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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Feb 26. 2022

칠판

예전에는 

선생님이 칠판에 또각또각 흰색 분필로 글씨를 쓰면 아이들은 공책에 또박또박 연필로 따라 썼다. 중요한 낱말을 노랑, 빨강, 파랑 분필로 바꿔 쓰면 아이들은 밑줄을 긋거나 빨간 볼펜으로 바꿔 썼다.


칠판에 글씨를 다 쓴 선생님은 제대로 쓰는지 아이들을 살피고 아이들은 연필을 꼭꼭 눌러 반듯하게 쓰면서 선생님처럼 잘 썼는지 살폈다. 


칠판에 쓴 걸 다 쓴 아이들이 공책을 갖고 나가면 선생님은 참 잘했어요, 잘했어요, 어떤 아이에겐 글씨를 바르게 쓰세요 같은 파란 도장을 하나씩 찍어줬다.


잘 썼다는 말보다, 잘 쓰라는 말보다, 몇 배가 기분 좋아지거나, 기분 나빠지던 파란 도장!

파랗고 선명하게 찍힌 도장은 공책을 펼칠 때마다 잘 난 척하거나, 주눅 들면서 펄럭 펄럭 말을 걸어왔다. 


교실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칠판이었다. 공부하기 싫은 땐 칠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교실에서 가장 멍 때리기가 좋은 게 칠판이라 불멍, 바다 멍에 이어 칠판 멍도 있지 않은가!


칠판에는 떠든 사람 이름을 적거나 당번이 할 일을 적어놓았다. 당번이 꼭 해야 할 일은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 칠판지우개를 털어놓는 거였다. 


요즘

칠판은 변신 중이다. 한참 전부터 분필가루가 몸에 나쁘고, 칠판을 닦을 때 교실 공기를 오염시킨다고 분필 대신 물 백묵으로 바뀌었다. 초록 칠판이 화이트보드로 바뀌기도 했다. 


칠판은 휴가 중이다. 코로나로 대면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번갈아 하느라 학생들은 칠판보다 컴퓨터 화면을 많이 본다. 선생님도 칠판보다 컴퓨터로 글을 많이 쓴다. 


선생님은 또각또각 쓰는 칠판 글씨 대신 호르륵 워드를 쳐서 대형 TV로 보여 주거나, 실물화상기로 비춘 교과서에 직접 쓰기도 한다. 그러면 뒤에 앉은 아이까지 커다랗게 잘 보인다.


칠판은 적응 중이다. 선생님이 획순을 무시하고 날아가듯 글자를 쓰거나, 학습지를 잔뜩 칠판에 붙이거나, 글자 대신 그림을 그려도 괜찮다. 


실물화상기와 컴퓨터, 대형 TV 같은 신세대와 함께 그저 교실에 있고 싶다. 


초록칠판만 고집하지 않는다. 초록이면 어떻고 화이트보드면 어떤가? 다 괜찮다. 가격이 비싸 아직 교실까지 들어오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똘똘한 전자칠판도 있다. 

전자펜으로 글씨를 쓰고 터치를 하면 색이 바뀌거나 손으로 지울 수도 있다. 


초록 칠판과 분필로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연결시켜 주던 그 일을 이제는 전자 칠판이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칠판은 모양이나 성능은 바뀌어도 여전히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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