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있다는 걸 모르면 물어볼 수도 없다.

by 맑은샘

막 발령받고 교사가 되자 나는 ‘선생님다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다운 선생님’이란 학생이 뭘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한두 달 전까지 대학생이었던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데, 호칭의 힘이 얼마나 강하던지 그런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초등학교 일 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아이들이 엉뚱한 걸 물어봐도 지치지 않고 알아듣게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내 자리에 모여서 종알 종알 얘기를 하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학부모님들은 젊은 교사라 부담 없어서인지 “반 아이들이 선생님이 정말 좋대요. 학부모들도 선생님 반이라 좋아해요”하고 말했다. 학부모님들이 예의로 하는 말마저 그대로 다 믿어졌다.


나는 진심으로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한 시간 반이 넘는 학교까지 지각하지 않으려면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야 했다. 아침이면 목이 아파 쉰 목소리가 나와도 학교 가서 아이들 앞에만 서면 우렁찬 목소리가 나왔다. 일 학년 10반 중 막내 교사로 하늘 같은 선배님들이 많은데도 난 용감하게도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옆에 있는 선배 교사들은 엄청난 고수들이었다. 나 같은 후배를 다룰 줄 아는 분들이었다.


“선생님, 수업을 참 잘하네요. 수업 공개를 해 보면 어때요?”

“무용도 잘하네요. 내가 안무를 짜 줄 테니 운동회 때 아이들 지도를 하면 잘하겠다.”

내가 경력이 짧아 시키는 건가 하는 마음보다 잘하니까 그런 거라며 선뜻하겠다고 했다. 1학기에는 운동장에서 일 학년 아이들에게 무용 지도를 했다. 아이들은 내가 뛰는 만큼 뛰었고, 내가 앞에서 팔을 벌리는 동작만큼 따라 했다. 운동장에서 한 시간 무용 연습을 하고 나면 아이들과 나는 똑같이 땀범벅이 되었다. 2학기에는 공개수업을 했다. 학교 전체 선생님이 오셨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즉석에서 가사와 가락을 붙여 노래 만드는 걸 보며 참신하다고 했다.


그렇게 일 년을 마무리하고 성적표가 나가는 학년말이 되었다. 그때는 일 학년도 2학기부터 매달 시험을 보고 그걸 평균 내서 과목별로 수우미양가로 평가했다. 90점 이상은 수, 80점은 우, 70점은 미, 60점 이상은 양, 그 이하는 가였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통지표를 받기 전부터 자기가 받을 ‘수’를 기다렸고,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은 ‘양이나 가’가 없기를 바랐다.


우리 반에는 전 과목에서 모두 수를 받은 학생이 딱 한 명이었다. 다른 과목은 잘해도 음악이나 미술, 체육에서 수가 아닌 아이가 여럿 있었다. 일 학년이라 올 수는 더 힘든 거구나 했는데 학부모님이 다른 반은 올 수가 여러 명 나왔다고 말해주었다. 매월 본시험에서 반 평균이 다른 반과 비슷했는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그제야 옆 반 선생님께 물었다. 왜 선생님 반은 울 수가 여러 명이냐고. 알고 보니 우리 반만 90점이 넘어야 수를 주었고, 다른 반들은 시험이 어려워서 20%를 수를 준 것이다. 다른 반 아이는 85점도 수를 받았다.


나는 너무나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이럴 수가 있나 싶어 떨리는 목소리로 옆 반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그런 걸 왜 안 가르쳐 주셨어요?”
옆 반 선생님은 마음 좋은 선배였는데 안타까워하며 대답했다.

“선생님이 물어보지 않아서 다 아는 줄 알았지. 왜 묻지 않았어?”


아, 그때 나는 알았다. 모르고 있다는건 모르면 물어볼 수도 없다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선배 교사는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는 줄 알았던 거다. 나는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아는 대로 그냥 한 것이다. 물론 나는 그때까지도 나 혼자만 다르게 하는 걸 몰랐다. 다 나처럼 하는 줄 알았다. 아마 학부모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끝까지 몰랐을 거다.


초임 교사 시절, 나에게 꼭 필요한 멘토는 소크라테스였다. 아테네에서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 시절 나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너 자신을 알고 있니? 네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어?’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것, 모르는 걸 묻는 게 창피한 게 아니라는 것도 몰랐다. 그때는 내가 잘하는 것, 열심히 하는 것만 보였다. 선배 교사들이 잘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늘 내 시선은 나에게 향해 있었다. 내 학급, 내 반 아이들, 내 학부모님들에게 맞춰 있었다. 그래서 그때 함께 있었던 분들이 얼마나 멋진 교사들이었고 훌륭한 선배였는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수 십 년을 교사로 살다 보니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지금도 내가 모르는 게 참 많다는 것을.

교사는 대답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잘 살피고 잘 듣고 잘 물어보는 사람이어야 했다. 내가 답을 해 주려고 아이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못 들은 건 없었을까? 그래서 상처 받은 아이들은 없었을까? 아이들은 그냥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진심으로 들어주기만을 바랐는데 그걸 모르고 정답을 말하려고 애쓴 걸 아니었을지. 답을 말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물어볼걸. “그럴 때 이래저래 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힘들어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래. 네 마음은 어땠니?” 더 말할 수 있게 물었어야 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지혜롭다고 소문난 소피스트 학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 달라는 듯 물어보았다. 학자들의 대답을 듣고 그는 질문을 하고 또 질문을 해서 결국 학자들은 대답을 못 하고 입을 다물게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소크라테스라는 신탁에 나왔을 때 그는 자기만이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지금이라도 나는 소크라테스처럼 잘 물어야겠다. 초임교사 때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때는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고,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을 알고자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만 물어도 알 수 있는 것도 놓치고 말았다. 그런 것들이 ‘수우미양가’뿐이었을까? 아마 지금도 모른 채 넘어간 것이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걸 아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집중한다.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잘 관찰하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자세히 보게 된다. 그러면 아이가 하는 말을 온전히 들어주게 된다. 늘 새롭고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며 호기심을 갖고 아이들, 교사, 학부모님들을 만나 잘 물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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