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운동회 날입니다.
만국기가 하늘에서 펄럭이면 아이들 마음도 펄럭입니다.
6학년 윤이는 운동회를 기다리다 전날에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설쳤습니다.
날씨가 맑아야 하는데 비가 오면 어쩌나,
달리기 계주선수인데 잘 달려야 하는데,
우리 청팀이 이겨야 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때문이었습니다.
운동장 곳곳에 천막이 있고, 그 안에 의자가 놓였습니다. 의자에는 학교 운동회에 함께 참여하는 부모님들이 벌써 앉아 계셨습니다.
하얀 백회로 그려 놓은 반듯한 달리기 선이 보입니다.
조회대 앞에는 선물꾸러미와 경기에 쓸 커다란 공과 주사위, 보자기가 보였습니다.
전교생은 청팀과 홍팀으로 나눠 줄을 섰습니다.
6학년 선수 대표가 나와서 선서를 했습니다. 윤이도 같이 손을 들고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간단한 체조로 몸을 푼 다음 드디어 운동회가 시작입니다.
첫 번째는 1학년 개인 달리기 경기입니다. 갑자기 한 아이가 반대쪽으로 거꾸로 달립니다. 선생님이 쫓아가서 방향을 바꿔 줍니다. 3월에 입학한 1학년은 아직도 모든 게 처음입니다. 운동회 달리기도 처음이라 어느 쪽으로 달려야 하는지 헷갈렸나 봅니다. 줄을 서는 것도 많이 서툽니다. ‘앞으로나란히’를 하는데 친구 허리를 감싸는 아이도 있습니다. 간격을 벌려 서는 것보다 친구랑 노는 게 더 재미있나 봅니다.
큰 공 굴리기는 전교생이 했는데, 5판 3승으로 승패를 결정합니다. 두 판을 연달아진 홍팀이, 연속으로 세 판을 이겼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여유를 부리던 ‘청팀’은 황당해서 고개를 떨굽니다.
‘바람 잡는 특공대’는 고학년 경기로, 커다란 보자기를 잡고 위로 올렸다가 내리면서 바람을 잡는 겁니다. 바람을 위로 불룩하게 모으고, 옆으로 넓게 모으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모두 한 순간에 보자기를 하늘 높이 들었다, 바닥으로 확 내려야 바람을 많이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쉬운 경기가 아닙니다.
방해를 시작합니다.
아이들 모두 바람이 빠지지 않도록 보자기를 꽉 누르고 있는데, 사회자가 말합니다.
- 안경 낀 사람 일어나세요.
- 남자(여자) 친구 있는 사람 일어나세요.
- 예전에 남자(여자) 친구 사귀었던 사람들도 일어나세요.
아이들이 일어나서 나가면 그 자리에 바람이 빠집니다. 남아 있는 아이들은 팔을 더 벌리기도 하고, 아예 눕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순발력이 참 대단합니다.
더 대단한 건 솔직함입니다.
전교생이 보는 데도,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가 있다고 일어난 학생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고학년이 더 많았습니다.
운동회는 배운 걸 실천하는 무대이고, 몸으로 움직이며 협동하는 시간입니다. 나도 잘해야 하지만 옆에 친구와 같이 질서를 지키고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는 작은 학교라 15개의 종목 중 모든 학년이 9 종목을 했습니다. 쉴 때보다 경기에 참여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쉴 때는 물만 얼른 마시고, 자기 팀을 목청껏 응원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자녀들이 보는 앞이라 부모님들은 더 멋진 모습으로 많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많이 나와 주셨는데 선물이 모자랐습니다. 이긴 팀과 진 팀 어머니들은 모두 선물을 받았습니다.
운동회의 마지막 종목은 계주입니다. 청팀과 홍팀은 점수가 비슷비슷해서 계주로 승패가 결정됩니다. 계주 선수로 나온 윤이는 운동장을 바람처럼 달리며, 배턴을 다음 주자에게 주었습니다. 첫 경기에서 아쉽게 진 청팀은 계주에서 조금씩 앞서더니 드디어 먼저 결승선을 넘었습니다. 청팀이 이겼습니다.
윤이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작년에는 졌는데 올해는 이겨서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윤이 친구는 이기던, 지던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그냥 웃었습니다. 함께 팀을 나눠 경기하는 동안 신나게 놀았고, 크게 웃었고, 응원도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윤이는 졸업을 하고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겁니다. 조용하던 윤이가 운동회 달리기 계주선수로 친구들의 박수를 많이 받았습니다. 윤이 친구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남자 친구가 있었다고 말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쑥쑥 몸과 마음이 자라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