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공그림책⑥종이봉지공주

- 반장 친구 공주야, 잘 살고 있지?

by 맑은샘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인어공주

어릴 적 많이 보던 이야기책에 나오는 공주들이야.


공주들은 예쁘고, 착하고, 마음씨 좋고

상냥하고 친절해.


초등학교 3학년 우리 반 반장 이름이 공주였어.

예쁘고 공부 잘하고 목소리까지 고왔어.


국어책을 읽을 때

엄마가 나오면 엄마 목소리로

아이가 나오면 아이 목소리로 읽었어.

고 있던 내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실감 났어.


동화구연대회를 했는데 우리 반 대표로 뽑혔고

학교 전체에서 최우수 상을 받았어.


반장은 자기 생일이라고 우리 반 아이들을 초대했어.

지금이야 생일파티를 많이 했지만 그때는 드문 일이었어.

아마 반장인 데다 학교 대표로 상까지 받아서 그랬나 봐.


나는 정성껏 포장한 공책 몇 권을 들고

친구들과 같이 반장네 집으로 갔어.


반장 엄마가 어서 오라고 반갑게 맞아 줬어.

넓은 거실에 상을 펴놓고 음식을 잔뜩 차려 놓았더라고.


반장은 주인공답게 손님을 맞았는데

우리는 입이 딱 벌어졌어.


분홍 드레스에 왕관 머리띠까지 하고 있었거든.

“와, 너 진짜 공주 같다!”

우리는 다들 반장 옆에 서서

드레스를 만져 보고, 머리띠도 한 번씩 해 보았어.


그날 무슨 음식을 먹고, 무얼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홍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던 왕관까지 쓴 반장만 생각나.

지금도 공주 하면 내 기억 속에는 제일 먼저 그 친구가 떠올라.


우리는 공주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 왔잖아.

예쁜 옷을 입고 상냥하게 미소를 짓고

가는 허리에 확 퍼진 드레스를 입은 공주 말이야.


이 그림책은 그래서 끌렸어.

종이봉지 공주, 이름부터 참 특이하잖아.

공주가 아닌가? 웬 종이 봉지가 나오지?


엘리자베스 공주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공주였어.

멋진 성에 살고

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어.

결혼을 약속한 멋진 로널드 왕자도 있고 말이야.


어느 날 무서운 용 한 마리가 나타났어.

용은 공주의 성을 부수고,

뜨거운 불길을 내뿜어 공주 옷을 불태웠어.

그리고 로널드 왕자를 잡아갔지.



공주는 왕자를 구해오기로 했어.

그런데 옷이 몽땅 불타버려서 입을 옷이 없었어.

그때 종이 봉지 한 장이 눈에 띄었어.


공주는 종이봉지를 주워 입고 용을 찾아 나섰어.

용이 지나간 곳은 숲이 타고 말뼈가 뒹굴어서 찾기가 쉬웠어.


공주는 용이 살고 있는 동굴 앞에 다다랐어.

큰 문을 쿵쿵 두드렸어. 용은 문을 열더니 말했어.

“와, 공주님이시군! 난 공주를 좋아하지.

그런데 배도 부르고 지금 몹시 바빠. 내일 다시 와.”


공주는 다시 문을 두드렸어.

“잠깐만!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가장 용감한 용이라던데, 정말이니?”

“그럼, 정말이지.”

“네가 불을 한 번 내뿜으면 숲 열 군데가 한꺼번에 타버린다던데, 정말이니?”
용은 숨을 깊이 몰아 쉬더니 불을 내뿜었어. 숲 쉰 군데가 불에 탔어.


공주가 멋지다고 했더니 용은 다시 또 불을 내뿜었어. 숲 백 군데가 탔어.

공주가 무시무시하구나 했더니 이번에 용은 또 불을 내뿜었는데 헛바람만 나왔어.


공주는 또 물었어.

“용아, 네가 하늘로 날아오르면 십 초 안에 세상을 한 바퀴 돌아올 수 있다는데 정말이니?”
용은 정말이라며 꼭 십 초 만에 돌아왔어.

“너 참 멋지구나. 한번 더 해 봐.”
이번에는 이십 초가 걸려 돌아온 용은 지쳐서 곯아떨어졌어.


공주가 용을 불렀지만 너무 지쳐서 꼼짝도 하지 않았어.

공주는 용을 훌쩍 뛰어넘어 동굴 문을 열었어.

동굴 안에는 로널드 왕자가 있었어.


왕자는 공주를 보고 달려왔어.

“나를 위해 이 먼 곳까지 오고

나를 위해 용을 물리치는 걸 다 봤어.

멋진 공주, 당신은 정말 대단해.

나와 결혼해 주겠소?”

이럴 줄 알았거든!


그런데 왕자는 대뜸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너 꼴이 엉망이구나! 탄 냄새 하며 온통 헝클어진 머리 하며

더럽고 찢어진 종이봉지는 뭐냐? 진짜 공주처럼 챙겨 입고 다시 와!”


공주가 소리쳤어.

“그래. 넌 옷도 멋지고 머리도 단정해. 진짜 왕자 같아.

하지만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



그러고 보니 왕자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용에게 잡혀가기 전이나 후나

똑같은 멋진 옷에 단정한 머리에.

그래서 여전히 예쁜 공주를 원하나 봐.

공주는 정말 많이 변했는데 말이야.


혹시 내 친구 반장 공주도 그런 거 아닐까?

내 기억 속에서만 분홍 드레스에 왕관 머리띠를 한 모습으로 남아있지

실제로는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나만 혼자 그런 모습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었을지.


아마 내 반장 친구 공주도 이 종이봉지 공주처럼

지혜롭고 용감하게 당찬 아줌마로

씩씩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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