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뮤익은 1958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그는 30년 동안 48점 작품만 완성했다.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오랫동안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다. 친구와 둘이 안국역에서 내려 지도를 보며 걸어갔다. 도착하고 보니 줄이 굉장히 길었다. 매표하는 줄도, 관람을 기다리는 줄도, 심지어 다음 전시관을 들어가는 줄도 길어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마지막 작품은 다음 일정 때문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이삼십 대가 가장 많이 보는 전시라더니 연인들과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젊은 연인> 앞에서 보면 다정하고 예쁜 십 대 연인의 모습이다. 남자는 귓속말로 사랑을 속삭이며 여자를 내려다보고, 여자는 집중해서 남자의 말을 듣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자 눈은 남자 얼굴을 쳐다보거나, 웃지 않고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남자는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여자는 왼손을 바지선에 붙였다. 둘은 감싸 안은 듯 밀착되어 보인다.
뒤에서 보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 팔목을 쥐고 있고, 여자는 손을 살짝 올려서 빼려는 듯 보인다. 여자의 다른 손은 차례자세로 경직되어 보인다. 긴장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무슨 일인지, 뭐라고 말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앞과 뒤, 겉과 속이 다르다는데 젊은 연인도 그런가 보다. 마냥 행복하거나 들뜬 사귐은 아닌가 보다. 복잡하고 미묘하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나 보다.
<쇼핑하는 여인>은 보는 순간 직장 다니며 아이 둘을 키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남이 보면 저런 표정이었을까? 아기를 앞으로 안고 추울까 봐 외투로 꽁꽁 감싸 안은 엄마. 양손에는 쇼핑한 물건을 들고 있다. 아가는 엄마를 올려다보는데, 엄마는 아가눈을 미처 보지 못한다. 엄마 눈은 아무 곳도 보지 않은 듯 보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쇼핑할 때 뭐 빠뜨린 거 없나? 직장에서 뭐 놓친 일은 없나? 아이는 열이 있는 거 아닌가? 신호등은 왜 안 바뀌는 거야? 이 녀석은 언제나 커서 걸어 다니나?’
엄마의 어깨는 아기를 안은 어깨띠의 무게와 양손에 든 쇼핑봉투의 무게로 축 쳐졌다. 무거워 보인다.
하지만 난 짐작할 수 있다. 저 여인은 집으로 가면 활기 넘치는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다. 아기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고, 같이 놀아 줄 거다. 내가 예전에 그랬던 기억이 나서 <쇼핑하는 여인>을 보는 내내 마음이 짠하고 아련했다.
<배에 탄 남자>는 마지막 전시장에 있었다. 어둠 컴컴한 곳에 있는 배는 남자 혼자 앉아 있기에는 너무 커 보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혼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남자는 상대적으로 아주 작아 보였다. 노를 젓거나 그물을 던질 생각이 없어 보여 어부는 아닌 것 같다. 남자의 미간과 어깨 근육이 경직되어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는 남자는 ‘무슨 일이 생겼나?’ 살피는 것처럼 보인다. 팔짱을 끼고 내려다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지켜보는 남자. 배가 흘러가는 대로 맡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론 뮤익의 전시는 입체적이라 사방을 돌면서 관람할 수 있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작품 주인공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진다.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 앞과 뒤에서 반전을 찾고 싶어진다. 축소하거나 확대한 작품 모두 주인공들은 주근깨와 솜털이 보일 정도로 생생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관람객들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사진을 찍어도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머무른다. 우리는 그들의 세계를 추측만 할 뿐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