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해 줄래?(2)

- 난 엄마랑 결혼할 건대!

by 맑은샘

키가 작은 광미는 앞자리에 앉는데 그 분단 제일 뒷줄에는 순우가 있었다. 광미와 순우는 많이 달랐다. 광미는 아빠와 둘이 살지만, 순우는 엄마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살았다. 광미는 학교에 오면 책가방을 자기 자리에 두고 교실 여기저기를 다니며 친구들과 얘기를 했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해서 찾아다니는 아이였다. 순우는 학교에 와서 자리에 앉으면 웬만하면 집에 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별로 없고 물으면 겨우 "응, 아니!" 로만 대답하고 오로지 엄마가 있는 집을 그리워하는 아이였다.

광미는 그런 순우가 그림자 같은 아이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순우는 광미뿐만 아니라 우리 반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두 아이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이 생겼다.


순우가 학교 가기를 거부한 것이다. 순우 엄마 말로는 처음에는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준다거나, 원하는 물건을 사주면서 타일러서 보냈단다. 그렇게 잘 적응하는가 싶었는데 얼마 전부터, 정확하게는 직장 다니던 엄마가 잠시 쉬게 되자, 순우가 막무가내로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며 떼를 쓴다는 거였다. 나는 우선 엄마가 순우를 데리고 학교에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순우는 억지로 학교에 온 듯 보였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복도에 서 있었다.

나는 순우에게 물었다.

“교실에 들어가서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할까?”

순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순우는 그렇게 복도에서 한 시간 넘게 버티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엄마랑 같이 들어갈까?”

순우가 엄마를 쳐다보더니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교실에다 순우 엄마가 앉을자리를 마련했다. 순우는 맨 뒤에 엄마와 같이 앉았다. 순우는 편안해 보였고 엄마는 몸 둘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순우 엄마가 우리 교실에 오자 광미의 눈이 반짝거렸다. 새로운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광미는 쉬는 시간이 되자 순우 자리로 달려갔다.

“아줌마, 나 아줌마 봤어요.”

순우 엄마는 광미가 이야기를 걸어주자 반가워하며 되물었다.

“언제 나를 봤어?”

“입학식 할 때도 아줌마가 우리 옆에 있었잖아요.”

순우 엄마는 짧게 “아, 그랬지!” 중얼거렸다. 하긴 그때부터 순우는 엄마와 떨어지는 걸 싫어했다. 다른 부모님들은 모두 뒤에 서서 입학식에 참여했는데 순우 엄마는 순우가 손을 잡고 놓지 않아서 입학식 내내 순우 옆에 서 있었다. 그걸 광미가 본 것이다.


순우는 자기 엄마가 광미랑 자꾸 얘기하게 싫었는지 엄마 손을 잡아당겼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표시였다. 순우 엄마는 광미에게 말했다.

“참 예쁘게 생겼구나. 우리 순우랑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광미는 그제야 순우 엄마에게서 눈을 떼서 순우를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 보는 아이처럼 낯설어하면서.

광미가 먼저 순우에게 말을 걸었다.

“넌 좋겠다. 이렇게 엄마랑 같이 학교에 있어서!”

다른 아이들은 엄마랑 같이 교실에 있는 순우가 일 학년답지 않다고 느끼는데 광미는 진심으로 부러운 눈치였다. 순우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엄마 손만 꼬옥 잡았다.


순우는 생각보다 고집이 세었다. 엄마와 함께 학교 올 때는 괜찮지만 혼자 교실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는 엄마가 복도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엄마의 얼굴이 복도 유리창에 보여야 했다. 순우 엄마는 다리가 아파도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순우를 기다려야 했다.

순우 엄마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유치원 다닐 때까지 할머니가 돌보고 엄마는 직장을 다녔는데 요즘 엄마가 집에 있는 걸 알고부터 이상해졌다며 속상해했다.


그때부터 광미는 자주 순우 자리를 찾아갔다. 광미 눈에는 순우가 정말 행운아처럼 보였는지 순우에게 가기만 하면 엄마 얘기를 했다.

너희 엄마랑 오늘도 같이 왔어? 둘이 걸어왔어? 오늘은 뭐해? 나도 같이 가도 될까?

처음에 고개만 끄덕이던 순우는 얘기가 길어질수록 고갯짓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광미는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가 순우 엄마랑 종알종알 교실에서 있었던 일도 이야기를 했다.

순우는 그냥 엄마 옆에 아무 말 없이 있다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날 공부가 끝난 후 나는 순우와 엄마가 있는 자리에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순우야, 엄마가 복도에서 기다리는 거 봤지?”

“네.”

순우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는 네가 공부 끝날 때까지 복도에 계셨어. 교실이든 복도든 집이든 네가 보든, 보지 않든 엄마는 늘 순우를 기다리셔. 어디 가지 않고 말이야. 엄마가 복도에서 기다리니까 어땠어?”

좋다고 말하는 순우 대답에 엄마는 “휴” 한숨을 쉬었다.


“순우 엄마는 복도에서 기다리니까 어떠셨어요?”
순우 엄마는 순우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복도에서 계속 기다리니까 너무 힘들어요.”

