간으로 일 년에 네 학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 가을 학기가 드디어 끝났다. 다들 우리도 겨울 방학이 학부와 같은 줄 아시는데 그렇지 않다. 그냥 4학기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제 2주 정도의 방학을 보내게 되는데 방학이 있는 직업이 좋을 것도 같지만 그 절반 이상을 다음 학기 수업 준비로 보낸다고 하면 다들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반응을 보인다.
말하기 시험을 끝으로 종강을 했고 유급과 진급의 기준으로 학습자들은 같은 급을 다시 듣거나 승급한 급을 듣게 된다. 일부러 다시 듣기 위해 시험에 불참하는 학생도 있어서 승급을 미리 확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마지막 날까지 마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이번에 새로운 학교에 가게 되어 그곳의 학생들과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학습 의욕도 좋고 성격도 좋은 학습자들을 만나는 것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데 이번 학기가 그랬다. 그런데 나는 종강날 다음 학기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학생들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나에게도 몇 가지 기준이 있기에 고민하다 결정했다.
그 기준은 그냥 시간만을 채우는 느낌으로 강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교육의 내용에 대해 배울 수 없다면 차라리 다른 기회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제 경력은 일부러 채우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 나의 쓰임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이 힘들더라도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편한 자리라는 것을 알지만 선뜻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들 왜라고 물었지만 나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통보(?)만 했다. 혼자 결정하고 이미 학교에 통보하고 나서야. 그랬더니 남편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하세요~ 딱 이 말만 했다. 감사하게도.
배가 불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배우지 않으면 퇴보하는 교육계에서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학습자를 만나 동기 부여도 받고 교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고 싶었다. 늘 시간에 쫓기는 삶보다는 이끌어 가는 삶을 선호하기에 이번에도 후회는 없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대 한국어 교재가 5급까지 모두 리뉴얼됐다. 그래서 이제 학교들이 조금씩 교재를 바꾸는 분위기다. 예전에 논문 때문에 교재 사용 현황을 확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서울대 한국어 교재 사용 비중이 2위 교재의 몇 배나 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만큼 서울대 교재는 모든 대학의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데 사용하지 않는 구어체나 문법으로 치중되어 아쉬움이 있던 상황에서 오랜만에 개정판이 나와 관심이 생겼다. 기존의 교재의 문법의 급이 달라지거나 빠진 문법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확실히 의사소통 중심 수업을 위해 말하기, 듣기, 읽기가 강화되어 비중이 높아졌는데 문제는 기본 학습이 어느 정도 된 학습자들에게는 좋겠지만 개인 학습량이 부족한 지방의 학습자들에게 이 교재의 강점이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들어보니 진짜 서울대 학습자들은 주제 하나로도 한 시간 수업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글쎄 여기에서는 가능할까 싶다.
그런 수업이 가능하려면 학습자들이 우선 어휘나 문법의 선행 학습이 되어 있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말하기나 쓰기 연계를 하면서 반복한 후 듣기와 읽기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순전히 학습자와 교수자가 반반의 역할이 되어야 교수자도 그것을 가지고 수업 운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교재를 한번 꼼꼼히 분석해 볼 생각이다. 겨울이 왔고 교통편도 예측하기 힘든 시즌이라 멀리 움직이는 것도 안 할 생각으로 쉬어 가려한다. 물론 좋은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대학의 공고가 나오면 또 지원해 볼 생각이다. 내가 잘 쓰일 수 있는 곳에 가서 그곳에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다.
종강하자마자 해외로 떠난 선생님도 계시고 곧 돌아올 ot준비를 하는 선생님도 계시고 나처럼 이렇게 대책 없이 노는 강사도 있는 가을 학기가 끝난 한국어 강사들은 지금 쉬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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