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대화다

by 맑은샘

1988년 첫 발령을 받고, 이듬해에 6학년을 맡았다. 그때는 전 과목을 담임교사가 다 가르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2시간 수업을 했다. 4월부터는 목이 아파서 퇴근 후에 병원 치료를 받았다. ‘내일은 좀 살살해야지, 작게 말해야지’ 결심했지만, 아이들 앞에만 서면 소용없었다. 저절로 목소리가 커지고 높아졌다. 주로 교사가 설명하고, 아이들은 조용히 듣는 수업이었다.

6학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수업은 ‘체육’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벌써 운동장을 돌고, 준비운동을 하고 기다렸다. 수업 준비를 가장 잘하는 시간이었다. 줄도 잘 서고, 말도 별로 필요 없었다. 아이들은 ‘그날 배울 체육 수업이 뭘까?’ 하는 기대감으로 집중했다. 혹시 비가 오거나, 급한 일이 생겨 못하게 되면, 아이들 입은 불쑥 나왔고, 다음에 꼭 보충해 달라고 했다.


특별실이 따로 없어서 체육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은 교실에서 했다. 칠판과 교탁이 있는 교실 앞쪽이 중심이었다. 칠판에 나와서 수학 문제도 풀고, 앞에 나와서 발표도 했다. 혼날 때도 앞에 나와서 야단을 맞았다.

요즘 수업은 많이 달라졌다. 우선 교실 앞쪽 교탁이 사라졌다. 수업 시간에 교사는 앞에서 얘기하는 대신 아이들 자리에 가서 제대로 하는지 살핀다. 혹시 이해를 못 한 아이들은 따로 지도하고 가르친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업은 ‘체육이나 미술, 실험이나 체험 수업’이다. 과학실, 영어실, 컴퓨터실, 체육관, 놀이체육실에서 하는 수업을 좋아한다. 그 시간이 아이들의 ‘숨구멍’이다. 교실을 이동하고, 다른 선생님과 수업을 하니 더 기다려진다.


아이들과 교사가 바라보는 수업에는 차이가 있다. 교사는 계획대로 학습활동을 잘하고, 아이들 활동을 제대로 했을 때 잘한 수업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교사의 계획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참여하고, 발표하고, 새로운 걸 배웠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있어야 잘한 수업이다.

2학년 담임을 할 때다. 월요일 1교시 국어 시간이었다. 주말에 어떻게 지냈는지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수업을 하려고 계획했다. 그 시간은 계획대로 수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아이들 모두가 주말 동안 있었던 경험을 말했고, 그 경험에 열렬한 반응까지 보였다. “그래서? 그다음은?” 팝콘처럼 대화가 쏟아졌다. 나는 교과서를 들쳐 보며 얼른 아이들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연결되었다. 동네 빵집이 사라진 이야기에서 빵집할머니가 119에 실려 간 이야기로, 119는 병원 이야기로, 다시 아이들이 입원한 경험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수업의 끝은 아이들의 아쉬움이었다.

“선생님, 오늘 수업은 왜 이렇게 빨리 끝났어요? 정말 재밌었는데.”

나는 난감했고, 아이들은 감동했다.

수업은 아이들과의 대화다. 아이들이 바라는 수업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생생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교사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는 수업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가? 수업에 임하는 교사의 ‘고민, 과제,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잘 살펴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요즘 아이들이 놀이는 뭔지……. 아이들의 흥미와 경험에 연결하면 아이들은 수업에 빠져든다. 수업은 교사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병원 다니면서 왜 그렇게 목청껏 외쳤을까? 수업은 웅변이 아니고 아이들과의 소통이고 대화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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