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공그림책⑩작은집이야기

by 맑은샘

제주도 바닷가 맨 끝자락 작은 돌담집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 사이로 바람이 스치면

이사온지 얼마 안 된 내 마음에도 찬 바람이 불었어.

돌담집은 작고 볼품없고 초라해서

다시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그 작은 돌담집은 몇 년 동안

우리 집이었어.

밤마다 볼일을 보려면 바깥으로 나가

바닷가 쪽 더 작은 돌담 변소로 가야 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몸이 막 떨렸어.

그럴 때 저 멀리 등대가 깜박 깜박였어.

‘나도 여기 있어.’

하면서.


돌담집에 쥐가 많아 노란 고양이를 키웠는데

나를 보면 기다렸다는 듯 불쑥 내 방으로 들어왔다,

뜰로 나갔다, 집 밖으로 놀러 다니더니

얼마 후에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어.

그 집은 길보다 낮아서

돌계단을 서너 개 내려가

뜰이 나오는 자그마한 초가지붕이었어.


밤에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질 듯 수많은 별이 반겨 주고

아침이면 제일 먼저 파도 소리가

내 잠을 깨워주려고 달려왔지만

난 거기서 참 많이 외로웠어.

나는 가끔 돌담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어.

‘외로워. 너무 쓸쓸해.’


다시 서울로 오고

난 한동안 그 바닷가 작은 돌담집을 잊고 지냈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학교에 다니면서 하루, 한 달, 일 년,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이 흘렀어.


'작은 집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그 돌담 작은 집이 생각났어.

‘없어졌겠지. 제주도 바닷가 근처라 멋진 펜션이나, 콘도로 바뀌었을 거야.’


나는 작은 집이 보고 싶고 궁금해서 오랜만에 제주도로 갔어.

그 주변이 많이 바뀌어서 찾기가 힘들었어.

바닷가 근처라 올레길이 생기고

기념관, 옛날 빨래터도 생겼더라고.

사라졌나 보다 아쉬워하며 지나가는데

저쪽 신식 건물 사이로 얼핏 익숙한 게 보였어.

뭐지?

제일 먼저 내 눈에 띈 건 돌담이었어.

마치 '안녕, 반가워!' 나에게 인사하는 것 같았어.

나는 예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후다닥 달려갔어.

내가 다가서자 돌담이 나에게 속삭였어.

‘괜찮니? 이제는 외롭지 않아?’

나는 울컥 눈물이 났어.

‘응, 괜찮아. 저기 봐. 딸도 같이 왔어.’


돌담집은 예전 그대로였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지붕만 초가에서 기와로 바뀌고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어.

돌담 변소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창고로,

옥상은 바닷가 전망을 볼 수 있는 돌담 테라스가 되었더라고.

‘너는 괜찮아?’

나는 돌담을 어루만지며 물었어.

예전에는 뻥 뚫린 구멍들이 울룩불룩 까칠했는데

그날은 토돌 토돌 부드럽고 포근하더라고.

‘음, 좋아. 특히 오늘은 아주 좋아. 너를 다시 만나서.’

‘나도 그래. 너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정말 반가워.’

나는 한참 동안 돌담을 어루만졌어.

돌담은 기분 좋은 듯 배시시 웃더라고.




이 돌담집을 다시 만나게 해 준 책,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를 소개할게.


옛날 아주 먼 옛날,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어.

아담하고 아름다운 작은 집이었어.

그 집을 지은 사람이 말했어.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절대 팔지 않겠어.

이 작은 집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거야.”


작은 집은 언덕 위에 올라앉아 무척 행복했어.

떠오르는 해, 지는 해를 보았고

오늘이 가면 또 내일이 찾아왔어.

작은 집은 밤이 되면 별을 바라보고

달이 없는 밤에는 별을 바라보고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을 보았어.

작은 집은 도시라는 데가 궁금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작은 집은 꽃과 나무와 꼬마들을 지켜봤어.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고…….

사과나무는 늙어갔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도시로 떠났어.

도시의 불빛이 가깝게 보였어.


어느 날, 작은 집 앞으로 도로가 만들어지고

트럭과 자동차가 지나가고, 커다란 건물들이 생겨났어.

밤이 되어도 작은 집은 조용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았어.

작은집은 데이지 꽃과 들판과 사과나무들이 그리웠어.

사람들은 작은 집 주위에 35층짜리 건물을 세웠어.


이제 작은 집은 겨우 한 낮에만 해를 볼 수 있었어.

작은집은 도시에서 사는 게 싫었어.

밤이면 시골 마을과 데이지 꽃 들판과 사과나무 꿈을 꿨어.

작은 집은 너무 슬프고 외로웠어.


어느 화창한 봄날,

작은 집을 튼튼하게 지은 사람의 손녀의 손녀가 그 앞을 지나갔어.

“이 작은 집은 우리 할머니가 살던 집이랑 똑같이 생겼군요.”

이 집이 할머니 집이라는 걸 알아 내고는 작은 집을 옮기기로 했어.

작은 집은 겁이 났지만 꾹 참고 견뎠어.


길 따라, 작은 길 따라

먼 시골 마을에 다 달았어.

조그만 언덕,

주위에는 사과나무가 있었어.

사람들은 언덕 꼭대기에 땅을 파고

천천히 작은 집을 옮겼어.


작은 집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어.

해도 달도 별도 볼 수 있었어.

이제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어.

작은 집은 이제 행복하고 평화로웠어.


keyword
이전 09화사오공그림책⑨장수탕선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