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알아주는 산타

by 맑은샘

202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일어나자마자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서 더듬거렸다. 아무것도 없다. 후후 웃음이 나온다. 지금 나이가 몇인데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다니!


어릴 적에는 크리스마스 아침마다 내 머리맡에 산타가 준 선물상자가 있었다. 그 안에는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초콜릿과 쿠키와 갖고 싶던 인형 등이 있었다. 내 맘에 딱 드는 선물이었다. 산타는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알까? 내가 원하는 걸 어쩌면 이렇게 잘 알 수 있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산타가 그리웠다.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연년생 동생과 둘이 산타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산타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꼭 할 얘기가 있었다. 나와 동생이 밤이 늦도록 부스럭거리자 부모님이 눈치를 챘다. 왜 안 자냐고 물어서 우린 산타를 기다린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산타가 오면 알려 줄 테니 얼른 자라고 했다. “꼭 알려주세요.” 우린 이렇게 말하고도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혹시 엄마 아빠도 잘 수 있으니까.

나와 동생은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잠들지 못하게 서로 꼬집고 베개로 툭툭 건드려서 잠을 깨워주었다. 부모님은 자꾸 우리 방에 와서 자는지 확인을 했다. 동생이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가 좀 이상하지 않아?”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가 산타를 기다리는 걸 알면서 왜 자꾸 불을 끄라는 건지, 불을 끄니까 자꾸 더 졸립고 눈이 저절로 내려 앉는것 같았다.


얼핏 잠이 들었나 싶어 번쩍 눈을 떴다. 동생은 옆에서 자고 있었다. 난 얼른 일어나라며 동생을 깨웠다. 머리맡을 더듬거리는데 손끝에 상자가 만져졌다. 산타의 선물이 도착한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야, 일어나 봐. 산타가 왔다 갔어!”

동생은 나보다 더 놀라서 천장에 닿을 듯 튀어 오르더니 부모님 방으로 달려갔다.

“엄마, 아빠! 산타 오는 거 봤어요?”

아빠는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어, 아까 금방 왔다 갔는데 너희들 깨웠는데 못 일어나던데?”

“그럼 좀 세게 깨우지 그랬어요. 몰라! 깨워준다더니.”
나도 덩달아 발을 동동 구르며 아빠에게 따졌다.


아빠는 미안한 듯 우물거리다 말했다.

“어쩌나! 산타가 멀리 못 갔을 거야. 혹시 모르니까 얼른 불러 봐라.”

우리는 아빠 말대로 창문을 활짝 열고 창틀에 매달려 목청껏 소리쳤다.

“산타! 보고 싶어요. 다시 와 봐요. 잠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몇 번을 불러도 불러도 산타는 오지 않고 쌩쌩 겨울바람만 방안에 가득했다. 우린 힘없이 창문을 닫았다. 산타의 선물을 받은 기쁨보다 산타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다.


그 이후로 매해 산타의 선물보다 산타를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12월이 되기도 전부터 부모님은 “어허, 그러면 산타가 안 오겠네.” 뭔가 장한 일을 하면 “산타가 큰 선물을 갖고 올 것 같아.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니?”하며 산타를 기억하게 했다.


12월이 되면 아기 예수의 탄생과 산타의 방문을 기다렸는데 난 내 손에 잡히고 내 눈에 보이는 산타의 선물이 훨씬 생생했다. 단 한 가지 산타에게 아쉬움이 있었는데 나를 만나주지 않는 거였다. 왜 엄마 아빠는 만나면서 난 만나주지 않는 걸까? 나는 산타를 만나서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처음에는 이 말을 하려고 했다.

“동생보다 더 큰 선물을 주세요. 내가 일 년 동안 동생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요?”

다음 해에는 그 말이 바뀌었다.

“내가 일 년 동안 얼마나 기특한 일을 많이 한지 알아요? 동생에게 양보도 하고, 친구들과 싸우려다가도 참았다고요.”


몇 년 간 산타를 기다리다가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냥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좋으니 그냥 산타를 만나기만 하면 좋겠다. 산타는 나를 보기만 하면 내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다 알 텐데. 무슨 말을 하겠나? 그냥 만나면 내 마음을 그대로 다 알 것 같았다. 산타가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내 눈을 한번 들여다봐주길 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곁에는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고 나를 하루 종일 귀찮게 따라다니는 동생도 있었는데 그래도 나는 외로웠나 보다.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산타가 필요한걸 보니.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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