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할 때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겨울이 되면 교사가 직접 난로를 피워야 했다. 난 유난히 난롯불을 못 피우는 새내기 교사였다. 어찌나 젬병인지 아침에 출근하면서 ‘제발 오늘은 난롯불이 잘 붙기를’ 기도할 정도였다.
그날도 여전했다. 번개탄도 없이(나중에 번개탄을 줄 때도 있었다) 종이를 태워 불을 붙인 후 조개탄을 넣었는데 꺼져버렸다. 다시 종이와 두꺼운 상자를 태웠는데 연통이 막히고 교실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얘들아, 창문 열거니까 얼른 외투 입어. 잠깐만 참자.”
아이들과 나는 외투를 입고 교실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켰다. 그러고 다시 난롯불을 붙였는데 다행히 불이 붙었다. 교실 안이 따뜻해지자 아이들은 하나둘 외투를 벗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할 때였다. 태수가 앞으로 나오더니 불쑥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선생님, 고구마 구워주세요.”
마침 난롯불이 점점 사그라드는 때라 고구마 굽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게다가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한 태수라 난 두말없이 고구마를 받았다.
‘속 깊은 아이라 아이들과 나눠 먹고 싶어서 가져온 게야. 어디 보자. 20개쯤 되어 보이니 아이들은 반씩 먹고 난 한 개 먹어도 되겠지?’
그때도 지금도 고구마를 좋아하던 나는 아예 면장갑을 끼고 집게로 고구마를 뒤적이며 침을 삼켰다. 오후 수업을 하던 아이들도 군고구마 냄새에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모두 눈치를 보며 난로 위와 아래에서 익어가는 군고구마를 슬금슬금 쳐다보았다.
드디어 고구마가 다 익었다. 노릇노릇 익어서 껍질이 살짝 터져 정말 맛있어 보였다. 태수가 누런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고구마 다 익었으면 여기에 넣어 주세요.”
“뭐, 뭐라고?”
난 뭔가 잘못 들었나 했다. 반 아이들은 모두 나와 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수는 아침에 가져왔던 누런 봉투를 흔들며 분명하게 말했다.
“집에 가서 먹을 거니까 여기에 담아주세요.”
아, 이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하긴 처음부터 태수는 고구마를 구워 달라고 했다. 같이 먹을 거라는 건 내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다 익은 걸 그냥 가져가다니!
난 노릇노릇 익은 군고구마를 누런 봉투에 하나씩 넣으며 고민했다.
‘태수한테 하나만 달라고 할까? 내가 다 구워줬으니까 그건 괜찮은 거 아닐까?'
'아냐. 오늘 보니 속이 어떤지 모르는 녀석인데 집에 가서 내가 뺏어 먹었다고 하면 어떡해.'
'여기서 지켜보는 우리 반 아이들,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데 나만 먹으면 자기들은 못 먹었다고 울상일 텐데. 아이참, 아예 안 먹고 말지.’
나는 하나도 남김없이 태수의 누런 봉투에 군고구마를 넣어 주었다. 태수는 고개를 한번 꾸벅하고는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오후 시간 내내 군고구마 먹을 생각에 기뻐하던 아이들도 황당해했다. 태수에게 하나 달라고 하는 애도 있었는지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생각은 참 비상했다. 태수 옆 짝꿍이 새초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나도 내일 고구마 가져와야겠다. 선생님께 구워달라고 해야지.”
그랬더니 몇몇 아이들도 "아, 나도 그래야지." 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일은 아이들이 떼로 군고구마 구워 달라고 하겠구나.’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났다.
“얘들아, 내일부터는 친구들과 나눠 먹을 수 있는 고구마만 가져와. 집에 다시 가져가야 하는 사람은 집에서 먹고.”
아이들은 부러운 듯 태수를 쳐다봤다.
다음날 고구마를 가져온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