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가 담임했던 아이들이 천명 가까이 된다. 일 년 동안 같이 있다 보면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 복도에서 들리는 목소리만 듣고 ‘누가 오고 있구나.’, 교실 바닥에 떨어진 낙서를 보면 ‘이건 누구 글씨인데’하고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학년 말 때쯤 되면 나도 모르던 내 모습에 대해 말해 주기도 한다. 삼 학년 여학생이 “선생님은 눈을 자주 깜박거려요.”해서 거울을 보니 정말 그랬다.
천 명 가까운 아이들 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해서 공부 잘하고 의젓한 모범생이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쳐다보기만 해도 힘이 나서 헤어질 때 아쉬웠던 아이도 아니었다. 학교 오기를 싫어하고, 교실에 들어오는 걸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어했던 아이. 교사로서 나의 부족함을 절절하게 느끼게 했던 그 아이, 강호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강호는 내가 5번째 부임한 학교에서 만났다. 그 학교에서 나는 연구부장과 2학년 학년 부장을 맡았다. 출근 첫날, 그날은 설렘과 긴장의 날이었다.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6학년 선생님이 놀라서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선생님은 화장실 앞에서 우리 반 아이가 싸우길래 말렸는데 울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화장실 앞으로 달려가면서 생각했다.
‘일 학년에서 막 올라온 아이라 너무 어려 교실을 찾다 다투었나? 아니면 고학년에게 싸우다 맞았나?’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아이들 앞에서 강호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2학년치고는 꽤 덩치가 있어 보여 교실을 못 찾은 건 아닌 것 같았다.
강호는 아기호랑이처럼 눈을 꼭 감고 주변을 쳐다보지도 않고 꾸역꾸역 울음을 토해내며 외쳤다.
“다 필요 없어, 죽어 버릴 거야!”
이 두 마디를 계속 반복하며 우는데 난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모든 교사는 죽고 싶다는 학생을 만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무리 장난스레 하는 말이라도, 아무리 2학년이라도 죽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심장마비를 일으킬 만큼 놀라게 된다. 게다가 그날은 새 학기 시작하는 첫날이고, 겨우 2학년 아이가 그런 말을 하다니!
강호는 거의 10분 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서서 큰소리로 울더니 말했다.
“싸운 게 아니라고요. 그냥 말하고 있었다니까요!”
강호는 자기는 싸운 게 아닌데 선생님이 싸우지 말라고 했다고 억울했단다. 나는 강호를 다독이며 교실로 데리고 왔다. 강호는 훌쩍이며 뒷자리에 앉아 2학년 첫날 짧은 공부를 했다.
다음날 강호는 조금 늦게 왔다. 1교시가 시작될 무렵 엄마와 같이 왔는데 복도에서 엄마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어제 나와 전화 상담을 한 후라 눈인사를 하며 말했다.
“얘가 자꾸 학교에 안 오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빨리 교실로 들어가. 선생님 나오셨잖아.”
강호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엄마에게 고개를 흔들었다.
“공부하고 오면 네가 좋아하는 야구공 사 줄게.”
그제야 강호는 엄마에게 다가서며 진짜냐며 엄마 손에다 도장 찍고 복사를 했다. 그러고는 겨우 교실에 들어왔다.
전날 나와 통화를 할 때 강호 엄마는 강호가 ADHD 약을 먹다가 아빠가 강호 의지를 믿고 끊어보자고 해서 약을 중단한 상태라고 했다. 아침마다 강호는 엄마와 같이 학교에 왔다. 가끔 아빠와 오기도 했는데 교실까지 데려다주지 않으면 강호는 현관에서 이층 우리 반까지 올라오는데 30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강호에게 왜 늦었냐고 물으면 “그냥요. 학교 오기 싫다고요!”
강호는 억지로 학교에 온 거고, 끝나면 엄마가 사 줄 야구공이나 선물 받을 생각만 했다. 수업에 흥미를 못 느껴 교과서와 공책을 꺼내라는 말도 못 들은 척했다. 대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수업을 시작하면 강호는 슬슬 앞뒤에 있는 애들을 살피다가 교실을 돌아다니며 툭툭 공부하는 아이들을 건드렸다.
사물함을 열어놓고 사물함 문짝을 한꺼번에 ‘탁’ ‘탁’ ‘탁’ 소리가 나게 닫기도 했다. 모두 조용히 수학 문제를 풀면 강호는 혼자 교실 뒤에서 애벌레처럼 꾸물꾸물 배를 밀면서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기어 다니기도 했다.
교사가 되고 처음으로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오늘 하루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을 설쳤다. ‘하루를 무사히’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강호는 내가 학교에서 만난아이 중 가장 마음을 읽기 힘든 아이였고, 나는 점점 강호에게 부족한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는 지능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읽기도 하고 수학 문제를 풀 실력도 있었다. 단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강호는 학교 공부가 싫은 아이였다. 학교에 오고 싶지 않은데 자꾸 부모가 가라고 하니까 화가 잔뜩 난 채로 등교했다. 왜 학교에 오고 싶지 않냐고 하면 “그냥요.”하고 말했다.
강호 부모님도 나름 노력을 많이 하셨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고 아빠는 가게를 해서 힘든 상황임에도 강호가 학교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번갈아 와 주셨다. 두 분 모두 강호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잘 지내길 바랐지만 강호가 자꾸 학교 가기를 거부하자 많이 당황해하셨다. 나는 경력이 많은 교사임에도 이런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스러웠다.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강호는 기분이 안 좋은지 1교시부터 투덜거리더니 급기야 학부모님들이 한 두 분 오시는데 떼를 부렸다.
“공부는 왜 해요? 난 하기 싫어요.”
나는 부모님들이 우리가 공부하는 걸 보러 올 거라고 말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안 와요. 난 우리 반 하기 싫다고요.”
소리 지르고, 책상 위에 있던 책을 다 밀어서 아래로 떨어뜨리고, 의자도 뒤집어 놓았다. 강하게 공부하지 않겠다는 표시를 하는 거였다. 내가 야단을 칠 수도 데리고 상담을 할 수도 없는 시간이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