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은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by 맑은샘

관찰의 시작은 관심이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아이, 친하고 싶은 친구를 유심히 보게 된다. 꽃과 나무나 하늘과 바람처럼 흥미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기도 한다. 나는 학교에서는 학생, 집에서는 딸 아들이 관찰 1순위였다.


어릴 적 아들은 순둥이였다. 잘 먹고 잘 자고 벌떡 일어나서 씩씩하게 어린이집을 갔다. 잘 아프지도 않았다. 어린이집 가서도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한 번도 안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이 6학년이 되더니 학교 가기가 싫다고 했다. 선생님이 저학년을 오래 하셔서, 6학년 아이들 마음을 잘 몰라 준다는 거였다. 그러고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렸다.


나는 아들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아들은 늘 모범생이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반듯하게 보였다. (나중에 아들은 엄마 앞에서 신경 썼다고, 엄마가 그런 모습을 좋아하니까, 엄마 눈에 그렇게 보였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 같은 말을 했다. 그러자 아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 집에도 선생님이 있는 거 같아요.”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거 같았다.

그 당시 내가 관찰한 아들은 이런 모습이었다.

- 조퇴하고,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

(큰일 났어, 수업을 빠져? 문제가 심각하구나!)

- 밤늦게까지 거실에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

(컴퓨터를 없애야 하나?)

- 게임해서 딴 게임머니를 친구(선배)에게 팔았다.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 아닌가?)

- 판 돈으로 다른 게임머니를 샀다
(돈을 함부로 쓰는군)

- 용돈을 받으면 거의 다 게임에 썼다
(게임 중독을 의심해야 하나?)

나는 아들의 행동을 나쁜 쪽으로만 평가하고 예측했다. 아들이 게임에 빠진 걸 보고 공부에 방해되고, 그런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불안했다.

6학년 때 아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처럼 말하지 말고, 그냥 내 편 좀 들어주면 안 돼요?”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아들에게 그러면 안 되는 것과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수십 번 반복해서 가르쳤다. 그게 아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사춘기를 잘 넘긴 건 사랑 가득한 엄마의 평가와 지적이 아니었다. 의외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본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는 아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 아이들이 게임하는 시기도 있는 거지

- 지금 실컷 하면 나중엔 지겨워서 안 한다던데

- 머리가 있어야 게임도 잘하는 거지

- 자꾸 잃는 거보다 이겨서 돈으로 바꾸는 건데 뭐!

아빠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고, 인정했다. 아들은 그걸 아빠의 사랑이라고 기억한다.


관찰은 있는 그대로 보는 거다. 그리고 그 뒤에 ‘씨앗’이 있음을 기대하는 거다. 그 씨앗은 멋지게 자랄 아이의 ‘가능성과 희망’이라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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