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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샘 Jun 10. 2023

02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

시작은 하였지만  내 맘속은 전쟁터

 대학원 첫 수업 첫 시간 그 떨림과 긴장감은 지금도 한 번씩 생각난다. 나에게는 비전공자라는 약점이 있기도 했고 아는 게 없으니 교수님 질문에 미어캣처럼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이는 많고 전공자도 아니고 해당 학교 출신도 아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첫날 수업은 솔직히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떨림과 긴장은 지금도 기억날 만큼 강했다.  


오 학기를 같이 했던 다섯 명의 신입생 동기와 선배 5명 그리고 복학생 한 명 이렇게 드디어 석사 시절이 시작되었다. 선배 중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인 지인 언니가 있었는데 진짜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다. 서로 바빠 각자 과정을 마치기 급급했지만 물어볼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언니의 추천도 나의 대학원 입학 동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언니는 알았을까 내가 이렇게 계속  박사 과정까지 갈 줄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건 나도 몰랐기에. 지금도 늘 응원해 주고 잘한다고 해주는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발표와 과제가 가장 걱정되었다. 하지만 얼굴과 표정은 무덤덤하게 티를 낼 수 없었다.(물론 알아채는 이가 있기는 했겠지만) 두려움을 내색하는 순간 더 큰 두려움이 나를 지배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발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발표 화면의 키워드만 보고 발표해 보는 건 처음이라 두려웠다.(이것도 나중에 보니 다들 보고 읽더라는 괜히 겁먹었다)


드라마에 나온 회의 발표자처럼 포인터를 사용한 피피티 발표를 잘할 수 있을까?(이런 이런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신제품 발표 뭐 이런 드라마틱한 피티를 생각한 거다.) 뭐 잡다한 생각이 나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닥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모를 리 없었을 테지만 그때는 그냥 발등에 폭죽이 터지는 느낌으로 그 서막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일상적 삶을 살고 있던 중년 아줌마에게 대학원생이 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발표가 가장 큰 난제였다. 첫 시간에 발표 순서를 정했는데 제일 뒤쪽이면 좋겠다고 속으로 간절하게 바랬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몰라서 다들 하고 나서 하면 좀 낫겠지 싶었다. 교수님께서 기존 선배들을 앞 순서로 배치했지만 선배들이 졸업 시험이 코앞이라면서 거절했다. 결국 신입학번 우리가 먼저 발표하게 되었다. 이 때는 선배들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후에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당연한 것을 그때는 서운했다.


발표 순서가 정해지고 교재 발표 부분이 정해지자 나는 오직 내가 발표할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읽고 준비했다. 하지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전체적 맥락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문적 글 읽기와 그냥 독서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학문적 글 읽기 특히 논문이나 학술서는 많이 읽어 습관이 되어야 더 잘 읽히고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나는 학술적 용어와 문체에도 익숙하지 않아 이게 한국말 맞지? 이러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후에 박사 논문을 쓸 때 미친 듯이 논문을 100개 정도 읽으니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떻게 요약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니 정말 당혹스러웠고 두려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혹시 몰라 입학 전 겨울에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파워포인트, 한글, 엑셀을 배워 두었는데 실제 발표 피피티 제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만들어 놓은 디자인을  몇 개 가지고 한 학기 발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만약 컴퓨터도 버벅거렸다면 나는 울면서 발표 준비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동기들 중 국문과 전공이 세 명, 나머지는 비전공자들이었다. 다들 직장인들이라서 저녁 수업이 있는 이 대학원을 선택한 것 같았다. 동기들은 자신들의 근무지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의 국립대를 선택하였고 늘 수업 직전에 도착했다. 수업은 6시 반이었으나 후에 퇴근하는 분들을 위해 7시에 진행되기도 하고  밤 10시쯤 끝났다.


처음에는 동기들도 처음이라 그렇고 서로 바빠서 정말 서먹 서먹했다. 다들 말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늘 수업 직전에 도착해서 수업이 끝나면 다들 지쳐서 집 가기 바빴다. 원래 대학원은 그렇다고는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삭막했다. 이곳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이 대학원 석사 과정에는 다행히 한 학기 시작과 마지막에는 식사 모임이 있었다. 교수님과 함께 하는 자리인데 전 기수가 모두 모였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꼬박꼬박 참석했고 거기서 다음 일정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외국어 시험, 졸업 시험, 다음 학기 수업의 수강 신청 등등 많은 정보를 얻었다. 후에 막학기에는 나도 이런 정보를 뒷기수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정보들은 대학원생들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선택하지 말아야 할 과목을 피할 수도 있었으며 교재도 빌리고 과제에 관한 정보나 팁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잘 활용하는 것이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첫 학기가 무사히 지났고 학점은 잘 나왔다. 최선을 다한 만큼의 결과를 받았다. 이렇게 대학교 때 공부했더라면 지금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다 쓸데없는 생각들. 하지만, 겨우 한 학기를 마쳤고 남은 네 학기와 지도 교수님 결정, 논문 작성 등의 큰 결정 사항이 남아 있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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