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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Feb 04. 2022

착하고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난 눈동자 앵두같이 예쁜 그 입술

아장아장 걸음마 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납니다.      


발령받은 첫해 일 학년을 담임하며 아이들과 많이 불렀던 곡이다. <착하고 아름답게>라는 곡인데 여기 나오는 가사처럼 경미의 모습이 딱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경미는 앞에 나와서 나를 툭툭 건드렸다. 자기를 쳐다보라는 뜻이다. 내가 경미를 바라보면 우선 숨을 한번 크게 들여 마셨다. 그런 후에 눈을 반짝거리고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이야기를 마구마구 쏟아냈다.     

 

경미는 학교 윗마을에 사는 아이였다. 아랫마을이 5층짜리 주공아파트와 큰 마트, 병원이 있는 도시 분위기라면 윗마을은 농사와 양돈을 하는 시골 분위기였다. 경미네 부모님은 할머니와 함께 살며 농사를 지었다. 경미는 종알종알 집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선생님, 우리 집에는요. 포도나무랑 복숭아나무가 있는데요, 다 익으면 가져와 볼까요?”

경미는 자기 집에서 딴 포도와 복숭아가 엄청 맛있다는 말을 하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5월이 되자 경미는 어깨를 들썩이며 아주 신이 났다.

“선생님, 저 이번 주 토요일에 서울 가요.”

“서울은 왜?”

“여의도로 자전거 타러 가요.”

거길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친구를 보고 경미는 한참을 졸랐단다. 결국 어린이날 기념으로 가기로 했다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일주일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는 경미를 보며 갔다 오면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될지 슬슬 나도 궁금해졌다.     


다음 주 월요일, 학교에 갔는데 경미가 결석을 했다. 지각도 잘 안 하는 아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집으로 연락을 했다. 전화를 받은 할머니는 경미가 토요일 날 엄마랑 서울에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손이  떨리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설마 경미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얼마나 많이 다쳤길래 서울 큰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걸까?

나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전철 안에서도 병원으로 걸어가면서도 온통 경미 생각뿐이었다.      

중환자실 대기실에서 경미 엄마를 만났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엄마랑 여의도 광장 근처에 도착하자 경미는 엄마 손을 놓고 달려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아빠 차를 몰고 나온 초보 대학생이 운전하는 차에 부딪쳤는데 엄마가 보는 앞에서 붕 떠올랐다가 땅으로 떨어졌단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 즉시 뇌수술을 했는데 경미는 아직도 의식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자기 때문이라며 한참을 울었다.  

    

면회 시간이 되자 경미를 만날 수 있었다. 밝게 웃던 모습은 사라지고 긴 머리를 박박 다 밀었는데 반들거리는 머리에는 줄이 잔뜩 연결되어 있었다. 경미는 인형처럼 누워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경미야, 얼른 일어나. 제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야지. 선생님 또 올게.”

나지막하게 경미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데 눈물이 나왔다. 경미 엄마에게는 식사도 좀 하고 쉬시라고 하며 병원을 나서는데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도 이런데 경미 엄마는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하니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처음 담임한 아이가 다치다니, 어쩌지?’

한편으론 이런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설마 내가 반을 맡을 때마다 해마다 아이들이 다친다면?’

‘그러다 죽기라도 한다면? 아, 난 교사를 못 할지도 몰라.’


다음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의사 선생님은 “의식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보통 3, 5, 7, 10일 주기로 의식이 돌아오는데, 그 이후로는 한참 걸릴 수도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면회할 때 나는 경미에게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왔어. 얼른 일어나야지. 오늘이 벌써 일주일째야.”

나는 누워 있는 경미를 보며 얼른 깨어나서 예전처럼 얘기해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경미는 열흘 만에 깨어났다. 정말 다행이었다. 처음엔 겨우 알아보기만 할 뿐 말도 못 하던 경미가 다음에 갔을 때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왔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 후로 조금씩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선생님, 병원에 자주 오세요. 심심해요.”

나를 보고 장난치고 웃는 경미를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경미는 여름방학이 다 지나고 9월에야 학교에 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나마 어린 아이라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했는데도 동작이 느려지고 말도 천천히 했다.

그래도 앞에 나와서 나에게 말을 거는 건 여전했다.   

    

아장아장 걷는 경미의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활달하고 재빠르던 예전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속상했지만, 의식 없이 인형처럼 누워있던 때를 생각하면 다행스러웠기 때문이다.  

'경미야, 아픈 거 힘들었던 거 다 잊어버리고 건강을 다시 되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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