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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Mar 08. 2022

안울었는데요

입학식


코로나가 초등학교 입학식 분위기도 바꾸었다. 몇 해 전 만해도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와서 입학하는 손자 손녀들을 축하해주었는데 요즘은 엄마나 아빠랑 와서 교문 앞에서 이산가족처럼 헤어져야 한다. 부모님은 교문 밖에서 아이들이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아이들은 혼자 교문 안으로 들어온다. 부모님께 인사하고 씩씩하게 들어오는 아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아쉬워하는 아이, 엄마 손을 꼭 잡고 교문 밖에 서 있는 아이도 있다.       


나는 교문 안에 들어오는 입학생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주며 환영해 주었다. 아이들은 꽃송이를 들고 자기 반 푯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교문 밖에 서 있던 부모님은 자녀의 모습을 찍으려고 이름을 부른다. 엄마 아빠를 향해 장미꽃을 흔들며 포즈를 취하는 아이, 그냥 성큼성큼 가버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의 옷과 신발, 신발주머니, 책가방 모두 반짝반짝거린다. 책가방 속의 학용품도 아마 모두 새것일 것이다. 아이들은 당당하고 반듯한 모습이다. 첫날이라서, 부모님이 지켜보아서, 처음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담임선생님께 자기 이름을 말하고 줄을 서는 데 의젓하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다 온 반은 교실로 들어가는데 코로나 때문에 첫날부터 결석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그때까지 엄마 손을 잡고 교문 밖에 있었다. 엄마는 자꾸 교문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아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반은 다 교실로 들어갔는데 한 반만 남아서 기다리고 있다. 그 아이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반 담임선생님이 다가가서 아이의 이름을 묻고 손을 꼭 잡는다. 선생님이 손을 잡아주니 기쁘게 갈 만도 한데 그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한다. 엄마가 있는 뒤를 돌아다보며 어깨까지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울면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가는 아이를 보니 나는 문득 세호가 떠올랐다.   

   


몇 해 전 내가 일 학년을 담임할 때는 강당에서 입학식을 했다. 그날 우리 반에서 축하를 가장 많이 받은 아이는 세호였다. 세호를 축하하기 위해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오셨다. 세호는 화사하고 예쁜 꽃다발을 두 개나 받았다. 키는 작았지만 감색 외투에 흰 티까지 입어서 세호는 꼬마 어른처럼 멋져 보였다. 강당에서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올 때까지 세호는 귀엽고 당당한 입학생의 모습이었다.   

   

부모님과 헤어져 교실로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겨울 방학 동안 조용하던 교실은 일 학년 아이들이 들어오자 금방 활기찬 곳으로 바뀌었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긴장과 기대의 눈빛으로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기를 바라며 서로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복도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복도로 나갔더니 세호가 교실 문밖에 서 있었다. 왜 그러냐고, 얼른 들어오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세호는 눈을 꼭 감은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흔들며 점점 더 크게 울었다. 아까 강당에서 본 세호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세호 울음소리는 일 학년 다른 반까지 무지무지 크게 들렸다. 우느라 세호 얼굴은 점점 빨개졌고 내 얼굴도 세호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3월이면 가끔 이런 아이들이 있다. 학교 공포증으로 등교 거부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 불안이 가장 큰 이유다. 학교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긴장과 두려움으로 바뀌는 것이다.

세호 엄마 말로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1, 2월 두 달 동안 엄마와 함께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도 늦둥이에 외동이라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단다. 엄마와 있을 때 안정감을 느꼈던 세호는 갑자기 학교에 오면서 엄마와 떨어지려니 불안했나 보다. 엄마가 오기 전까지 교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버티었다. 결국 세호는 엄마와 함께 교실에 들어왔다.      


보통 아이들은 서너 살이면 자연스럽게 엄마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예민한 성격의 아이들은 엄마와의 분리가 불안과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

세호도 처음에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학교에 왔다. 강당에서 엄마 아빠가 지켜볼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는데 막상 혼자 교실에 들어가려니 겁이 났나 보다.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잘하고 싶은데 못 하면 어떡하지? 무서운데. 정말 무서운데.’

이런 불안한 마음이 교실 문턱을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고, 호랑이보다 더 무섭게 만드나 보다.      


세호 같은 아이들은 잘하고 있다는 마음과 잘하고 싶다는 마음, 못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어떤 날은 아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날은 아주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하루 동안에도 몇 번이나 바뀐다. 아침에 신나게 등교했다가 한 시간도 못 되어 울상이 되기도 한다. 불안하고 집에 가고 싶고 엄마가 보고 싶고, 집에 있는 강아지 돌돌이가 너무너무 보고 싶기도 하다.

     

방과 후에 나는 세호와 엄마를 만났다. 세호는 복도에서 울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세호에게 아까 왜 울었냐고 물었다. 세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안 울었는데요.”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와 나를 두고도 세호는 당당하게 안 울었다고 했다. 2층 전체가 떠내려가게 큰 소리로 울던 세호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맴도는 것 같은데 세호는 끝까지 자기는 운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까 생각했다.

“그렇구나. 세호는 울고 싶지 않았구나. 그럼 내일은 어떻게 하고 싶니?”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세호는 안 울 거라고 했다.      


 다음날 세호는 정말 울지 않았다. 일 학년 다른 반 선생님들이 혹시 우리 반에서 또  울음소리가 날까 봐 귀를 기울였지만, 세호 말대로 울음소리는 당연히 들리지 않았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세호 같지는 않다.  3월 내내 우는 저학년 아이도 있고, 학교 가기 싫다고 등교를 거부하는 고학년 아이도 있다. 세호는 용기를 내서 학교 가기 싫은 마음을 극복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불안감이 높은 아이는 새로운 낯선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두려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와 교실,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만남에 적응하기까지 다른 아이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불안하고 두렵다가도 친구가 놀자고 하거나, 반에서 재밌는 활동을 하면 순간 그 마음을 잊어버리고 시간이 지나기도 한다. 그렇게 얼마쯤 있다가 집에 갈 때쯤  ‘아, 내가 잘했구나.’ 하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경험을 한다. ‘두려운 마음이 들어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되는구나. 그때 안 건 정말 잘했어.’ 하거나 울었던 자신을 안 울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마 세호도 첫날 울었던 자기 모습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울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같이 교실에서 웃고 반갑게 인사하는 멋진 자기 모습을 만나고 싶지 않았을까?

 

입학식 날 그렇게 큰 소리로 울던 세호는 다음날부터는 울지 않았다. 결국 자기 스스로 높은 산을 넘은 것이다. 교실 안에 들어와서 울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기.

      


코로나로 간소한 입학식을 하고 일학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울면서 들어갔던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물었다. 아이가 괜찮았는지, 계속 울었는지 궁금했다.  일 학년을 오랫동안 맡았던 담임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울기는 했지만 괜찮아요. 한 달만 기다리면 돼요. 울어도 교실 안에서 울고, 장난을 쳐도 교실 안에서 장난치면 한 달 후에는 아이들과 잘 지내더라고요.”

정말 그 아이도 그러길 바란다. 아니 세호처럼 하루 만에 "안 울었는데요." 하면서 다음날부터 즐겁게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


학교는 아이들을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게 돕는 곳이다. 학교 오는 게 두려워서, 불안해서 우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어려운 첫걸음을 시작한 셈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는데 그 첫걸음에 큰 박수와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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