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공그림책⑨장수탕선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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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어렸을 적에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우리는 동네 목욕탕에 갔어.

엄마는 가기 싫어하는 나와 남동생, 사 남매를 모두 데리고 갔어.

어떤 집은 아버지가 딸도 데리고 목욕탕을 간다는데

우리 아버지는 딸은 커녕 아들도 데려가지 않았어.

아예 목욕탕 가는 걸 너무너무 싫어해서

요리조리 핑계를 대고 목욕탕 근처에는 얼씬도 안 했어.

우리 집은 엄마와 아버지가 너무 달랐어.

엄마는 아침저녁 걸레질에 청소하고,

저녁마다 아이들 깨끗이 씻기고

매주 목욕하고 이불 빨래를 했어.


아버지는 너무 그러지 말라, 그러면 더 약해진다며

잘 씻지도 않고 냄새를 풍겨서 엄마한테 혼났어.

우리는 모두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았어.

뜨겁고 숨차고 답답한 목욕탕에 들어가길 다 싫어해서

어쩔 수 없이 목욕탕에 가도, 들어가자마자 멀리 도망쳤어.

엄마한테 붙잡히는 순서대로 때를 밀어야 하니까

가능한 제일 늦게 하려고 숨는 거야.


엄마는 내 손을 확 휘어잡고는

뜨거운 탕에 같이 들어가자고 잡아당겼어.

나가고 싶어도 엄마가 나를 꾹꾹 눌러서 나갈 수가 없었어.

겨우 탕 밖으로 나오면 엄마는 팔팔한 기운으로 내 몸 구석구석 때를 밀었어.


“아, 아!”

혹시나 약하게 밀어줄까 아픈 시늉을 하면

엄마는 후드득 떨어지는 때를 가리키며

“이거 봐라. 이거 봐!”

아주 흥이 나서 더 신나게 밀었어.


내가 일등,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

네 번째쯤 되면 엄마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헉헉거렸어.

그때는 간지럽다고 몸을 비틀기라도 하면 등짝을 맞았지.

드디어 엄마 손을 다 거친 우리들은 신나게 목욕탕을 휘젓고 다녔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술래잡기도 하고

수영을 하고 물싸움을 했어.

슬며시 목욕탕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려고 했지.


그때였어.

갑자기 첫째 동생이 얼음처럼 몸이 굳었어.

예쁘장한 여자애가 남동생을 가리키며 소리쳤거든.

“어머, 너 여탕에는 왜 왔어?”

물개같이 활개 치던 동생은 순간 꿈틀 지렁이처럼 벽에 숨었어.


여자애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어.

“너도 아빠랑 남탕 간 적 있잖아.”

“엄마, 그건 유치원 때지. 초등학교 때부터는 안 갔다고!”

그 여자애는 자기 엄마에게 소리쳤어.

드디어 그 후로 우리 집도 바뀌었어.

남동생들은 아버지와 남탕에 가고, 나는 엄마랑 여탕에 가는 걸로.

나는 세 시간 넘게 목욕탕에서 있었는데

남동생들은 한 시간도 안 되어 집에 왔더라고.


혼자 여탕에 가니 오붓하고 좋을 줄 알았는데

웬걸! 심심하고 지루해서 더 가기 싫었어.

누구랑 놀 사람이 있어야지.

난 빨리 밖에 나가고 싶은데 혼자 갈 수도 없고.

그래서 혼자 냉탕을 왔다 갔다 했지.



나처럼 냉탕을 좋아하던 아이가 또 있더라고. 바로 덕지야.

덕지 엄마도 목욕 가는 걸 무척 좋아했어.

새로 생긴 좋은 스파들도 있건만 늘 오래된 장수탕으로 갔어.

덕지가 기다리는 건 두 가지.

때를 밀면 엄마가 사주는 요구르트랑

풍덩풍덩 혼자 노는 냉탕.


그 냉탕에 이상한 할머니가 나타났어!


할머니는 날개옷을 잃어버려 여기서 지내고 있다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했어.

덕지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꾹 참고 들어 드렸지.

그랬더니, 이럴 수가!

할머니는 냉탕에서 노는 달인이었어.


쏴아아, 폭포수 아래서 버티기!

첨벙첨벙, 바가지 타고 물장구치기!

꼬르륵 꼬록, 탕 속에서 숨 참기!


신나게 놀고 난 할머니는 수줍게 물었어.

“그런데 얘야, 저게 도대체 뭐냐?

아주 맛나게들 먹더구나.”

“요구르트요.”

“요……요구룽?”


덕지는 뜨거운 탕에 들어가 때를 불리고

눈물이 나려는 걸 꾹꾹 참고 때를 밀었어.


드디어 엄마가 요구르트를 하나 사 주시자 얼른 할머니께 드렸어.


목은 조금 말랐지만 기분이 좋았어.

덕지는 다음에 또 할머니랑 놀고 싶었어.

그날 밤, 덕지는 머리가 아프고 콧물이 났어.

머리가 지끈지끈 목구멍이 따끔따끔 너무 아팠어.


그때!

“덕지야, 요구릉 고맙다. 얼른 나아라.”

다음날 아침, 덕지는 거짓말처럼 다 나았어.

“고마워요, 선녀 할머니!

또 만나요, 장수탕 선녀님!”



아, 어렸을 때

엄마랑 목욕을 하러 갈 때마다 지루하고 재미없었는데

이런 장수탕 선녀님을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혹시 이런 선녀님 만난 사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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