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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샘 Jul 03. 2023

04 석사 논문이 시작되다.

누가 논문은 그냥 써지는 거라고 했을까?

 지금 만약 이 길을 선택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한국어 교육에 실제 몸 담고 계시고 활동하시는 분을 지도 교수님으로 선택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어 교육은 국문학, 국어 교육학과는 많이 다르다. 시각이 다르니 그 시각을 이해하고 계속 의지할 분을 찾는 것이 좋다. 이 길을 가다 보니 이런 것들이 보인다.


현재 국립대 한국어 교육은 전공 교수님들보다 국문과 전공 교수님들이 맡고 계셔서 후에 이를 끝까지 지도하고 길을 이끌어 주시기에는 어려우실 수도 있다. 실제 나도 자신들의 전공도 아니신데 받아주신 지도 교수님들께 죄송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후에 세미나 등을 통해 뵌 한국어 교육 전공 교수님들이 한국어 현장에서 많은 분야에서 활동하시면서 자신들의 제자들을 이끌어 주시고 그런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진로도 같이 모색하는 것을 보니 부럽기는 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논문 지도 교수님을 컨택하려면 한국어 교육 쪽으로 유명한 학교를 골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이제 학부에서 막 출발하는 분들은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 석사가 진행되고 박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에 처음부터 잘 선택해서 진행하는 게 시간이나 비용면에서 유리하다.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유명한 교수님을 선택한 후 그 교수님이 계신 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래서 처음 선택했던 지도 교수님을 변경하고 한국어 교육에 더 몸 담고 계신 교수님을 지도 교수님으로 결정하여 찾아뵈었다. 발음 전공 교수님이셨는데 나에게는 발음이 어렵고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라서 양해를 구하고 가장 접근이 쉬운 한국 문화를 선택하고 이를 논문 주제로 삼았다.


박사 시절에도 계속 문화는 관심 분야였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결국 쓰기를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문화 관련 콘텐츠는 계속해보고 싶다. 지금 한국어교육에서 문화는 가장 핫한 분야이기도 하다.


한국어 교재 안의 문화 영역을 선택해서 교재 분석과 질문으로 설문지를 구성하고 이를 수정해 가며 진짜 논문 쓰기에 돌입했다. 먼저 설문이 끝나야 그것을 가지고 결과를 분석할 수 있었기에 설문지를 돌렸는데 지인 찬스를 이용하였다. 이때는 이것이 그렇게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부탁하는 것도 그렇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여러 곳의 한국어 교류원에서 강의하시는 선배님들의 제자들에게 설문을 받았는데 이게 좀 어려웠던 것 같다. 말씀을 건네기도 어려웠고 부탁이라는 게 정말 하는 입장이나 받는 입장이나 쉽지는 않다. 지금은 더 힘들 것 같다. 당시 외국인 학생들이 이런 설문에 지쳤다는 것을 얼핏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사들이 석사 논문을 많이 쓰니 매번 설문이 요청되어서 일 것이다.


설문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쨌든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에 미안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성의 없이 표시한 설문지를 볼 때도 그들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유의미한 설문을 제대로 받으려면 실제 수업을 하는 강사가 그 수업에 맞는 설문을 할 때 일 것이다. 알지만 어쩌겠나 나는 아직 그 길에 들어가지 못한 자였다.


작은 선물과 함께 설문을 의뢰했는데 후에 내가 수업을 해보니 수업 시간도 빠듯한데 이것을 하는 것은 진짜 선생님에게나 학생에게나 민폐였음을 알게 되었다. 선물이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두 경험해 봐야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 새삼스럽다. 그리고 그때 이것을 기꺼이 해주신 한국어 선배 강사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한번 더 전하고 싶다.


설문이 끝나고 결과를 통계처리하면서 결과가 유의미한 건지 아니면 어쩌지 다시 설문지를 돌려야 하나 참 쉽지 않았다. 논문이 처음이라 하나하나 경험하고 미션을 클리어하듯이, 돌다리 건너듯이 해야 하는 게 왜 이리 많은지. 학자의 길을 가시는 분들이 대단해 보였고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조금씩 알아가던 시절이었다.


매주 교수님과 미팅을 하면서 학교 도서관은 9시에 출근했다. 이때 도서관 사서님과도 친해져 인사도 하고 근황도 묻고 이것은 아줌마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첫 학기부터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 소설책을 수시로 빌려서 읽었기에 얼굴은 익혔던 터라 그냥 도서관이 집 같았다. 당시 나의 놀이터는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나의 끼니는 항상 학교 구내식당이었다. 밥은 얼마나 맛있던지.


책을 빌릴 수 있는 자격이 있고 거기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진짜 행운이었다. 지금도 나는 학생의 신분이 그립다. 이제는 졸업생이라 책도 빌릴 수 없고 가서 공부할 수도 없으니 그건 많이 아쉽다. 학생의 신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국립대 도서관 프리패스가 갖고 싶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도 비용을 기꺼이 치르고 구매하겠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다시 스터디 그룹실 예약을 연속으로 해서 매일 거기에서 조금씩 논문을 썼다. 매일매일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논문을 쓰려고 준비 중인 바로 아랫 후배분과 지금도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는 두 후배분들과도 먹고 만나고 하소연하고 그렇게 살았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했다.


논문을 쓰는 건 외로운 일이다. 하소연하고 돌아서도 그건 내일이었고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었다. 다 내가 책임지고 완성하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논문을 쓰려고 준비 중인 후배님 덕에 외롭지 않았고 의지가 많이 되었다. 후에 이 분도 혼자서 씩씩하게 논문을 쓰고 졸업하셨다.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인터넷을 찾기도 많이 했고 대학 동기를 수소문해서 알아보기도 했었다. 그만큼 막막했던 시절이었다.


늦은 밤에도 같이 남아 본인 수업 과제하면서 시간을 보내준 그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이런 나에게 웃음과 응원을 보내준 두 후배님이 계셨는데 나와 다른 일상을 보내는 이야기들이 위로가 되었다. 이 나이에 다른 사람들의 응원의 말은 정말이지 큰 힘이 되었다.


어찌어찌 논문의 완성은 되어 갔고 교수님을 만나는 시간도 잦아졌다. 대충 보시는 것 같은데 교수님의 질문은 참 예리하셨다. 교수님들은 핵심을 잘 보시는 것 같다. 이건 후에 박사 때도 그랬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잘 보시고 질문하셔서 이런 질문을 통해 내용을 보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많은 생각과 답을 찾았던 것 같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막연했던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고 드디어 논문 심사일이 잡혔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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