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 이야기(2)

by 맑은샘

부모님께 연락했더니 아빠가 뛰어오셨다. 나는 강호가 진정이 되면 함께 수업에 참여하면 좋겠다며 우리 반 옆에 있는 보건실로 안내했다.


학부모 공개 수업을 하는 동안 강호와 아빠가 교실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수업이 다 끝나도록 강호는 오지 않았다. 보건실에 가 보니 강호는 그때까지 아빠 말을 안 듣고 떼를 부리고 있었다. 강호 아빠는 교실에 가자고 하고, 강호는 싫다고 했다. 내가 들어온 걸 보고 아빠는 버럭 화를 내며 “너 이리 와봐!” 하자 강호가 움찔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처음에는 움찔하며 겁을 내던 강호가 여전히 아빠가 큰소리만 치자 다시 바닥을 뒹굴었다. 강호 아빠는 두리번거리며 뭘 찾더니 "이 녀석이!" 하며 보건실 귀퉁이에 있던 청소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제야 강호는 빗자루를 보고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하며 태도가 달라졌다.


“아빠가 회초리를 들어야 말을 들어요.”

나중에 강호 엄마의 말이 아빠가 회초리를 들어야 강호 행동이 멈출 때가 많다고 했다. 지금은 2학년이라 회초리로 말을 듣지만, 더 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다독이며 부드럽게 하는 말이 강호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가 회초리가 없어서라니.


나는 강호를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자료도 찾고 선배나 동료 교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강호는 지능이 부족하거나 발달 장애가 있는 아이가 아니다. 자기 마음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였다. 부모님과 함께 강호 교육을 위해 의논하는 게 가장 먼저 필요할 것 같았다.


강호 엄마와 상담을 했다. 강호가 “엄마는 좋은데 아빠는 엄청 무서워요.” 하는데 엄마도 아시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도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강호는 엄격하게 야단치는 아빠보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편들어 주는 엄마가 좋은 거였다. 엄마가 보기에는 생후 백일부터 강호를 어린이집에 맡긴 것보다, 남편과 다투고 얼마간 집을 비운 게 큰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그 이후 엄마에 대한 애착이 눈에 띄게 커졌단다. 강호는 뭐든 다 해주는 관대한 엄마와 무서운 아빠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 같았다.


강호는 자기가 학교에 있는 동안 엄마가 어디를 갈까 봐 불안한 마음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더욱 학교 오기를 싫어하나 싶었다.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집에 연락하면 은근히 강호는 엄마가 오길 기다리는 듯했다. 어린 강호 마음에는 아침마다 엄마와 같이 학교에 오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학교에 달려오는 부모님, 특히 엄마가 마냥 좋은 것 같았다. 솔직하게 얘기하다보니 강호를 위해 학교에서 할 일과, 부모님이 집에서 할 일들을 공유하고 같이 돕기로 했다.


강호와 단둘이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강호야, 네가 학교에서 하고 싶은 게 뭐니?”

강호 눈이 둥그레지며 나를 쳐다보았다.

도서관에 가는 거요.”

좋아. 그럼 너는 학교에 오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받고 도서관에 가도 돼. 정말이요? 응, 대신 도서관에서 교실로 올때도 사서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오는 거야. 그다음으로 하고 싶은 건 뭐니?

야구하는 거요. 그래? 야구는 공부시간에 할 수 없으니까 쉬는 시간이나 운동장에 나갈 때 해도 돼. 대신 공이나 방망이를 가져오면 위험해서 안 되는데 어쩌지? 그냥 없이도 할 수 있어요. 저는 야구선수가 될 거니까 없어도 잘할 수 있어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강호야,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집에 가기 전 알림장에 오늘 공부를 잘했는지, 중간인지, 부족했는지를 스스로 표시하는 거야. 할 수 있겠니? 부모님이 네가 학교에서 열심히 하고 왔는지 궁금해 하시거든.”

강호는 그쯤은 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강호는 일교시가 시작되자 도서관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포스트잇에 시간을 적어 주면서 도서관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나올 때 시간을 적어 오라고 했다. 강호는 금방 다녀왔고 자랑스럽게 포스트잇을 내밀었다.

그날은 학년 체육을 하는 날이었는데 기분이 좋은 강호는 운동장에 같이 나갔다. 이학년이 모두 준비운동을 하고 반별로 이어달리기를 했다. 강호는 혼자 운동장 가운데 서서 엉덩이를 쭉 빼고 야구를 했다. 방망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야구선수처럼 방망이를 든 자세로 엉덩이를 흔들거리더니 공을 치는 흉내를 했다. 강호는 야구를, 반 아이들은 반별 이어달리기를 열심히 했다.


