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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Feb 11. 2022

돌돌이가 물어갔어요

“오늘은 왜 못 가져왔니?”

심규가 사흘째 수행 평가지를 못 가져오자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평가지는 부모님 확인을 받고 학교에서 보관하는 거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소용없었다. 첫날은 깜박 잊고 안 가져왔다고 하고, 둘째 날은 찾아봐도 없다고 했었다. 이번에는 뭐라고 할까? 심규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대답했다.

“돌돌이가 물어갔어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돌돌이가 물어갔단다.


“그럼 돌돌이가 물어 간 거라도 가져와야지.”

내 말에 심규는 눈을 깜빡깜빡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물어가더니 다 씹어 먹었거든요.”

이틀이나 못 찾던 평가지를 돌돌이는 어떻게 찾아냈을까. 심규는 돌돌이가 물어가는 걸 보고만 있고, 씹어 먹는 걸 지켜보기만 했단 말인가? 나는 무슨 멍멍이 같은 소리냐며 야단을 쳤다.


심규는 아무렇지 않게 “내일 가져올게요.” 대답하더니 정말 다음 날 평가지를 가져왔다.

평가지는 돌돌이가 물어가서 씹어 먹었다는 말과는 달리 아주 말짱한 채로 되돌아왔다.

‘돌돌이가 물어갔다며? 씹어먹었다며?’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마 심규는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칠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들과 다르다. 처음 교사가 되고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할까 이상했다. 진실만을 말할 것을 약속하는 법정은 아니더라도 순진한 아이들이 모인 교실에서 별일도 아닌데 거짓말이 난무했다. 처음에는 왜 굳이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힘들었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할까? 나중에야 알았다. 아이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그건 거짓말이기보다는 그냥 그때의 자기 생각이란 것을. 별다른 악의가 있는 게 아니고 거짓말이란 생각도 못 한다. 선생님이 물어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걸 그냥 말할 뿐이다.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후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를 예측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돌돌이가 먹어 치운 평가지 정도가 아니라 더 큰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버지와 둘이 사는 심규는 2학년 때 처음 핸드폰을 샀다. 심규 아버지는 아들이 핸드폰 게임에 빠질까 봐 한참 고민하다 사줬다. 친구들의 핸드폰을 부러워하던 심규는 최신 핸드폰을 생긴 걸 자랑하며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음날 학교에 온 심규는 앞으로 나오더니 자기 머리를 들이밀었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그냥 보기엔 잘 몰랐는데 머리를 만져보니 커다란 혹이 나 있었다.

“어머나, 이게 뭐니? 웬 혹이 이렇게 크게 났어?”
 금방 시무룩한 얼굴로 변한 심규가 나에게 이른다.

“아빠가 그랬어요. 어제 저녁에 퇴근해서 갑자기 내 머리를 쾅 때렸어요.”

“아니, 아빠가 왜 그러셨지?”

“전 그냥 TV만 보고 있었거든요.”

술도 안 마시고 멀쩡한 채로 퇴근한 아버지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갑자기 자기를 때렸단다.

 왜 냉장고를 열다가?”

잘 모르겠다며 말꼬리를 흐리던 심규가 묘한 여운을 남겼다.

“가끔 때릴 때가 있어요.”    

 

2학년 아이 중 제법 똘똘한 편인 심규. 자기표현을 잘하는 아이가 그 말을 왜 지금에야 하는 거지? 가끔 그렇게 아버지께 맞는다는 말에 난 깜짝 놀랐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머리 밑에 커다란 혹이 있고 혹을 만지면 심규는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수업이 끝난 뒤 심규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가끔 전화로 상담을 해서 그랬는지 금방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우리 심규, 무슨 일이 있나요?”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아버지께 난 머리에 난 혹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는 아, 짧은 탄식을 했다.

“그걸 선생님께 말했군요. 글쎄 이 녀석이 얼마나 엉터리인 줄 아세요? 새로 핸드폰을 사줬더니 글쎄 자기 핸드폰 충전한다고 냉장고 코드를 빼버렸지 뭡니까?”

우리 심규, 충분히 그럴만하다. 자기 핸드폰 충전외에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아버지에게 필요한 게 냉장고라면 심규에게 핸드폰 충전이 필요했을 거다. 심규에게 냉장고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아, 그랬군요. 그래도…….”

나도 충분히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부모님이라도 말로 타이르셔야지 그렇게 혹이 커다랗게 날 정도로 때리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심규 아버지는 하소연하듯 중얼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코드를 뽑아 놓았는지 반찬이랑 김치가 다 변했더라고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저도 모르게 그만……”

퇴근하고 온 심규 아버지가 식사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냉장실에 물은 흥건하고, 냉동실 음식은 다 녹았단다. 천연덕스럽게 TV를 보는 심규는 TV선은 남겨놓고 냉장고 코드를 뽑아 놓고.   

   

다음날, 학교에 온 심규의 머리 밑을 만져보았다. 여전히 아프다고 했지만 전날보다는 많이 나아진 듯했다.

“아빠가 어제 약 발라 주셨어요. 아빠랑 같이 약국에 가서 약을 샀거든요.”

아버지가 약을 사서 발라 준걸 보니 은근  아들의 혹이 걱정이  되었나보다.


심규는 자기 혹 대신 돌돌이 얘기를 꺼냈다.

“약국 옆에서 강아지 옷을 파는 걸 봤어요. 아빠한테 하나 사달라고 했는데 안 사 주셨어요. 사주면 돌돌이가 아주 좋아했을 텐데.”

강아지 옷까지 사주기엔 아버지가 여유가 없으셨나 보다.

“그런데 선생님, 돌돌이는 옷이 없어도 괜찮을 수도 있어요. 왜냐면요. 어제 돌돌이가 새끼를 낳았거든요.”

뭐라고? 심규네 집에 한 마리 키우기도 버거울 텐데. 새끼를 낳았다고?


“6마리 낳았어요. 아, 정말 귀여워요.”

심규는 강아지들 생김새와 뭘 좋아하고, 뭘 잘 먹는지 얘기하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심규는 이야기꾼이다. 나도 모르게 녀석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가만, 심규 아버지께 물어봐야 하나? 돌돌이가 정말 새끼를 낳은 건지, 아니 돌돌이가 정말 심규네 집에 있긴 한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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