나는 엄마와 미리 의논한 말을 순우에게 말했다.

“순우야, 엄마가 너무 힘드시니까 복도에서 기다리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면 어떨까?”

순우는 금방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순우야! 공부 끝나고 일 층 현관에서 만나면 어떨까?”

순우는 여전히 싫은 기색이었지만 엄마가 학교에서 기다린다니 고개를 흔들지는 않았다.

순우 엄마는 순우에게 말했다.

“순우야, 엄마가 현관에서 기다릴게. 혹시 순우가 부르면 갈 수 있게 말이야.!”

순우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엄마를 쳐다보았다.


다음날 순우 자리가 비어서 지각을 하나 싶었다. 그런데 광미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선생님, 순우가 학교에 왔는데 현관에서 엄마랑 같이 서 있어요. 올라오자고 말해도 듣지 않아요.”

나는 일 층으로 내려갔다. 순우는 엄마와 헤어지는 게 싫은지 작은 나무처럼 현관에 오뚝 서 있었다. 나는 순우에게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순우야, 엄마는 공부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야. 우리는 같이 교실로 가자.”

순우는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

엄마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하자 순우는 억지로 나를 따라서 교실로 들어왔다.


순우 엄마는 어릴 적 순우와 헤어질 때 몰래 살짝 나가거나 잠잘 때 간 적이 많았단다. 그래서 그랬을까? 순우는 엄마와 떨어져 있는 걸 많이 불안해했다. 순우 엄마는 학교에서 보니 순우가 친구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게 많이 마음이 쓰였나 보다.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데 정작 순우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여 걱정이라고 했다.


“선생님, 순우가 넘어졌는데 안 일어나요.”

광미가 나에게 와서 소리쳤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던 순우가 친구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순우는 넘어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왜 안 일어나나 했더니 자기를 일부러 넘어뜨린 친구가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우리 반에서 키가 가장 큰 남자아이가 말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졌어요. 그런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순우는 그제야 주섬주섬 일어섰다. 나는 키 큰 아이에게 말했다.

“친구가 넘어졌으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일으켜 줘야지.”

키 큰 남자아이는 순우에게 다가가서 “미안해” 사과했다. 순우는 아무렇지 않게 “응!”하고 화장실을 갔다.


그때 광미가 순우를 따라가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너 넘어졌을 때 깜짝 놀랐어. 괜찮아?”

순우는 광미를 제대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괜찮아!”

순우가 화장실을 가는데 광미는 그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며칠 후 순우가 멋진 새 옷을 입고 왔다. 나는 혼자 교실 문을 씩씩하게 들어오는 순우에게 물었다.

“순우야, 오늘 무슨 좋은 날이니? 정말 멋진데!”

순우는 뭔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내 생일이에요.”

순우는 나에게 자기가 직접 만든 생일 카드를 주었다.

엄마랑 같이 준비했는지 제법 그럴듯한 카드에는 집에서 파티를 한다고 씌어있었다.


나는 순우에게 물었다.

“누구누구 초대할 거니?”

순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뭐지? 엄마는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생일파티를 준비했는데 정작 순우는 누굴 초대하고 싶은지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나는 순우가 누구에게 카드를 주는지 눈여겨보았다. 일 교시, 이 교시, 삼 교시, 사 교시, 점심시간이 되어도 순우는 내게 보여준 카드를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다.

‘당장 오늘인데 어쩌려고 그러지?’

내 마음과 달리 순우는 느긋해 보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가 되었다. 순우 엄마는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순우는 생일 초대를 아무에게도 못 하다니! 나는 순우를 불렀다.

“순우야, 오늘 생일 축하해! 이건 선생님 선물이야.”

나는 생일 맞은 아이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선물을 순우에게 주었다. 순우는 기분이 좋아져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런데 순우야, 오늘 네 생일에 초대한 사람 있어?”

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광미가 순우 뒤에서 다람쥐처럼 튀어나왔다.

“선생님, 오늘 순우 생일이라고 아침에 학교 올 때 저한테 초대장 줬어요.”

순우는 엄마랑 같이 학교 올 때 광미를 만났나 보다. 광미는 순우가 준 초대장을 보여줬다.

“아, 순우가 광미를 초대했구나. 그럼 광미만 가는 거니?”

광미가 소리쳤다.

“아니요. 제가 몇 명한테 줬어요. 순우가 주라고 하는 애들한테요.”

나는 순우만 지켜보느라 광미가 다른 아이들에게 주는 걸 보지 못했다.

광미와 순우가 다정하게 교실을 나갔다.


그러고 보니 요즘 광미가 “나랑 결혼해 줄래?” 하는 걸 못 들었다. 순우와 순우 엄마 덕분이다.

광미가 순우한테 “나랑 결혼해 줄래?” 하고 물으면 어떨게 될까?

아마 모르긴 해도 순우는 틀림없이 거절할 거다.

“나는 엄마랑 결혼할 건데!”

순우는 이럴 것 같다.

그래도 광미는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 광미는 결혼보다 더 좋은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 교실에서 함께 있을 친구를 만났으니까. 그렇게 광미의 어려운 인생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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