알림장을 쓰는데 강호가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 나 오늘 공부 아주 잘했어요. 국어도 잘했고, 수학도 잘했고 운동장 체육도 전부 다 잘했어요.”

나는 강호가 스스로 표시하는 걸 지켜보며 천천히 물었다.

“정말 일교시부터 사교시까지 전부 다 잘했어?”

강호는 그렇다며 알림장에 동그라미 두 개씩을 커다랗게 그려 넣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공부한 강호는 주말에 엄마 아빠와 야구장에 갔다. 그렇게 하기로 부모님과 약속을 한 것이다. 평일에 학교에 잘 다닌 강호는 엄마 아빠와 원하는 곳에 가기로 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강호는 야구 경기를 보고, 좋아하는 야구 선수의 등번호와 이름이 적힌 야구복까지 사서 입고 왔다.


다음 주 학교에 온 강호는 엄마 아빠와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약속했다고 먼저 말을 했다.

강호는 조금씩 공부시간에도 관심을 보였다.

즐거운 생활시간에 ‘꿩꿩 장서방’ 노래를 배웠다.

“꿩 꿩 장서방 자네 집이 어딘고 이 산 저 산 넘어서 솔밭집이 내 집일세”

내가 아이들에게 왜 꿩에게 장서방이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한 아이가 거꾸로 되물었다.

“왜 꿩이 장서방이에요? 꿩이면 꿩 서방이라고 해야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던 강호가 대답했다.

“남자 꿩을 장끼라고 하니까 장서방이지.”


이렇게 의젓하게 대답을 하던 강호. 5 분 후에는 바로 앞에 앉은 현수 등을 쳤다. “아~” 현수가 소리를 내니까 더 재미있는지 계속했다. 내가 다가가서 하지 말라고 하자 짜증을 냈다.

“왜, 나만 미워하고 그래요?”

복도로 나가더니 얼마 후에 교실로 들어온 강호는 친구랑 부딪쳐서 아프다고 했다.

“그래, 많이 아프겠다. 지금 기분은 어떠니?

“속상하죠, 아프고요.”

“그렇구나. 그럼 아까 너한테 맞은 현수 기분이 어땠을까?”

“그건 걔 사정이죠.”

“너는 부딪친 걸로도 속상하고 아픈데 현수는 어떨 것 같니?”

내가 정색을 하며 다시 묻자 강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툭 내뱉는 말,

“아~ 인생 정말 복잡하네.”

강호는 자기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까지 한참 걸렸다.


집에 갈 때 알림장을 갖고 나온 강호가 말했다.

“오늘은 조금 못 한 것도 있어요.”

“뭐가?”

“아까 현수 때린 거요.”

강호는 조금씩 자기를 제대로 살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자기가 다 잘했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아예 알림장을 꺼내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억지를 부릴 염치도 없는 제대로 말썽을 부린 날이었다.


강호를 보면서 부모님의 역할이 중요한 걸 다시 느꼈다. 강호의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건 부모님 덕분이었다. 특히 아빠는 강호와 자주 얘기를 했고, 엄마 아빠는 강호를 위한 적절한 엄격과 관대함의 정도를 함께 의논했다. 나는 강호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집에서 있었던 일을 자주 들었다.


강호와 함께 했던 시간은 내 교직생활에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시간이었다. 강호에게 어떤 게 필요할지 부모님과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계획하고, 실천하고, 반성하고, 다시 수정하는 걸 반복했다. 강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었다. 첫째는 부모님의 사랑, 특히 엄마의 사랑, 둘째는 인정이었다. 강호에게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인정도 중요했지만 가장 원한 건 아버지의 인정임을 알게 되었다.


“죽어 버릴 거야. 다 필요 없어!”

2학년 첫날, 강호의 울부짖음으로 나도 많이 놀랐지만 강호 부모님은 더 많이 놀랐다. 그래서 강호 부모님은 말도 제대로 못하던 어린 시절에 엄마와 떨어진 두려움이 있던 아들, 강호를 위해 많이 노력했다. 나도 교직생활에 가장 기억 남는 특별한 아이를 만나 힘들었지만 그런 강호 부모님 덕분에 함께 그 높고 어려운 벽을 겨우 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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