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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50대 사오공그림책 이야기
08화
사오공그림책⑧우리 할아버지
- 할아버지도 아기였던 때가 있어요?
by
맑은샘
Sep 8. 2021
우리 할아버지는 파마한 것 같은 은발 곱슬머리였어.
할아버지 집에 가면 활짝 웃으며 우리를 안아 주었어.
그러곤 맨 먼저 손발을 씻고 오라고 했어.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 당연히 그러지만
반백 년도 전에 그러다니 우린 입이 불쑥 나왔어.
할아버지는 얼마나 자랐는지 노래를 들어보자고 했어.
반갑다고 그러는 줄 알지만 우린 정말 도망가고 싶었어.
부끄럽다고, 하기 싫다고
해도
안 할 수 없었어.
할아버지는 끝까지, 할 때까지 기다렸거든.
나는 그동안 배운 피아노를 한 곡 연주했고
동생은 목청껏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불렀어.
막냇동생은 늘 곰 세 마리를 불렀어.
그래도 괜찮아.
할아버지는 늘 처음 듣는 것처럼 크게 박수를 치며 잘했다고 하셨어.
우리 차례가 끝나면 할아버지가 선뜩 앞으로 나와 노래를 하셨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할아버지는 쪽배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는데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몰랐어.
이쪽저쪽을 오가며 크게 율동을 하던 할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
우리는 할아버지한테 과자 선물을 받았어.
할아버지는 평소에 먹지 못하는 동물 모양의 비스킷, 젤리, 초콜릿을 주셨어.
엄마가 어렸을 적에도 할아버지는 그러셨대.
출장 갔다 오실 때 우리나라에 없는 잠자리 날개 같은 원피스를 사 오거나
구경도 못 하던 특별한 과자를 사 와서 엄마는 할아버지를 참 좋아했대.
할아버지랑 노는 건 참 재밌었어.
소꿉놀이를 하면 할아버지는 우리를 텃밭으로 데려갔어.
거기서 토마토, 가지를 따서 음식을 만들도록 해 줬어.
우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텃밭에서
토마토로 샐러드를 만들고,
나뭇잎으로 반찬을 만들고
고추랑 가지를 따서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렸어.
할아버지는 얌얌얌 소리를 내며 진짜 먹는 것처럼 해서
우리를 기쁘게 했지.
할아버지는 가끔 마술사 같았어.
엄마는 할아버지 특기가 세상에 없는 걸 생각해 내는 거랬어.
할아버지는 골똘히 생각하고 뭔가를 재고 그렸어.
그럴 때 우리는 할아버지를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지.
어릴 때 나는 놀이터에 가면 그네만 타고 싶었어.
그때는 미끄럼틀이나 시소가 학교 놀이터에만 있었는데
다들 그네를 타려고 기다려서 몇 번 못 탔거든.
그걸 안 할아버지는 나를 위한 그네를 만들어주셨어.
어디
다 그네를 만들어주셨는줄 알아?
바로바로 대문!
할아버지 집은 대문이 있는 한옥이었는데
대문 위에다 그네를 매달아 주셨어.
그네를
탈때는 대문을 활짝 열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하늘을 날 듯 그네를 탔어.
얼마나 재미있던지 할아버지 집에서 가장 오랫동안 노는 곳이 바로 거기였어.
할아버지는 바쁜 아버지보다 나와 더 많이 놀아주셨어.
내 마음을 잘 알고 이해해 주
셨어.
난 이런 생각이 들었어.
'할아버지가 정말 내 친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할아버지를 읽다 보니 이런 말이 나와.
“할아버지도 아기였던 때가 있나요?”
아마 에밀리도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고 싶었나 봐.
꼬마 에밀리는 할아버지 댁에 자주 놀러 갔어.
둘은 화초를 함께 가꾸고
소꿉장난도 하고
노래도 불렀어.
에밀리는 할아버지에게 곰이 여자아이로 변하고
흙으로 딸기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고 말해 주었어.
안 그러면 할아버지는 잘 몰랐거든.
에밀리도 모르는 게 있었어.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나면 한길에 나와 굴렁쇠를 굴리며 놀았다는 걸
할아버지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말이야.
여름
, 할아버지와 바닷가에 가서
모래성을 쌓으며 맛있는 막대사탕을 먹다가
에밀리는 말했어.
“할아버지, 이 막대사탕 다 먹으면 또 사 주실래요?
내가 뭐 만드는데, 이 막대가 있어야 되거든요.”
가을, 낚시를 하러 강으로 간 에밀리는
물고
기를 잡아 저녁에 요리해 먹자는 할아버지 말에
고래를 잡으면 어떡하냐며 걱정을 했어.
겨울, 크리스마스 때가 되자
할아버지는 친구랑 언덕길을 쏜살같이 내려가던 어린 시절을 기억했지만
에밀리는 서 있기만 해도 미끄러질 것 같은 할아버지를 보고 불안했어.
에밀리는 할아버지랑 밖에서 놀 수 없었어.
결국 할아버지는 떠나고 에밀리 혼자 할아버지가 앉던 빈 의자를 보고 있어.
마지막 장면의 빈 의자를 보니까 할아버지 생각이 났어.
우리 앞에서 쪽배를 부르며 힘차게 율동을 하시던 할아버지.
마치 어린 아이처럼 , 나의 친구처럼.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그네.
내가 탔던 세상 그 어떤 그네보다 가장 잊지 못할 그네였어.
할아버지, 참 멋진 우리 할아버지!
keyword
마술
우리할아버지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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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 저자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 곁에서 편을 들어주고 응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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