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미는 동그란 눈, 동그란 얼굴에 항상 웃는 여자아이였다. 1학년인데 앞니가 빠져서 귀엽고 순진해 보였다. 그런데 반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이 이를 때마다 광미 이름이 나왔다.
“선생님, 광미가 우유 먹고 나한테 트림해요.”
“광미가 실내화 벗어서 냄새나게 해요.”
“아, 싫다는데 광미가 계속 따라와요.”
광미는 깔끔하고 잘생긴 남자애에게 더 그랬다. 남자애가 도망가는데도 계속 따라다니며 말 걸고 장난쳤다. 어떤 날은 남자 화장실까지 쫓아간 적도 있었다.
처음엔 한 두 명이 광미를 피했는데 이젠 우리 반 남자애들이 광미만 옆에 오면 도망 다녔다. 남자애들이 자기를 피해 다니면서 재미있어하자 광미는 작전을 바꾸었다. 우리 반 남자애들에게서 눈을 돌려 고학년 남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우리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고학년이 와서 1, 2학년 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독서부 아이들은 4~6학년 언니 오빠들이었는데 그날은 5학년 남학생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독서부 남학생이 큰 목소리로 실감 나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우리 반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남학생이 그림책을 다 읽어주고 말했다.
“뭐 궁금한 거 있니?”
아이들 사이에서 광미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남학생은 광미에게 말하라고 했다.
“오빠, 나랑 결혼해 줄래?”
우리 반 아이들은 “야, 그런 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하며 웃어댔다. 5학년 남학생은 제법 의젓한 아이였다. 놀라지도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흠, 나는 여자 친구 있어.”
광미는 고개를 푹 떨구고는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같이 온 독서부 언니들이 광미에게 다가가서 “너 정말 귀엽다.” “아주 재밌어.”하며 서운하지 않게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광미는 거절당한 걸 분명히 아는 듯했다. 잘 웃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나는 광미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광미야, 아까 책 읽어준 오빠가 마음에 들었니?”
광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그 오빠한테 결혼해 달라고 한 거니?”
배시시 웃는 그 아이를 보며 나는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광미야, 그 오빠랑 결혼하면 뭐가 좋은데?”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광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일 친하게 지내잖아요. 헤어지지도 않고요.”
나는 광미를 꼭 안아주었다. 그 사이 광미는 시무룩한 표정에서 원래의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광미는 유치원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아빠와 둘이 살고 있었다. 광미는 나에게 엄마 얘기는 잘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학부모 상담 때 오셔서 광미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광미 아빠는 젊고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퇴근도 늦고 살림은 해 본 적이 없는데 광미랑 둘이 지내려니 많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광미도 엄마 없이 아빠랑 둘이 사는 게 힘들었는지 나한테 와서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어젯밤에 아빠가 늦게 왔어요. 아빠 기다리다가 혼자 잠들었어요.
아빠랑 둘이서 식당에 갔는데 아빠가 술을 많이 마셨어요.
아빠는 운동화 빨기가 싫대요. 새 운동화 사주면서 깨끗하게 신으라고 했어요.
아빠는 너무 바쁘고 광미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광미는 입던 옷을 계속 입고 오고, 머리도 제대로 안 빗고 올 때가 있었다. 나는 빗과 머리끈을 준비해서 아침에 광미 머리를 빗어 주었다. 광미는 많이 외로워 보였다.
광미는 독서부 오빠에게 거절당한 후 그만둘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자기가 맘에 드는 오빠들에게 자꾸 ‘나랑 결혼해 줄래?’하고 물었나 보다. 처음에는 재밌게 봐주던 아이들도 광미가 자꾸 그런 말을 하자 나에게 와서 일렀다. 나는 광미와 다시 이야기를 했다.
“광미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오빠를 찾았니?”
“아니요. 못 찾았어요.”
그래서 계속 결혼해 줄래 하고 물었구나. 네. 그런데 오빠들이 웃고 놀리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해요. 왜 그럴까? 몰라요. 광미가 나랑 말하기를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어려도 이런 걸로 캐묻듯 얘기하는 걸 불편해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슬쩍 대화를 바꾸었다.
“광미야, 나랑 결혼해 줄래 하고 묻는 거 혹시 봤니?”
나는 TV나 영화에서 광미가 보고 따라 했나 싶었다. 광미는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광미도 오빠들한테 그렇게 말한 거구나. 어디서 봤을까?”
나는 광미가 혼자 있을 때 TV를 많이 보니까 거기서 그런 장면을 본 줄 알았다.
광미는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빠한테는 비밀인데요. 우리 아빠가 좋아하는 이모가 있거든요. 그 이모랑 전화할 때 맨날 그래요. 나랑 결혼해 줄래?”
그랬다. 광미는 아빠가 좋아하는 여자와 통화할 때 하는 말을 들은 거였다. 그래서 광미도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에게 그렇게 물은 거였다.
나랑 결혼해 줄래? 그건 광미에게 이런 의미였다.
나랑 친하게 지낼래?
나랑 이야기할래?
나를 다른 아이들보다 더 관심 있게 봐줄래?
나를 다른 아이들보다 더 좋아해 줄래?
내가 힘들 때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
내가 심심할 때 내 옆에 있어 줄래?
내가 외로울 때 같이 놀아 줄래?
나랑 같이 있어 줄래?
내 옆에서 소중한 친구가 되어 줄래?
나는 광미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주었다.
광미야, 지금은 결혼해 줄래 하고 말하면 다들 부담스러워해. 그냥 나랑 같이 친하게 지낼래? 나랑 같이 놀래? 하고 묻는 게 좋아. 그렇게 말해도 아이들이 같이 안 놀아 줘요.
아, 그런 거였구나. 네가 우유 먹고 트림하고 화장실까지 쫓아간 아이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구나. 광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친구들이 네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했구나. 광미는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에요. 자꾸 도망가니까 그랬어요.”
어른들의 연애만 어려운 게 아니다. 아이들의 친구 사귀기도 무척 어렵다. 광미는 처음에는 “나랑 놀래?” 하며 다가갔는데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니까 행동이 바뀐 것이다. 거절한 아이가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느라 화장실까지 쫓아가고 툭 때리고 도망간 거였다.
광미의 마음에 들면서 광미와 친해질 수 있는 아이가 있을까?
나는 교실을 두리번거리며 오빠들 대신 우리 반에서 그런 멋진 남자를 찾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