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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Mar 23. 2022

합창대회

첫 발령을 받고, 일 학년 담임을 하면서 수업 시간 내내 풍금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내가 ‘쿵짝쿵짝’ 반주를 하면 우리 반 아이들은 전주만 듣고 무슨 노래인지 알았다. 교실을 돌아다니던 아이도 자기 자리에 앉아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바로 옆 교실에 계시던 교장 선생님은 학교 합창부를 지도하면 잘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 대신 각 반에서 뽑힌 노래 잘하는 합창부를 지도한다는 것에 은근 기대가 되었다.

     

합창부는 40명쯤 되었다. 4~6학년 아이들이고, 그중 5명은 남학생이었다.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파트를 정했다. 초등학교 합창부는 소프라노, 메조, 알토로 세 파트로 나누는데 대부분 소프라노를 하고 싶어 한다.      

“모두 소프라노면 무슨 합창부니? 메조와 알토가 얼마나 중요한데!” 

나는 아이들을 설득하며 소프라노보다 메조와 알토를 조금 더 뽑았다. 남학생은 4~5학년으로  소프라노, 알토에 2명, 메조 파트에 한 명을 뽑았다.       


합창은 어느 한 성부만 강하면 화음이 깨진다.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중간 소리까지 정확하게 잘 불러야 어울리는 노래가 된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소프라노가 된 아이들은 좋아하고, 알토나 메조가 된 애들은 시험에서 떨어진 것처럼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그때는 시 대회 학교 합창대회가 있어서 합창부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 우리는 학교를 대표해서 날마다 방과 후에 음악실에 모여 연습을 했다. 발성 연습을 하고 파트 연습을 하고 드디어 합창을 했다.      


이럴 수가! 정말 당황스러웠다. 

메조 남학생, 한솔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거였다. 

혼자 부를 때는 음을 잘 냈는데 합창을 하자 메조 파트 음을 잊어버렸나 보다. 한솔이는 파트 연습을 할 때는 목소리가 또렷하고 분명했다. 알토로 보내기엔 높고 소프라노로 가기엔 낮은 영락없는 중간 소리였다. 독창해도 될 만큼 목소리가 크고 노래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 한솔이가 합창을 하자 영 딴판이 된 것이다. 소프라노를 따라가다가 높은 소리가 날 때는 한 옥타브를 낮춰 불렀다. 한솔이와 따로 파트 연습을 했다. 혼자 할 때는 아주 잘했다. 다시 합창을 하자, 한솔이는  귀를 막고 자기 파트를 큰 소리로 불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한솔아,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서 불러야 합창이지.”

“그러면 자꾸 나도 모르게 따라가요.”

한솔이가 울상이 되어 대답했다. 이 아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그냥 소프라노로 보내야 하나? 소프라노에서 높은 소리를 낼 때는 확 한 옥타브 낮춰 부를 텐데 어쩌나?   

  

그날부터 한솔이와 둘이 연습을 했다. 아이들이 다 간 후 남아서 연습을 했다. 한솔이가 메조 멜로디를 다 외울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소프라노를 하고 한솔이가 혼자 메조를 불렀다. 처음에는 나를 따라 하더니 점점 자기 파트를 제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연습의 힘이 참 대단한 것을 느꼈다.     

 

한솔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 합창 연습을 시작할 때는 오리처럼 꽥꽥거리더니 합창대회에 나갈 즈음에는 꾀꼬리처럼 맑고 고운 소리를 냈다. 합창복에 모자까지 쓰고 입 퇴장 연습을 할 때는 방송국 합창단같이 세련되고 멋져 보였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무더위 속에서도 일주일 동안 맹연습을 더 했다. 드디어 합창대회 당일, 시 대회라 같은 시에 있는 초등학교가 거의 다 참여했다. 잠깐 리허설을 하는데 합창부 아이들이 소곤거렸다. 

“와, 다들 정말 잘한다. 그치?” 

우리 학교에서 할 때는 여유 있게 방긋방긋 웃으며 하던 아이들이 금방 주눅이 들었다.

순서를 뽑는데 우리 학교는 제일 마지막이었다. 빨리 끝내고 봐야 마음이 편한데 아쉬웠다.   

  

작년에 최우수상을 받은 학교는 정말 잘했다. 물론 우리 학교도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지도교사인 내가 아직 많이 서툴렀다는 게 느껴졌다. 수 십 년간 합창 지도를 하신 선배님은  내가 잘 아는 분인데 본인은 노래를 아주 못하신다. 그런데도 합창 지도를 얼마나 잘하는지 우리 학교 아이들까지 감동할 정도였다.     


한솔이가 나한테 와서 귓속말을 했다.

“엄청 크고, 엄청 작게 하네요. 정말 잘해요.”

한솔이 말처럼 정말 그랬다. 합창을 할 때 센 부분은 아주 세게, 여린 부분은 아주 여리게  불렀다. 그 학교 합창부는 여리게 하는 부분에서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지휘자를 향해 모여드는 몸짓과 함께 아주 작게 노래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기들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웅장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마무리를 했다.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합창이란 이런 거야를 제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우리 학교 합창부 아이들은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마지막 우리 학교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연습한 대로만 하면 최고 일등이야!”

먼저 부른 다른 학교 합창부들 때문에 작아졌던 아이들. 내가 한 명씩 바라보며 먼저 웃어주었다. 에어컨도 없는 음악실에서 뜨겁게 연습했던 아이들이었다.     


무대에 오르면 청중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늘 그랬듯 아이들은 지휘자를 보고, 나는 아이들을 보며 늘 부르던 대로 노래를 불렀다.

“합창은 소프라노만 있는 게 아니야. 메조와 알토가 얼마나 중요한데.”

“나 혼자 잘 부르는 건 소용이 없어. 우리가 같이 잘해야 해.”

“내 소리만 내려고 하지 말고 남의 노래도 들으면서 부르자.”     


내가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들이 그 순간 떠올랐을까?

아이들은 방긋방긋 웃으며 첫 소절을 시작했다.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

나는 평소보다 더 여리게 부르는 합창부 아이들을 보며 이 녀석들의 빠른 습득력에 놀라워했다.   

  

지휘를 하면서 난 한솔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메조에서 맑고 분명한 목소리로 자기 파트를  부르고 있었다. 소프라노를 따라가지 않고 메조 파트를 감정을 살려 불렀다. 우리 합창부는 연습할 때만큼 멋진 노래를 불렀다. 비록 최우수상은 못 받았지만 나에게는 가장 가슴 떨리는 합창대회로 기억된다. 나는 그 학교에 있는 동안 계속 합창부 아이들과 함께 멋진 화음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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